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세도 관객이 된다. 엄마로만 남지 않기로 했다.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낮은 시선’

by SooJin Jung


누군가는 3년 전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느냐고 묻겠지만, 나에게 2023년의 에든버러 프린지는 6년의 동면을 깨워준 첫 번째 소음이었다. 예술행정을 전공하고 축제 현장을 누비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만 불리며 보낸 침묵의 시간들.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격리된 듯 느꼈던 그 막막한 몇년의 동면을 깨운 건, 역설적이게도 축제의 소란스러운 파동이었다. 그 소음이 비로소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에든버러의 8월, 유모차라는 '거대한 저항'

이 도시의 8월은 잔인하다. 적어도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에게는 그렇다. 한 달 동안 도시 전체가 300개의 베뉴로 변모하고, 무려 5만 개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세계 최대의 예술 축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로열 마일의 울퉁불퉁한 돌바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소 5분이면 지날 거리를 유모차 바퀴와 씨름하며 30분 동안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곳. 엄마가 되어 마주한 축제는 '참여'보다 '소외'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그 유모차를 밀고 축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영유아 전용 공연부터 클래식, 서커스까지 닥치는 대로 보고 겪으며 나는 질문했다. "이 축제는 가장 작은 관객인 내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 질문 끝에 마주한 것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다.

한 인간을 생애 초기부터 '예술적 주체'로 인정하는

경이로운 환대의 현장이었다.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그 '변방'의 위대한 역설

여기서 잠깐 프린지(Fringe)라는 단어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축제의 시작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상처받은 이들을 예술로 치유하기 위해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처음 열렸다. 이 주류 세계에 초대받지 못한 여러 극단이 공연장 프린지(주변)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 축제의 모태가 되었다. 그 누구도 심사하거나 거르지 않는 오픈 액세스.이 '무질서한 자유'가 8월의 에든버러를 거대한 실험실로 만든다. 주류 무대에서 소외되었던 '0세 영유아'가 당당히 티켓을 쥐고 객석의 주인공이 되는 풍경은, 어쩌면 이 축제의 태생적인 유전자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0-2세 전용 아이스크림 가게

고객님, 주문하시겠어요?

첫 번째 공연부터 파격이었다. 무대는 아이스크림 가게, 배우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해 허둥지둥하는 알바생이다. 그런데 이 가게의 손님은 전원 0-2세 꼬마들이다. 말도 못 하는 아기 손님들의 옹알이와 몸짓을 주문으로 접수해 고군분투하는 알바생의 퍼포먼스. 아기들을 방해꾼이 아닌 극을 이끌어가는 당당한 '클라이언트'로 모시는 그 태도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말 대신 몸짓으로 주문하는 존재에게 정중히 선택권을 건네는 그 태도에서, 나는 예술이 인간을 대하는 가장 고귀한 예의를 보았다.




기저귀 차고 즐기는 '베이비 카바레'

카바레라고 하면 짙은 위스키 향과 성인의 전유물이 떠오르겠지만, 에든버러엔 '0세를 위한 카바레'가 있다.

조명과 비트는 영락없는 힙한 클럽인데, 흘러나오는

노래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재해석된 동요다. 얘들이 뭘 알까? 싶은 의구심은 객석을 점령한 기저귀 찬 아기들의 눈빛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조명의 변화에 몰입하는 아기들은 이미 예술적 황홀경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여기선 아기의 울음소리조차 카바레의 즉흥적인 세션이 된다.

Monski Mouse's Baby Cabaret
Monski Mouse's Baby Cabaret



0-3세를 위한 클래식

'언터처블'한 퀄리티의 힘

0–3세를 위한 클래식 공연은 예상보다 단단했다. 아기들이 기어 다니고 옹알이하는 소리는 라이브 연주와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 소리는 방해가 아니라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연주자들의 태도였다.

‘아이용’이라는 이유로 음을 낮추거나 완성도를 타협하지 않았다. 가장 어린 관객을 상대로도 동일한 밀도의

연주를 내어놓는 것. 그 단단함에서 나는 존중의 방식

하나를 배웠다.


Recitals for Wrigglers: Concerts for babies and toddlers



서커스계 일인자들이 아이들을 만날 때

세계적인 서커스 팀들이 아이들만을 위한 참여형 공연을 기획한다는 것도 놀라운 지점이다. 그들은 기술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을 무대 안으로 초대한다. 베테랑의 손을 잡고 서커스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 경계가 사라진 무대에서 아이들은 관찰자가 아니라 '스토리텔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행정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참여'의 모델이 아닐까.


TRASHTEST DUMMIES CIRCUS

K-버블의 위엄

비눗방울로 잇는 언어 너머의 세계

에든버러에는 오랜 시간 사랑받은 '버블계의 거물'들이 많다. 비눗방울 공연은 거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말이 서툰 0세 아이도, 영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장면을 바라본다.

그 순간 무대는 가장 평등해진다. 누군가는 웃음으로, 누군가는 탄성으로, 누군가는 작은 손을 뻗으며 반응한다. 언어와 나이를 넘어 동시에 반응할 수 있는 공연.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의 완벽한 소통'이었다.


Amazing bubble man (왼), 버블 제이, Bubble J (우)




아이들은 '온도'를 기억한다

현재는 프로젝트 일로 어르신들의 돌봄 공간을 고민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0세 아이들은 공연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공간의 '온도'와 자신을 관객으로 대우해주던 그 '존중'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내 아이들을 그렇게 조금씩 단단한 예술적 주체로 키워내고 있었다.


비록 유모차를 끌고 돌바닥을 구르는 엄마의 일상은 고될지라도, 그 마법 같은 환대의 순간을 위해 나는 내년에도 기꺼이 유모차 바퀴를 점검할 것이다.


동면은 끝났다.
나는 다시 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일을.


아이들을 위한 크라프트 공간이 늘 존재한다


엄마들만 아는,

에든버러 프린지 유모차 관람 팁

유모차 파킹 전쟁

유모차는 입구까지다. 대부분의 베뉴는 반입이 어렵다. 결국 아이를 안고 들어가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면 아기띠는 생존 장비다.

5분은 15분이다. 돌바닥 위 유모차는 생각보다 느리다. 동선은 항상 여유 있게.

바닥이 곧 객석이다. 선착순 공연이 많다. 작은 방석 하나가 엄마의 체력을 구한다.

날씨와 간식은 보험이다. 8월의 에든버러는 변덕스럽다. 얇은 겉옷과 한 입 간식은 분명한 평화를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