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온 편지

2015.11.15

by 종이소리
2015.각골공원의 단풍카펫

가을엔

무심코 지나갈 수가 없다.

요정들의 만찬이 열리는 이 숲을.

분홍 봄바람을 만끽하고,

여름계곡에 몸을 담근 신들이,

따스한 햇살을 풀어 만든

오후의 산책로.

"신"이 아니고서야

저런 색을 만들 수 있을까.

따스한 모포처럼

등을 감싸는 햇살을 두르고,

발그스레 물든 잎들이

오롯이 곁을 내어 주는 가을엔,

쉽게 지켜 낼 약속도,

지키지 못할 약속도 하지 말고

그저 사랑만 하자.


언제 올 거라고,

언제 갈 거라는

말 없는 계절이 걸어주는,

새끼손가락의 묵묵함을 닮자.

그리고 걷자.

신들이 초대하는 저 축제 속에

느긋한 걸음으로 거닐다가

때때옷 이파리들이

가동가동 바람 타는 모습에

잠시 가던 길도 잊을 만큼 웃자.

헤살꾼 저녁해가

눈을 간지럽히고

요정들의 저녁만찬이 된

솔방울에 욕심이 나는

이 가을 오후엔,

그저 묵묵히 따라 걷자.

색채의 박람회장을.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바람

요정의 집 문을 비추는 오후 볕이

휘청이며 길 잃은 감성

바스락바스락,

소곤소곤 데려오는 계절.


발밑에서 바스락이는

잎들의 작은 파문이

누군가의 고백처럼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다가,

부드러운 표정과

느긋한 보폭으로

다가오는 나이에게

가을의 빛과 무늬는,

반성과 성찰이라며

낙엽 뒷면에 적어 두고

반짝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쇠퇴가 아니라

시간을 이해하는 감각

따스하게 깊어지고,

두부처럼 말랑해지며,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상실과 잃음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견디기 위한

오롯한 선택이며,


낙엽이 붉어지는 것은

아쉬운 소멸이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빛으로, 색으로 번역하는

찬란한 작업의 계속이라고.


예순이라는 나이는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덜어낸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또렷하게 보는 나이.


뒤돌아보아도 두렵지 않고,

앞을 내다보아도 조급하지 않은

시간의 한가운데에 서는 나이.


지금의 가을을 가능한 한

나이처럼 깊게 들여다보자.

계절을 이해하는 만큼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될 테니.


단풍이불 덮고
꽃잠 든 안산각골공원에서.

/2015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