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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Sep 02. 2022

결정사, 내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 선택

나는 왜 그곳에 인생 최고액수의 투자를 했나 

브런치 작가가 되어 놓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자고로 타인이 읽기를 바라고 쓰는 글이란,' 타인의 수요를만족하는 글'이라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니까. 



그러면 이제는 좀 써볼만 한건가? 

물론이다. 최근 나는 정말 흥미진진한 소재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사실 나의 이 특별한 경험은 저절로 내 삶에 걸어 들어온 것은 아니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듯, 나는 선뜻 그 길을 가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혹시 '결혼정보회사'에 대해 아시나요?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하다. 내재적, 외재적 동기에 의해 참으로 다양하게 밖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은 어떤가? 그것은 과연 각자의 욕망에 기인할까, 혹은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대한 수동적 대응에 지나지 않는가? 인류가 발전하는 동안 '문화'가 되어버린 유전자와 환경이 그 사회의 상식에 알맞는 수준의 그것을 형성해왔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정보회사는,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 즉 '결혼'이라는 난제(어떤 이에게는 전혀 아닐 수도 있지만, 수많은 mz들에게 이미 난제로 기정사실화된)를 풀어줄 마술사인냥 혜성처럼 등장했던 것이 틀림없다. 

호기심이 매우 차고 넘치는 필자의 경우에는 이미 30초반에 그 유명한 '**'이라는 곳에 방문했다. 현재 서비스를 받고 있는 곳과는 좀 다른 일반 결혼정보업체이고 굉장히 대중적이어서 누구나 버스나 지하철 옥외광고에서 한번쯤은 마주쳤을 바로 그 회사이다. 


그 회사의 진입장벽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진입 장벽. 필자의 직업이 어찌 되었든 고정적인 수입과 정년까지의 재직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꽤나 준수한 그레이딩이 매겨진 줄 알았다. 그렇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문직 남성의 경우 몇 십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등록하면 얼마든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이상하게도 동일한 조건의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여성의 경우 전문직이든, 학력, 연봉이 높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아버지가 뭐하시니?" "집의 재산이 얼마 정도 되니?" 그리고 겉보기 등급(즉 외모)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트리오 조건이었다. 또 한가지 의문은 여성에게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회원가. 재벌집에 시집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데 10회에 330만원(2018.3.기준)이라는 회원가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런데 참으로 사람이 이상한 것이,  상담실장님의 감언이설에 살살 녹기도 했고 지금 아니면 값떨어진다는 그 논리(?라고 할 수 없는데, 그 공간에서는 매직이 일어났다.)에 홀랑 넘어가서, 생전 명품백 한번 사본적 없던 필자가 시원하게 카드를 긁고 나왔다. 그렇다. 가장 큰진입장벽은 돈이다. 돈만 내면, 회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외모나 직업 등이 그래도 고려요소가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는 있지만, 여러 사례를 통해 보아 그것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조선시대의 예를 들자면, 세자빈 간택령이 내렸을 때 양갓집 규수들만 사주단자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선남선녀의 만남, 즉 평범한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에대한 서비스 비용을 받는 회사이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는 세팅을 준비해 놓았다는 뜻이다. 이 정도이면, 거의 유일한 진입장벽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꽤나 높게 책정된 회원가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나는 왜 그 곳을 나왔나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의 연애성향을 밝히자면 '낭만성향'의 안정애챡 유형이다. 연애성향과 애착유형을 함께 밝히는 이유는 이 둘의 조합이 한 사람이 파트너를 만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형성하기 떄문이다.(연애성향과 애착유형에 대한 이론은 '사랑은 과학이다.'라는 책에서 보다 자세하게 탐구할 수 있다.)


첫 번째, 친구의 한마디

두 번째, 내 안의 속삭임

 


카드를 글고 왔다고 말하니,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친구가 허를 찌르는 한 마디를 던졌다. 참고로 그 친구의 남편은 전문직 남성이다. "헐, **아, 결혼정보회사에는 알바생이 엄청 많대. 특히 남자들. 너 돈만 버리는 거 어아닌가 너무 걱정된다. 조금 더 고민해보는거 어때?"

