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주는 소중한 가치

안식년

by 순정공방

공방 문을 닫고 육아에 집중하는 시간, 사업적으로는 '쉼'이자 '흔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창업 초기,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구가 막히자, 내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습니다.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맞을까?'


취미로 할 때는 자수가 재미있었는데, 업이 되니 몸이 고되었고,

내가 작품을 만들 만큼 그렇게 창의적인 사람이 아닌 걸 깨달았으니, 여기서 그만해야겠다며 자수를 할 수 없는 이유 수십 가지를 댑니다.


여기서 잠깐!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매일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은 어디든 존재하는데, 그 난관을 극복하는 힘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더 발휘되는 것 같아요. 내 만족과 성취를 위해 가시덤불 속이라도 기꺼이 헤치며 갈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원동력이 니까요.


창업 초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지 않고, 돈을 좇아 사업 방향을 정하니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불씨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부족함을 채우는 시간, 그리고 깨달음

스스로 선택한 일이 잘 안 되니 마음이 불안해지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팔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좀이 쑤시는 타입이기도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모티콘 승인이 되면 수익이 좋대~!’

이 말을 듣고, 팔랑귀인 나는 이모티콘을 그려 제출하기를 32회.

이모티콘 스튜디오 제안작

승인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습니다. 이모티콘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림으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아이디어와 드로잉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가능했기에, 진입장벽이 낮아 도전하는 사람이 많고, 수 천 건이 넘는 제안서 중에 승인되는 비율은 아주 낮았습니다. 승인은 안 됐지만, 1년 간 이모티콘 캐릭터를 그리면서 캐릭터에 성격을 부여하는 법,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실패 안에서 배움을 건집니다.




자수뿐만 아니라 손을 꼼지락 거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펠트 공예를 배웠습니다. 양모펠트를 뭉쳐서 바늘로 수백 번, 수만 번 찔러 입체적인 것을 만드는 공예인데, 이것도 자수 못지않게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나는 왜 이리도 시간이, 정성이 많이 드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나를 자책합니다.



왼쪽-루네빌 자수, 오른쪽-뜨개질로 만든 미니지갑
왼쪽-2018년 만든 철릭한복, 오른쪽-디지털드로잉 캐릭터들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철릭한복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고, 아이들의 탄생한 날짜, 시간, 몸무게를 수놓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고, 스토리텔링을 배웁니다.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나 관심 있었던 것을 배우며 나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휴식기'였지만, 결코 멈춰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알지 못했던 섬

가장 중요했던 깨달음은 '나는 제주에 대해 잘 알고 있나?'라는 근원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기에 당연히 안다고 착각했지만, 내 삶의 바운더리는 좁았고, 내가 아는 제주는 극히 일부였습니다. 제주가 갖는 소재는 넘쳐 나는데 제주라는 소재로 아웃풋이 안 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인풋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해집니다. 다양한 경험이 나를 형성하고, 축적된 나의 감성이 새로 유입되는 경험과 믹스되어 밖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전한 바운더리를 벗어나 자연에서의 경험이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알게 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향해 나아가듯, 제주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동안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관심 갖는 만큼 보였습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송이석을 밟을 때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온도를 손으로 만져봅니다. 머릿속이 아닌 마음속에 제주의 색과 질감을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이 시간은 잠시 묻어두었던 꿈을 펼치기 위한 연료를 채우는 기간이었습니다. 멈춤이 아니라, 다시 뛸 에너지를 응축하는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었습니다.

4년 후, 나는 다시 자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바늘을 잡습니다.







다음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