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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un 03. 2020

전직 인사 왕이 코로나가 은근 반가운 이유

부담 없이 안녕 하기.



하얗고 긴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에 사는 마오리 족은 손을 맞잡고 코를 부비며 인사를 한다. 서로의 호흡을 나누고 맥박을 느끼며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공격도 방어도 어려운 자세에서 가장 취약한 얼굴을 맞댐으로써 서로의 신뢰를 얻는다.


우리가 인사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하루가 있을까?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흔하게는 지인을 만났을 때 안부를 묻는 인사부터 온라인 상에서 낯선 이와 주고받는 인사, 감사 인사, 새해 인사, 축하 인사, 작별 인사 등등. 게다가 이젠 서로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메일을 통해, 우편을 통해,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화를 통해, 메신저를 통해, 꽃배달을 통해, 아무리 무심한 인간이라도 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쯤 되면 인사란 ‘요리하기’처럼 간접적인 생존 기술에 속하는 셈이다. 안 한다고 당장 죽진 않겠지만, 여러 모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호흡과 맥박을 나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한땐 알아주는 인사꾼이었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께 인사를 워낙 잘하고 다녀 귀여움을 톡톡히 받았다. 아파트의 관리 아저씨는 내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할 때면 껄껄 웃으며 아이스크림 사 먹을 용돈을 쥐어주셨다. 담임 선생님들이 써주는 학적 특이사항에는 늘 “예의 바르고 인사성이 좋다 “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나의 선한 의지가 오해나 축소 없이 남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거라 믿던 구김살 없고 당당하던 호시절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는 낯선 섬에 와서 낯선 언어로 인사를 하며 살게 되었다. 이 곳에선 만나면 서로의 양 뺨에 입 맞추는 소리는 내며 인사를 한다. 비쥬(bisou)라고 불리는 인사법이다. 낯선 말 때문에 잔뜩 움츠러든 내겐 이 인사법마저 부담으로 다가왔다. 만날 때마다 비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친구의 친구에게도 해야 하는 것인지,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들에게도 해야 하는 것인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끊고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운동하다 땀이 난 상태에서도 해야 하는 것인지 등등 비쥬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수록 쓸데없는 고민도 혹부리처럼 늘어났다. 물론 단지 나의 잡다한 생각만으로 내가 어색하게 군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파티에서, 가족 모임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몇 번 비쥬를 하려던 나의 시도가 애매한 상황 때문에 무시당한 경험들은 강력하게 내 전두엽에 머물렀다. 허물없던 어린 시절이라면 몇 번의 무시당한 경험 따위는 깡그리 무시할 해맑음이 있었을 텐데. 서른둘의 나는 이상한 겁쟁이가 되었다. 나는 인사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행위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쌓은 마음의 벽은 말없이도 전달되었다. 나는 때론 사람들을 못 본 척했다. 누군가 다가와서 비쥬를 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는 행동은 자제했다. 나는 자꾸자꾸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참 별 것 아닌 행위이다. 누군갈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양 볼을 맞대는 것. 그게 다다. 나는 아주 쉬운 일조차 어려워하는 삶에는 혼자 낫지 못하고 곪아버린 상처가 있구나 깨닫는다. 그 상처는 클 필요도 없다. 아주 작은 상처인데 나을 틈 없이 자꾸 손톱으로 긁고 만지작거려 곪아버린 상처면 충분하다. 게다가 그런 작은 상처는 본인도, 타인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한다.  


2019년 말, 전염병이 닥쳤다. 사람들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며 한 해의 반을 보내고 있다. 내가 사는 이 곳도 더 이상 비쥬로 인사하지 않는다. 압박감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했다. 모두가 비쥬 하지 않는 일상, 대환영이다.  


언젠가 다시, 이것 저것 재지 않고 해맑게 정말 반가운 마음만으로 인사하는 날이 돌아올까? 나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여전히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영리한 영장류로서 오늘도 손을 흔든다. 즐거이 볼을 맞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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