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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l Park Jul 09. 2017

파트모스 섬을 걷다


아테네를 떠나서 몇 개의 섬을 보고 이스탄불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아테네를 떠난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이제 막 지하철 노선도가 익숙해질 무렵인데, 몇백 킬로미터나 되는 뱃길에 나서야 한다니!


처음에는 크노소스 문명과 미궁으로 유명한 크레타, 그리고 예전에 거신상이 있었다는 로도스 섬에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와 계획을 이리저리 바꾸다가 보니 낙소스, 파트모스, 사모스에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배 시간 때문에 낙소스 섬에서는 결국 지내지 못하고 잠시 정박한 사이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탄 배 <니소스 로도스>호는 대형 여객선으로, 파트모스 섬까지는 9시간 40분을 가야한다.


가는 내내 창밖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났다가 또 사라졌다. 




파로스 섬에 정박하기 전에 만난 무인도는 말 그대로 물 위에 떠있는 듯 했다. 

저 거친 섬 위에서 하루밤을 보낸 인간이 유사 이래 몇명이나 될지, 한명이라도 있을지,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파로스 섬을 지나서 낙소스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책의 도입부로 써보려고 이런 글을 써보았다.


배는 여름 저녁의 지중해를 건너는 중이다. 우리가 잠시 정박한 항구의 집들은 그리스식으로 새하얗게 칠한 외벽으로 빛난다. 마침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볕은 건물들과 암벽을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이면서, 섬 전체를 마치 마법처럼 따뜻하게 보이게 만든다. 해변에 개미처럼 조그만 사람들이 앉아서 배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준다. 기분 좋은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뒤흔들며 온갖 고민을 가져가버린다. 아버지와 함께 낙소스 섬에서 맞는 노을이다. 애게해의 노을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지금까지 본 노을을 다 합친 것 만큼이나 붉고, 넓고, 마음을 깊이 물들인다. 그리스의 각인이다. 





낙소스 섬을 내가 아는 것은 얼마전에 미궁에 대해 읽었던 여러권의 책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낙소스라는 섬이 있는 줄도 몰랐다. 

테세우스 전설을 보면, 크레타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고 돌아오던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들렀다는 언급이 있다. 그가 낙소스에서 행한 일은 아마 테세우스 일생을 통틀어 가장 영웅적이지 않은 업적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여 아버지를 배신하고 미궁과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할 수 있는 실타래와 칼을 전해주었던 여인,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버렸기 때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 후에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 신과 결혼했다고 하는데, 영웅이지만 반신에 불과한 테세우스보다는 신과 맺어진 편이 그녀에게도 더 좋은 일이었기를 빈다. 신과 반신(아리아드네도 반신이다)의 후손들이 저 섬에 남아서 좋은 실을 잣고, 향기로운 포도주를 담구면서 살고 있으려나. 물론 알 길이 없다.


낙소스 섬에서 내리고 타는 많은 관광객을 보면서 이런 글을 썼다. 


여객선에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그리스의 여름과 정열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다.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배낭 하나만 걸머지고 이곳에 와서, 팔다리가 검붉게 타고 마음의 불길이 진정될 때까지 무작정 걸어다니는 청년들부터,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어떻게든 경제적으로 허비해보려는 모순적 욕구에 사로잡힌, 상기된 얼굴의 중년 아저씨들, 마지막으로 창밖의 황혼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황혼을 잊고 젊은 시절 추억에 잠기는 노인 휴양객들까지 온갖 군상들이 다 모여있다. 그들에게 그리스는 어떤 곳일까? 괴상한 지적 충동으로 인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우리 부자에게 그리스는 어떤 곳일까? 그리스가 젊음의 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햇빛의 온도, 공기의 가벼움, 바다의 부드러움이 그것을 말해준다. 또 음식 속에 깃든 건강함, 사람들의 얼굴을 가득채운 생명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엔 한반도의 오래된 땅에서 태어나, 어둡고 서늘한 독일 땅에서 자란 나는 가져보지 못한 폭발적인 힘이 있고, 나는 사람들의 몸과 목소리에서 번개처럼 번뜩이듯 나타나는 그 생명스러움을 신비롭게 쳐다본다. 수천년 전의 그리스인은 이보다 더욱 젊고, 푸르고, 강하고, 자연이었으리라. 그리하여 과연 신들과 대등한 민족이었으리라. 적어도 나는 그들을 대리석처럼 젊은 모습으로, 항상 젊은 불멸의 모습으로 상상해보고 싶고, 그렇게 상상을 펼친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파트모스 섬에 내렸다. 우리와 함께 100명 남짓의 승객이 내렸다. 섬 전체 인구가 3000명 가량이라고 하니, 갑자기 섬의 인구를 3% 정도 증가시키는 사건이었다. 


