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숙기 Nov 04. 2020

진정성없는 피드백은 얄팍하고 피드백없는진정성은 공허하다

지금까지 상사로부터 받은 피드백 중 가장 도움이 된 피드백은 어떤 것이었는가? 무엇이 그것을 가치롭게 만들었는가? 받는 사람에 달려있는가? 하는 사람에 달려있는가? 내가 과연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함이 크지만, 20~30년 직장 생활중에 제대로 된 피드백 한번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듣기 싫은 말을 꺼내 껄끄러운 관계가 되느니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피드백은 무기 연기된다. 개선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는 피드백은 “발전적 피드백”이라는 근사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하는 입장에서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듣는 사람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피드백은 되어져야 할 양보다 대개 적게 이루어진다. 피드백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보다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BMW의 미니쿠퍼는 주문자에게 “당신 차가 이만큼 제작되고 있습니다”를 사진 찍어 알려줌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상사에게 가장 바라는 점은 자신을 키워달라는 것이라는 여러 조사 결과가 있다. 성장을 위해 칭찬 인정도 좋지만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지 상사로부터 객관적으로 듣고 싶어 한다.


좋은 나’를 지키려는 자동적 방어

그렇지만 고민 끝에 피드백을 해주면 나긋나긋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는다. 피드백을 들으면 ‘좋은 나’에 대한 지향성과 충돌하며 인지적 부조화가 일어난다. 이에 우리의 무의식은 이를 해소하려는 내적 긴장이 생기며 현실부정, 자기방어가 무의식적으로 동원된다.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이라는 이성적 판단은 그 다음 일이다. 구성원이 피드백에 방어적 태도를 보이더라도, 편협해서도, 성장의욕이 없어서도, 상사로서 내 권위가 약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피드백의 성공은 상대가 받아들여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것까지이다. 피드백의 힘은 나의 영향력의 크기에서 상대의 저항의 크기를 뺀 값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항을 만드는가? 바로 평가적 언어이다. “자네는 왜 그리 일을 무책임하게 처리하나” “부장 3년차가 이런 식으로 하다니 개념이 없네” 에는 듣는 이가 동의할 수 없는 주관적 표현이 여럿 들어있다. 

언어뿐 아니라 “이 정도는 당연히”, “한번도 제대로 한 적이…”, “이런 식이야”, “소홀하군” 등 우리의 평가적 인지습관은 너무도 뿌리 깊어서 관찰의 초기단계부터 개입하여 순수한 관찰을 어렵게 만든다. 


성장 마인드셋으로 프레임하기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고 성격상의 문제로 규정하거나, 한번의 실수에 대해 실력의 문제로 치환한다면, 그 피드백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 자신에 대한 기대에 둔감했을 수도, 그게 최선이라 잘 못 알았을 수도, 잘 하다가 어쩌다 오류가 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시성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고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으로, 전반적인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오류라 프레임할 때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고정된 마인드셋 (Fixed mind-set)이 아닌, 성장 마인드셋 (Growth mind-set)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덜 아프고 더 희망적이다.


성장시켜 줄 바에야 친절하게

사람들은 피드백에 쓰이는 단어와 말투에 대단히 민감하다. 미리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두면 격한 표현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는 더 악수를 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성장시켜줄 바에야 조금 더 친절하자. .‘일처리가 미숙하다’, ‘성격이 느긋하다’, ‘업무 감각이 떨어진다’, ‘성의가 부족하다’ 보다는 ‘주변과의 협업이 더 필요하다’, ‘객관적 데이터를 더 이용하라’, ‘보고의 타이밍을 잘 맞춰라’ 등 개선 가능한 형태로 프레임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개선 방향을 주되 받아들이기 좋은 형태로 주는 것이 피드백 성공의 관건이다. 


반발에 밀려 피드백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면 다음 번 피드백 하는데 훨씬 불리해진다. 피드백을 하고 난 이후도 중요하다. 알려주었으니 개선은 알아서 해야지 하는 태도는 도움이 안 된다. 피드백을 받고 느낄 상대의 아픔을 같이 할 마음이 있는가? 그의 개발 과정을 도울 힘이 있는가? 면밀히 관찰하며 팔로우업 피드백 할 성의가 있는가? 여기까지 예스라면 피드백을 해도 좋다. 피드백은 구성원에 갖는 관심을 구현하는 구체적 도구이자 성장의 토대이다. 진정한 관심이 없는 피드백은 얄팍하고 피드백이 없는 진정한 관심은 공허하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 211호에 실린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칭찬의 사회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