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나에게

한식을 통해서 그리운 부모님을 만납니다.

by 늘보


어릴 적 학교에 가면 늘 친구들의 도시락이 부러웠다.

나는 한 번도 마음껏 먹어보지 못한 통통한 줄줄이 비엔나 햄과 야채맛 소시지 그리고 참치캔.

그때는 인스턴트 반찬을 도시락에 싸온 친구들을 보면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어떡해서든 내 반찬과 바꿔 먹어 보려고 애교를 부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 내 도시락에 들어 있었던 반찬들.

그것은 지금의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내 영혼의 음식.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그때도 출근 전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셔서 경사진 산을 일구시고 거기에 들깨, 참깨, 고추, 오이, 토마토, 상추, 부추, 호박 그리고 각종 과일나무 등을 심고 기르셨는데 그때 나온 채소들은 늘 내 도시락 반찬이 되었다.

엄마를 도와 고구마 줄기에 달린 잎을 손이 까맣게 될 만큼 열심히 까고 나면 다음날은 아삭하고 고소한 마늘 향 나는 고구마 줄기를 먹을 수 있었다.

첫 수확한 부추는 아무도 안주는 거라며 엄마는 하얀 밀가루를 곱게 풀어 부추와 양파를 썰어 넣고 기름을 살짝 둘러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부추전을 내 입에 밀어 넣어주셨다.

아삭아삭한 고추는 굵게 썰어서 된장에 버무리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밑반찬이 되어주었다.

다시마 몇 조각에 멸치가루와 된장을 버무려 대강 끓인듯한 경상도에서 빡빡장이라 불리는 강된장에 부드러운 상추쌈을 싸서 먹으면 그것 이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늙은 호박을 아버지가 거실에 끼고 앉아 채칼로 긁고 계시는 날은 노릇노릇하고 달콤한 호박전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며 마음껏 즐거워했다.

그렇게 먹고 자란 탓에 나는 지금도 입맛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무엇이든 다 잘 먹지만 인스턴트 음식은 먹지 못한다.

나는 결혼 후 12년째 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에도 한국 마켓은 많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재배되는 제철 야채와 과일의 맛은 사계절 내내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란 미국의 농산물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한국의 배추는 달고 무는 아삭하며 토마토는 상큼하고 달큼하다.

미국의 배추는 밍밍하고 무는 크기만 어마 어마 하고 토마토는 물맛이 난다.

가지며 호박, 오이도 사이즈만 크다.

한국 식재료의 깊은 맛은 미국 식재료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입맛이 까다로운 나에겐 제대로 맛을 낸 한식이란 한국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어야 했다.

내가 결혼하고부터 엄마는 한대였던 냉장고를 김치 냉장고를 포함해 네대로 늘이셨다.

1-2년에 한 번 아이의 여름 방학 때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까지 아버지가 열심히 땀 흘려 농사지으신 식재료를 말리고 찌고 빻고 짜고 그렇게 일 년 내내 아껴두셨다가 내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짐가방이 터져 나가도록 꾹꾹 눌러 담아 보내신다.

알싸한 향이 일품인 부지깽이나물은 곱게 뜯어 삶으신 후 채반에 널어 가득 말리셔서 지인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주시는데 이것을 맛보신 분들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나물이라며 너무나 감사해하셨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쯤이면 들깨 털이가 한창인데 작대기로 들깨 나무를 두드려 알갱이만 모으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턴 깨를 들고 기름집에 가면 아저씨가 기계를 돌릴 때까지 엄마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그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행여나 깨가 바뀔까 너무 태우진 않을까 어린 아기를 맡겨놓은 부모의 심정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 엄마는 들기름 대여섯 병을 받아 들고는 그때야 안심하시는 표정이었다.

세상 어떤 향기보다 가장 고소한 들기름의 향기.

이것을 반찬이나 나물에 넣어 요리를 마무리하면 어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엄마는 그중에 늘 겨우 한병 정도를 남기시고 딸 셋에게 골고루 나눠주시며 아끼지 말고 빨리 먹으라고 하셨다.

그 외에도 내가 늘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목화 꽃잎을 한 잎 한 잎 따서 펼쳐 말린 목화 꽃잎차, 칡을 캐서 일일이 톱으로 잘라 만드신 칡차, 뽕잎차, 개똥쑥 차, 둥굴레차, 엉겅퀴 차, 쇠비름 차, 민들레차, 쑥차, 질경이 차 등 각종 종류의 차들과

오가피 열매를 볶아서 삼계탕에 넣어 먹으라고 보내시기도 하고 달래 말린 것, 쑥을 곱게 갈아 만든 쑥가루, 가위로 잘게 잘게 잘라 말리신 청양 고추에 무 시래기 , 고춧가루까지 그 종류도 엄청나다.

엄마는 하나라도 더 넣어 보내겠다고 나의 가방 속에 밀어 넣으시면 나는 그것들을 애써 만들어 하나도 먹지 않고 저장해둔 엄마에게 괜한 화가 올라와서 안 가져가겠다고 자주 퉁퉁거렸다.

그러면 엄마는 서운해하시며 짐이 너무 많으면 두고 가라고 하셨지만 미국집에 도착해 보면 결국 그 투닥거리던 식재료는 내 가방 속에 있곤 했다.

미국에 살면서 한식으로 요리를 하는 것은 양식보다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든다.

하지만 그 건강한 맛을 아는 나는 그 수고 조차도 감당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요즘도 자주 친정집에서 가지고 온 된장에 말린 달래와 표고를 넣어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이고 부지깽이나물에 들기름을 넣어 식탁에 담아낸다.

그립고 그리운 엄마와 아빠를 그렇게 음식으로 만난다.

이 모든 식재료들을 심고 일구고 캐고 따고 말리고 찌면서 부모님이 흘렸을 땀과 수고.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깊은 사랑.

그래서 나는 무엇하나 쉽게 버리거나 함부로 할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올해는 한국에 가지 못했다.

그리운 부모님께 받은 사진 속 아버지의 경사진 밭에는 올여름에도 두 분의 땀과 수고가 결실을 맺고 예쁘고 탐스럽게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