암흑을 뚫고 걷다보니 잠시 후 바닷가에 호텔이 나왔다. 우리는 일단 맥주부터 시켰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름답지 않은 사진이 등장하였으나, 재미삼아 올려본다.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 중에 하나의 이름은 무려 미토스Mythos, 그러니까 신화다. 

맥주가 달콤한 편인데, 좀 더 담백한 맥주를 로고스Logos라는 이름으로 출시한다면 어떨까.. 

철학하는 사람이 사업 아이템을 내놓는 경우에는 절망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밤에는 이 섬의 정체를 알 수 없었으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푸르고 푸른 물이 있었고, 공기또한 아테네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어제 여객선에서 나는 푸른색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여름의 지중해는 유순하고 푸르다. 그 푸르름은 깊고 짙어서, 하늘색은 탈색된 것 마냥 희미하게 보인다. 강렬한 태양에 그슬린 하늘은 원래의 푸르름을 잃고 옅은 누런색을 띤다. 해안선을 바라보면 사람이 사는 곳은 해변에 집중되어 있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대부분 메마르고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는 비탈들, 작고 누런 산맥들이 솟아올라 내륙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스인의 시선은 뜨겁고 먼지 휘날리는 산들, 지나가기 어려운 육로보다는 자연스럽게 푸른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횔덜린이 광기에 빠져버리기 얼마 전에 집필하던 시 “그리스Griechland”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오 운명의 목소리들이여, 방랑자의 길들이여!
눈을 가르치는 푸르름의 학교, 그곳에서 
저 먼곳, 하늘의 떨림으로부터
지빠귀의 노래처럼 
구름의 명랑한 기운이 퍼져나가니, 
신의 현존에 힘입은 것, 뇌우로다.

"눈을 가르치는 푸르름의 학교”는 하늘인가, 바다인가? 시의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하늘임이 틀림없다. 하늘은 신이 현존하는 곳, 번개와 천둥의 언어로 신계의 소식을 지상으로 쏘아보내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상의 굴레, 일상의 중력에 붙들린 인간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하늘로 향한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무한한 높이, 아니 깊이를 쳐다보면서 유영하기 시작한다. 지상과 달리 허공에는 촛점 맞출만한 것이 없어, 눈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봄 자체를 바라본다. 이와 같은 시선의 방랑은 목적도 없고 고통도 없는 것이기에, 뜬 구름처럼 명랑한 것이다. 지친 눈을 쉬게 해주고 치유해주는 이 가르침의 이름은 푸른색이다. 그리스인의 마음의 스승은 푸른색이다. 


등등, 나는 손이 가는대로 글을 썼다. 이런 잡상들을 모아서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역시 알 길이 없다.


아침을 먹고 섬탐방에 나섰다. 인구가 3천인데 성당이 40개라는 파트모스 섬은 대단히 종교적이었다. 

그 첫 증거는 곳곳에 있는 고해소였다. 미사가 아니라 고해성사를 주목적으로 하는 건물들인데, 소박하고 주위 풍경과 하나가 되어 있는 정겨운 곳들이다. 



종을 손으로 당겨서 울리게 되어있다.



