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칠 수 없는 취향
<철학적 고찰 Series 1_E01 – Prelude>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면
그의 취향을 몰래 훔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훔친 그 매력을 내 안에 새기고,
그로써 내 것으로 빚어진 그 취향을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
여기서 핵심은 ‘훔친다’가 아니라 ‘새긴다’다. 베르그송의 시간은 시계처럼 나뉘는 단위가 아니라, 겹겹이 쌓이며 서로 스며드는 **지속(durée)**이다. 그러니 “내 안에 새긴다”는 말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취향이 내 시간 속으로 들어와, 내 기억과 감각과 습관에 섞이며 나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순간이 아니라, 지속의 편집이다.
1. 지속(durée) ― 취향은 단번에 ‘획득’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스며든다’
우리는 취향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취향은 소유물처럼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취향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음악이 처음엔 낯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바뀐 건 음악이 아니라, 내 안의 시간이 그 음악을 받아들일 만큼 누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그의 취향을 훔치고 싶다는 말은, 사실 그의 현재를 가져오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취향을 가능하게 만든 시간의 두께를 갖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은 빌릴 수 없다. 지속은 오직 살아낸 시간으로만 만들어진다.
• 취향은 즉각적 선택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며드는 지속
• “좋아짐”은 대상의 변화가 아니라, 내 지속의 변화
• 타인의 취향은 타인의 시간의 두께를 포함한다
2.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변형이다 ― 새김은 곧 ‘다르게 됨’이다
베르그송에게 기억은 창고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통해 계속 변형된다. 그래서 “새긴다”는 행위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질감 속에서 상대의 취향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나는 그의 취향을 내 안에 새기며 그를 더 가까이 느끼지만, 사실 그 순간 나는 그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를 재구성한다. 새김은 ‘기록’이 아니라 ‘변주’다. 취향을 새긴다는 말 속에는 이미 시간의 비가역성이 들어 있다. 한 번 새겨진 것은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계속 재구성됨
• 새김은 복제가 아니라, 내 삶 속에서의 변형과 변주
• 새긴 순간 나는 이미 달라진 나가 된다
3. 감각의 진화 ― 취향은 ‘정보’가 아니라 ‘몸의 리듬’이 된다
취향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어간다. 처음엔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로만 알고 있던 것이, 반복을 통해 내 몸의 리듬이 된다. 어떤 장소를 편안해하고, 어떤 대화를 좋아하며, 어떤 침묵을 견디는 방식까지. 취향은 결국 시간 속에서 몸에 새겨지는 습관적 감각이다.
그래서 사랑은 종종 단번의 감정보다 더 느리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사소한 순간들이 내 지속 속에 들어와, 나의 감각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취향은 그 변화를 가장 은밀하게 드러내는 흔적이다.
• 취향은 지식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몸의 리듬
• 사랑은 사건이면서 동시에, 지속의 누적된 결과
• 사소한 순간들이 감각을 바꾸고, 감각이 관계를 바꾼다
4. 환원은 되돌림이 아니라 ‘되돌아옴’이다 ― 내가 변한 채로 너에게 간다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는 욕망은, 베르그송적으로 보면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행위가 아니다. 환원은 되돌림이 아니라, 내가 변화한 채로 너에게 가는 되돌아옴이다. 나는 그의 취향을 새기며 나의 시간을 바꾸고, 그 바뀐 시간으로 다시 그에게 간다.
그래서 환원은 선물이라기보다 흔적이다. 너로 인해 내가 이렇게 변했다. 그 문장은 상대를 붙잡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지속이 만들어낸 변화의 고백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변화가 상대를 향한 봉사가 아니라, 내 삶의 질감 속에서 생겨난 진짜 변주인가 하는 점이다.
• 환원은 원상복구가 아니라, 변화한 채 돌아오는 되돌아옴
• “너로 인해 내가 변했다”는 지속의 고백
• 변화가 봉사가 아니라, 내 지속의 진짜 변주인지 점검 필요
5. 출구 ― 취향을 훔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것
베르그송 이후의 사랑은 “가져오기”보다 “함께 살아내기”에 가까워진다. 타인의 취향은 타인의 시간의 산물이고, 그 시간은 훔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취향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 취향이 내 안에서 어떤 속도로 익어가는지를 관찰하는 일이다.
그러니 출구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취향은 소유가 아니라 지속이다.
사랑은 순간이 아니라, 시간이 서로의 안쪽으로 스며드는 방식이다.
• 타인의 취향은 훔칠 수 없고, 다만 내 안에서 익어갈 뿐
• 취향은 소유가 아니라 지속의 결과
• 사랑은 사건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들이 겹쳐지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