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心

겉으론 알 수 없는 그들의 속 마음

by 쑤니

2024 년 3월 글쓰기 수업에서 썼던… 글

(‘관계’란 주제로 지어낸 이야기)

<나의 할머니인 엄마의 시어머니 >


며느리가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마치면 바로 집에 들어오면 좋으련만 우리 동네 골목 끝 집 며느리 바람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아들 눈치를 괜히 보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9시면 일일드라마도 끝이 나고 자러 내 방에 가야 하는데 늦는 며느리 때문에 걱정이 되어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괜히 아들 내외가 큰 싸움이라도 할까 씻고 누워 이런저런 생각하다 잠이 막 들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며느리다.

“다녀왔습니다. ”

“어머이 진지 잡수셨어예?”

“시어머이가 밥을 뭇는가 걱정되는 사람이 이 시간에 들어와?”

굳이 이렇게 말할 것까진 없었는데 아들이 혹시 화를 낼까 싶어 내가 먼저 며느리를 나무라듯 큰소릴 냈다.

그 집 며느리처럼 될까 불안하여 쓴소리 몇 마디로 단속을 시켰더니 돌아오는 건 사납게 대드는 소리뿐이다.

고분고분하게 ‘네 그럴 일 없습니다. 일찍 일찍 다닐게요’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 번을 그냥 지나가질 않으려 한다.

아들이 슬슬 시동을 걸며 우리 둘의 실랑이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어른의 싫은 소리 한마디에 따박따박 대든다며 며느리를 나무랐고 아까 우리가 걱정하며 공유했던 바람난 남의 집 며느리 이야기를 하니 그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며느리는 화를 낸다. 이 집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집이 들썩거리게 싸울 일인가 싶지만, 며느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닫자 아들은 하려던 단속의 말이 덜 끝났는지 욕실로 들어가는 며느리를 붙잡고 다짜고짜 따지며 좀 오래가는듯하다.

아이고 좀 알았다 카고 마무리 하모 안 좋겠나! 이리될까 싶어 내가 미리 설쳤는데 노력이 허투루 돌아가버렸구만....나라도 얼른 자야 도와주는 거겠지.


<나의 엄마인 할머니의 며느리, 아빠의 아내>


“다녀왔습니다.”

일을 9시 마치고 볼일 잠깐 보고 10시 30분에 들어오며 저녁 식사 여부를 묻는 내게 성난 목소리의 암캐가 짖어댄다. 늦게 왔다고 싫은 소릴 하지 않아도 사실 일거리 많은 집에 들어오기 너무 싫었다. 싫어도 어쩌겠나 싶다. 내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일 복 많고 이런 남편이랑 결혼한 내 8 자, 9자. 내일 아침이면 새벽밥 해서 큰딸 도시락 두 개에, 밑에 아이들 두 개 싸야 하며 집에서 밥 드실 시어머니 고려하여 반찬 몇 가지 해놓고 나 밥 한술 뜨고 출근하려면 지금 바로 자도 몇 시간 남지 않아 일어나야 하는데, 들어오자마자 말대답할 가치도 없는 얼토당토않은 시비에 회사 일로 종일 피곤했던 몸이 더 무거워진다. 일 끝나고 볼일 좀 보고 왔다고 바람 운운하는 시어머니. 난 그럼 일 끝나면 즉각 집에 들어와 식구들 뒤치다꺼리만 해야 아무 소리 안 할 텐가!! 탁구나 배드민턴을 하는 거라면 이리저리 몸을 날려 공을 받아치겠지만 시어머니랑 남편이 하는 억지스러운 시비에 대받아주기도 짜증 난다.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댓구라도 하지. 아니라고 반박하면 대든다고, 답 안 하면 안 한다고, 해도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어쩌라는 건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시끄러워지는 게 싫은데 오늘도 바람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네.

‘나에게 아무 말도 안 걸면 좋겠다.’

‘오늘이랑 똑같은 내일이겠지만 얼른 내일이 오면 좋겠다.’


<나의 아빠이며 할머니의 아들>


새로 출근하게 된 회사는 비교적 일찍 마쳐 저녁은 집에서 늘 먹는다. 그런 나에 비해 아내는 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오는 날이 많아 아내는 늘 늦는다. 집에 오면 어머니와 둘째 딸, 막내아들과 넷이서 밥을 먹는다. 어머니가 혼자 밥을 차리는 걸 보기 싫어 중학생인 둘째 딸을 시켜 할머니를 도와드리라고 하고 티브이를 보고 있으니 저녁도 안 먹었는데 졸음이 쏟아진다. 이직한 곳이 아직 낯설어서인지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피곤함이 가중된 모양이다.

새벽부터 아내가 바쁘게 준비해 놓고 간 찬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시며 끓여 내온 어머니의 찌개로 저녁을 먹어 치웠다. 설거지는 어머니가 하시게 두고 싶지 않아 작은딸에게 시키니 툴툴거리지도 않고 해내는 모습이다.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런 모습을 내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접어 버렸다.

티브이에서 어제도 오늘도 하는 일일드라마의 대사가 들려온다. 어머니는 티브이 앞에 앉아 드라마 속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듯 집중해서 보고 계셨다.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 어머니가 건넛집 할머니의 며느리가 바람난 이야기를 해주며 잔업으로 늦는 아내를 의심하듯 나를 부추긴다. 괜찮다고 그런 일 없다고 걱정 마시라고 어머니께 아무렇지 않게 말은 했지만 하필 오늘, 회사 마치고 볼일 보고 온다는 아내가 의심 아니 걱정된다. 아내가 들어오면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밥을 먹고 드라마에 뉴스까지 끝나는 동안 나는 졸다 깨다를 반복했더니 10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어머니는 주무시러 가셨고 두 아이들은 자는지 노는지 다른 방으로 갔고, 시청자 없이 켜져 있는 티브이만 나와 같은 방에 있었다.

초저녁에 한 숨자고 깨서 방에 이불을 깔고 있을 때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어머니와 아내가 나누는 아니 싸우는 소리다. 집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어머니는 일 끝나면 일찍 안 다니고 싸돌아다니다가 들어온다며 공격을 했고, 그에 답을 않자 더 열받은 어머니가 큰소리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남의 집 며느리 바람난 사건은 어머니 입에서 나와버렸다. 그런 일이 우리 집에도 일어날까 걱정되어 그러신 건지, 평소 아내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싸움 구경이 재밌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고부간의 말다툼을 나서서 해결할 만큼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은 난 대부분 뒤에서 보기만 했다. 어느 편도 들 수가 없는, 어머니에겐 무뚝뚝한 큰아들이며 아내에겐 자상한 남편도 아니었기에 매번 이런 일이 불편했다. 저러다 말겠지 하며 자연스레 오늘 저녁이 정리되길 바랐지만 결국 내가 나서서 이 사태를 정리해야만 했다. 어머니를 진정시켜 주무시게 하고(어머니는 의외로 쉽게 누그러지시는 듯했다.) 아내를 나무랐다. 아내는 몇 마디 댓구하더니 그 뒤론 대답조차 않는다. 겨우 오늘은 이렇게 정리되는 건가? 내가 안 나섰으면 어머니랑 아내가 더 길게 갈듯하여 따져 묻고 시비 걸었지만 저녁에 일하고 오는 아내에게 그러는 건 아니었는데 후회가 된다. 내일은 모두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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