몇분 더 걸었을 뿐인데 다음 고해소가 나왔다. 여기는 고해하는 신자들이 많을때를 대비해서 듀얼(?)로 운영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까 고해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어릴때 독실한 카톨릭으로서 2주마다 한번 고해성사를 해야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섬 정상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성 요한 수도원>이 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번 걸어가보기로 했다. 곧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반쯤 올라가서 우리가 어제 들어온 항구를 내려다보았다. 햇빛은 너무나 뜨겁고, 일정 시간마다 그늘에서 쉬지 않으면 체온이 올라가서 약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우발적으로 시작된 순례길(?)이었기에 물도 한통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민박집 문을 두드려서 물 한병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훤칠한 주인 아저씨가 그냥 가지고 가라면서 1리터짜리 생수를 내주었다. 그리스 인심은 소문대로 좋다. 계속 걸어서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몇장만 몰래 찍었다.



입구에 있는 작은 감실. 뒤로 터키 해안이 보인다.



수도원 내부. 매우 거대한 수도원은 요새화되어있었는데,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차차 그런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주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는 11세기의 것이다. 동방 정교회의 신앙은 더 솔직하고, 신비롭다고 생각이 되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잊혀진 옛모습이 있다. 



내가 가진 책자의 파트모스 부분에는  "수도원이 있는 호라에 갈때는 올라간 길로 내려올 생각을 버리세요"라고 써있었다. 그만큼 옛도시는 구불구불하고 곳곳이 아름다웠으며, 논리적인 구조가 없어서, 그 모습 그대로 신화적이었다. 모든 집들은 외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나는 무화과 나무를 뒤로 하고 사진에 찍혀보았다. 



다시 항구로 내려오는 길, 이번에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섬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뒤에 터키 해안이 보였다. 그리스인들에게 저 건너편의 이름은 다름아닌 "아시아"였다. (이제는 "소아시아"라고 부르지만) 횔덜린의 시 <파트모스>는 이곳에 와보지도 못했던 횔덜린이, 마치 환시를 통해서 보듯이 그려낸 것이지만, 해양문명 그리스와 "아시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을 하고 있다. 아시아는 아름다우면서도 낯선 곳, 강렬한 영향이 흘러들어오지만 마냥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곳, 아름답고 위험한 타자의 이름이다. 파트모스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 아시아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타자인가? 


번역의 첫번째 3연을 올려본다. 너무 긴 시라서 파트모스에 머무는 동안 완성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파트모스

횔덜린 


가까우나

신은 붙잡기 어렵도다.

그러나 위험이 도사린 곳에

구원의 약초 역시 자라는 법.

어둠 속에서도

독수리들은 살아가고, 무서움을 모르는 

알프스의 자식들은 심연 위

가벼이 지어진 다리를 건너네.

그렇기에, 주위에 솟아오른 

시간의 산정山頂들이 있기에, 가까이에

사랑하는 이들이 살지만, 힘겹도록

가장 멀리 떨어진 산속에 살기에,

오 우리에게 날개를 내리소서, 마음 다해 

서로에게 건너가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갑자기, 

생각보다도 더욱 빠르게, 낚아채듯

아주 멀리, 한번도 상상치 못한 

장소로, 어느 정령이 나를 내 집에서 

그곳으로 홀연히 데려갔다. 노을 속,

지나가는 길 눈을 드니 어둑어둑한

고향의

그림자 가득한 숲과

그리움으로 찬 냇물들; 내 모르는 땅이 되어있고;

하지만 곧 이어, 신선한 광채 속에서, 

비밀스럽게

황금빛 도취 속에서 피어나며

빠르게 자라나던,

태양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수천의 산정山頂들로 향기롭던,


아시아가 내 눈 앞에 만개했으니, 부신 눈으로 

익숙한 것을 찾아보았노라, 일찍이

본적 없는 그 넓은 길들로부터

트몰루스 산을 따라

황금으로 꾸민 팍톨루스 강이 흐르고

타우루스와 메소기스 산맥이 우뚝 섰으며,

꽃들로 가득한 정원은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 빛이 머무는 곳에는

은빛 만년설이 드높이 만개하고,

불멸의 삶을 감싸는 옷자락은 

감히 닿을 수 없는 암벽들에 드리우니 

고대로부터 기어오르는 넝쿨들.

생명을 가진 기둥, 물푸레와 월계수들이

떠받치는, 장려하고

신처럼 당당하게 지어진 궁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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