안그래도 신중한 필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한 3일간 세상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에 가담한 것은 내 안의 목소리. '넌 여태 로맨티시즘을 신봉해오지 않았니? 물론 영화 세렌디피티나 비포선라이즈에 나올 법한 운명적인 만남을 현실에서 맞닥뜨릴거라는 기대는 너무 큰 기대일지라도, 그래도 조건보고 만나는건 낭만적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기 오히려 힘든 과정일거야.' 

현재로서는 이것이 나의 오판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나, 아무튼 그 때는 그랬다. 겨우 30대 초입이었고, 나는 건재했다. 굳이 만남과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도처에 널린 것이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는 그랬다. 나는 그 결혼정보회사에 전화를 걸어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인연이 오지 않는다면, 한 서른 다섯 즈음에 다시 갈게요." 


그리고 그 후....

영화에서는 보통 주인공이 "그래! 나는 주체적인 마인드와 실행력으로 내 인연을 찾아갈거야!"라고 선언한 후 운명처럼 왕자님이 등장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필자는 그 후 (어쩌면)결혼에 이를 낭만적 연애의 열차에 몇 번 탑승했는데, 정차역 간 간격이 아주 짧을 때도 있었고, 열차칸이 너무 더러워 불쾌해서 뛰어내리듯이 하차한 적도 있었고, 스위스 그린델발트쯤으로 가는 특급 관광열차인줄 알고 탔는데 알고보니 아오지 탄광행이어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교묘하게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하, 비유란 인류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이토록 간단하게 그 간의 연애사를 읊을 수 있다니. 


그리고 나는 서른 네 살이 되었다. 누가 봐도 어엿한 삼십대 중반, 나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기대가 달라지는 걸 나는 이제서야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조선시대처럼 '약관'의 나이가 성인이 되는 기점이 전혀 아닐 뿐더러, 서른이라는 나이도 어리고 어리다. 나는 그 때, 겉으로봐도 내면도 아직 20대같은 자유발랄함으로 인생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른 중반이 되니, 이제 나는 '어른'일 수 밖에 없는 나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일단 직장에서, 10년 경력의 직장인으로서의 노련함을 기대받는 위치가 되었다. 또한 가정에서는, 겉으로는 아니라 하시지만 이제는 좀 인연을 만나 나가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 참고로 필자의 부모님은, 꿈을 쫓아 사는 필자에게 한 번도 "남자나 만나라."라는 식의 기대를 하신적이 없다. 또한 거의 10년을 여러 곳을 돌며 혼자 지낸만큼, 생활력은 만렙인 필자에게 다른 목적을 위한 독립을 바라시지도 않는 듯 하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질문, "그래서 넌 앞으로 어쩌고 싶은데?"


이렇게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이라는 용어는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니다. 대략 열 몇 몇군데의 결혼정보회사와 상담 전화를 하고, 나의 주특기를 발휘해서 상세하게 비교분석을 한 결과, 방문을 한 번 해볼만한 업체는 한 곳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상담에 다녀온 후 후기를 이야기 하니 필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인력시장이구만 완전. 정신 똑바로 차려." 

정말이지, 나는 34년의 인생동안 어머니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하지만, 사람과 상황을 보는 통찰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당시 나는 상담 해주신 이사님의 현란한 스킬과 미래에 대한 낙관론에 도취된 상태였는데, 왠지 그 곳의 회원이 되는 순간 내가 바래왔던, 꽤 괜찮은 상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인즉슨, 한 눈 팔았다간 헐값에 팔릴수도 있으니, 네 가치는 스스로 지키면서 진짜 네가 원하는 사람을 찾는 용도 정도로만 잘 이용해보라는 것이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 변변한 연애한번 못해본 필자에게는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이지만 어쩌랴, 


주사위는 던져졌다. 


앞으로 필자는 1년간 이 결혼정보회사의 충실한 회원으로서 수많은 이성을 만나 대화해보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된다. 정말 책 한권은 내도 될 정도의 에피소드가 쌓이고 있으며, 로맨티시즘을 찬양했던 어린날의 무지에 대해 이제는 "언니의 독설"을 할 정도로 극사실주의적인 면모가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론으로 부장한 노처녀가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인생은 계속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경험이, 낭만적 연애와 결혼에 이르는 특급열차가 될지,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될지, 그저 씁쓸한 교훈만을 남길 경험이 될 지는 아직 모른다. So, Wanna be with me?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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