프롤로그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by 대기만손

최근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이 화제다. 제목도 도발적인데 부제도 화끈하다.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라니...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저자인 노한동 작가가 출연한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였다. 나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동종 업계인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출신인 노한동 작가의 발언들이 많이 공감이 갔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한동 작가가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 상당히 긴 시간 책에 대해 얘기한 인터뷰 영상들이 있어서 책은 따로 읽어보진 않았는데, 공직 사회를 정제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짜노동', '영리한 무능' 같은 표현은 나도 공무원들과 일하면서 많이 느끼기도 했고 내가 속한 조직도 사실 크게 다르다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인가?'


2012년 5월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에 입사해 지금까지 13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월요일에 회사에 가기 싫은 월요병이 있는데 나는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월요병이 없다.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회사 생활이 조금 재미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출근하기 싫어서 월요일이 싫거나 두렵지는 않다. 작년에 월요일 아침 출근길 표정이 유난히 어둡고 다소 침울해 보이는 한 팀원에게 그렇게 회사에 나오기 싫냐고 물었더니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고 했다. 특히나 월요일은 정말 싫다고 말하는 그 팀원에게 나는 월요병이 없노라고 얘기했더니 정말 저 사람 어디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회사 다니면서 종종 주변인들에게 회사에 나오는 게 싫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얘기를 한 번씩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다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긴 했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출근이 싫지 않다니... 내가 조금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노한동 작가의 공무원 조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보며 내가 그렇게 이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도 공공 조직이기 때문에 '가짜노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회나 부처, 회사의 스탭부서 등에서 뿌려대는 아래한글과 엑셀 파일로 구성된 다양한 요구자료들을 작성하고 취합하는데 쓰는 시간은 정말 아깝긴 하다. 이 외에도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고 이것들이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분명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조직에서 해왔던 일들이 어느 정도 재미도 있었고 산업에 도움을 주는 모먼트를 경험했기에 가치도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맡고 있는 업무에서 산적한 문제들을 개선할지 수시로 정보를 찾게 되고,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곤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예전보다는 재미가 조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노한동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이것이 단순히 매너리즘 때문인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짜노동'이고 나도 모르게 '영리한 무능'이 체화되고 있기 때문인지 한번 짚어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애초에 거창하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사실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조직을 위한다는 생각도 별로 해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늘 '나'라고 생각했기에 '나'를 주체로 두고 일을 대해왔고, 일을 나의 업(業)으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적어도 그간 내가 일을 재밌어하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은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13년째를 맞이하며 나도 모르게 이제 그렇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조직의 타성에 스며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 스스로에 대한 진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pixabay

정년 기준으로는 아직 18년이나 더 일을 할 시간이 남았고, 100세 시대를 고려할 때 사실 70이고 80이고 능력과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계속 일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복기하고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기 위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막연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금은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어딘가 비밀스러운 공간에 일기처럼 써도 되겠지만 브런치에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다. 나의 고민과 실행, 결과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잘한 일이든 잘 못한 일이든 누군가의 피드백이 있으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공공의 영역에서 한 산업의 진흥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 시작하는 나와 내 업에 대한 기록은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것이란 믿음으로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다.


"지난 일을 기술하여 다가올 일을 안다(술왕사(述往事), 지래자(知來者))"
-사마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