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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수녀들>의 종교 왜곡, 어떻게 이해할까?

by 순전한작업실


SNS를 둘러보다 보니 최근 개봉한 영화 <검은수녀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더군요!


특히 영화 속에 재현된 구마의식 장면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주교의 교리에 맞지 않아 영화를 감상한 천주교 신자분들의 실망이 크셨던 것 같습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성경 내용을 소재로 하거나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재현하는 영화를 자주 볼 수 있죠. 그중 왜곡된 기독교의 교리를 표현한 내용의 영화는 종종 비판의 중심에 놓이기도 합니다.



성경 소재나 기독교적인 비유, 기독교인에 대한 묘사 등이 영화 속에서 활발히 재현되는 이유에는 기독교의 역사가 오래되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해온 중심 사상이었다는 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중에게 익숙하고 친숙하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독교 관련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독교인에 대한, 교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담론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렇다면 <검은수녀들>처럼 영화 속에 종교적으로 왜곡된 모습이 재현되었을 때,

영화라는 매체를 좀 더 비판적으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점을 생각하면 좋을까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짧게 이해하면 좋은데요,


우리가 흔히 감상하는 극영화(劇映畵, fiction film)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라고 부르는 기록 영화와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다릅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조합해 현실을 관찰한 사람이 해당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주제)을 전달하는 반면,


극영화는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과 배경,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구성해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 작가/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아무리 현실과 닮게 연출된 영화 속 장면이라도, 영화 장면 속에 담긴 인물과 사건은 모두 작가와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진행되도록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는 이러한 특성으로 창작물로서의 표현성, 예술성을 인정받습니다. 문학처럼 말이죠. 다만 시각(영상), 청각(음향과 음악)을 모두 이용하는 영화는 시각(문자)만을 이용하는 문학보다 더욱 현실을 닮아있고, 관객에게 주제를 설득하는 힘이 강합니다.





<검은수녀들>에 재현된 수녀들, 사제들, 악령, 부마/구마 행위 등도 모두 현실의 것을 최대한 닮도록 구성되어 있지만, 인물들과 사건들, 설정 등은 영화를 만든 작가/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따라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천주교의 실제 교리를 벗어난 '성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설정이 재현될 때, 관객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러한 설정, 장치를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최종적으로 드러난 주제를 생각할 때, 앞에서 제시된 사건들과 설정들은 주제를 뒷받침하기에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었나?"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영화가 제시한 답을 찾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다양하게 나눠보면, 영화가 종교를 왜곡한 이유가 특정한 문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는지, 대안적이거나 예술적인 접근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재현이나 표현이 적절했던 것인지도 평가할 수 있게 되죠.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검은 수녀들> 속 제작진이 타로, 무속과 같은 비기독교적인 영역을 왜 기독교인인 수녀들을 통해 재현했는지에 관해서도 질문하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영화를 감상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검은수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수녀들의 목표는 악령에 씌인 소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 목표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로 악령과 함께 수녀들이 소년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게 막는 천주교 내의 남성 중심 권력과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규율과 시스템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지점에서 영화는 '악령'을 소재로 한 오컬트의 장르를 쓰고 있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불평등을 강요하는 종교계를 비판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죠.


영화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마침내 소년의 영혼을 구원할 때, 여성이기 때문에 천주교 안에서 권력의 바깥에 놓여왔던 수녀들에게 '성부(하나님 아버지) - 성자(아들인 예수님) - 사제(남성)'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계보 대신 성모마리아로부터 이어지는 여성의 계보를 통해 권위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감독이 남녀평등이라는 주제에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영화적인 대안,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화적 대안,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들의 몫입니다. 관객들의 판단은 관객이 처한 다양한 맥락(경제적 격차, 종교의 유무, 직업, 출신 지역, 학력, 성별 등)에 따라 서로 다를 것이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다양한 담론들이 사회를 채우면서, 서로 토론하고 배우고, 반성하고 수정하면서, 민주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겠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디어, 그리고 특히 영화는 관객을 설득하는 힘이 강합니다. 관객들은 영화에 재현된 현실을 보고 그것이 현실 자체라고 믿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SNS에는 '천주교 신자들은 정말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느냐'하고 묻는 비천주교 신자들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첫째로는 영화를 비롯해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이러한 현실 왜곡에 대해 윤리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는 미디어 이용자(관객)가 개인의 창작물이면서도 동시에 공공성을 가진 미디어인 영화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영화 텍스트를 다양한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미디어 제작자들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왜곡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적하며, 건전하고 수준 높은 미디어 콘텐츠를 누릴 미디어 이용자의 권리를 지켜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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