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멘탈을 단련시켜 주는 뜻밖의 멘탈 트레이너
#1. 아침을 깨우는 야생 동물 : 육식 동물
김이사의 목소리는 알람시계보다 정확하다.
오전 9시, 커피를 막 뜯으려는 순간,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야?”
순식간에 심장이 두 배로 뛴다. 커피를 마셔서 카페인을 채울 필요가 없다. 이미 교감 신경이 흥분되어 각성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카페인 대신 뿜어져 나온 아드레날린으로 몸을 잔뜩 웅크려 긴장한 야생 토끼 같은 꼴을 한다.
덕분에 나는 원두값을 절약한다. 물가가 오르는 시대에, 김이사는 나만의 가정경제 도우미다.
#2. 사무실 : 야생의 사자와 초식 동물의 터전
김이사가 지나가면 사무실은 정전된 것처럼 조용해진다. 마치 야생의 사자가 지나가는 초원 같다. 아무 일도 없으면 직원들은 초식동물이 되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나눈다.
그것도 잠시, 곧 각자의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일하는 척’이라는 고도의 생존 기술을 발휘한다.
회의가 있는 날은 괴롭다. 김이사는 목소리가 크다. 목소리를 높이면, 귀가 아프다. 가능하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합창단처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발언은 없다. 이 회의의 목적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 하면 열 마디가 돌아온다. 게다가 돌아오는 말은 ‘칼날을 칠판에 긁어대듯’ 날카롭다.
조용히‘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네 혹은 알겠습니다를 적절한 타이밍에 추임새로 넣는 데 집중한다.
가끔은 진지하게 고민한다. 김이사는 왜 늘 화가 난 걸까?
아침에 김치찌개가 짰던 걸까, 주식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그저 “관리자란 화내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김이사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쓰나미 같은 파급력을 지닌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라는 평범한 질문도 그의 목소리에 얹히면 “너 이 회사 왜 다니냐?”라는 철퇴로 들린다. 순간 온몸의 근육이 얼어붙고, 손끝이 떨린다. 참 이상하다. 아무도 안 때렸는데, 나는 왜 맞은 것처럼 움츠러들까.
어디 사전에 관리자는 화를 내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걸까. 만약 그런 사전이 있다면, 기름을 휘발유를 탈탈 털어 다 태워버릴 것이다.
#3. 김이사는 왜 그럴까
김이사는 왜 그러는 걸까?
혹시 우리를 미워하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그의 목소리 큰 잔소리는 사실 애정 표현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사랑의 매'.
표현 방식이… 조금 터프할 뿐인...
김이사도 사람이다. 악마는 아니다. 주말마다 교회를 나간다고 하니까, 악마는 아닐 것이다. 단지 성격이 ‘조금’ 날카로울 뿐. 그런데 문제는 그 날카로운 화살에 나도, 다른 직원들도 정통으로 맞는다는 것이다.
김이사에게는 하루 세끼 중 최소 한 끼가 늘 불만족스럽다.
택배는 제때 오지 않는다. 주식은 떨어지고, 기름값은 오른다.
이 모든 분노를 회사에서 풀어야만, 집에서 아내와 아이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선량한 '아빠'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따지면, 회사 직원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숨은 영웅들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선 사회 공헌 활동일 수도.
마음을 졸이며,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오늘도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퇴근 카드를 찍으면 게임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찍는 느낌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4. 결국 나는 묻는다
김이사는 왜 그럴까?
결국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김이사는 잘못된 사전으로 관리자를 화내는 직업이라고 배웠고, 배운 대로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김이사는 김이사답게 살뿐이다. 혹은 김이사의 과거에 김이사 같은 직장 상사가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보니, 불우한 가정의 아들이 아버지의 싫은 모습을 닮듯, 닮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단순히, 김이사가 왜 그러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큰 목소리 내는 상사, 비합리적인 명령, 음모와 배신 등,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인데, 하나하나에 너무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엔, 너무 초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김이사가 화내는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듯,
나는 퇴근 종소리를 기다리며 버틴다.
버티는 것
직무기술서에는 없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내 인생 사전에는 쓰여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