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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May 20. 2023

카리브의 천국, 칸쿤에 간다면 꼭 들러야 할 곳

킨타나루의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카리브의 열대 섬과의 뜨거웠던 첫 만남


우리는 바다를 건너 이슬라 무헤레스로 간다. 우리의 첫 마법의 마을 종착지인 이슬라 무헤레스는 멕시코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세계적인 휴양지인 멕시코 칸쿤과는 무헤레스 만(Bahia de Mujeres)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칸쿤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 정도로 가깝다 보니 섬에서도 멀리 칸쿤의 기다란 해변이 눈에 보일 정도다. 


카리브해를 접한 수많은 도시와 섬들 중 왜 하필 이곳이 마법의 마을로 선정되었을까? 멕시코 정부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법의 마을로 선정되었을 정도면 무언가 특별한 점이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휴가에 대한 기대로 얼굴이 잔뜩 상기된 사람들을 실은 페리는 설렘을 가득 싣고 천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드넓은 카리브해를 마주한 채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으니 미디어를 통해 가슴 한 구석에서 키워온 카리브의 열대 섬에 대한 로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카리브해의 숨은 보석을 만날 거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해변 @숲피


육지를 떠난 페리는 금세 정박을 알렸고, 선착장에 내려서자 눅눅한 습기가 몸을 감쌌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정오의 태양은 뜨겁고, 또 뜨거웠다. 일 년 내내 여름인 열대 기후를 자랑하는 카리브해의 어느 작은 섬은 자신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작지만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낯선 이에게 자신을 쉬이 내어 보이진 않을 거라고 무언의 경고를 날리는 듯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도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고, 정수리는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금방 축축이 젖어버린 옷가지는 내 속도 모르고 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선착장 @숲피


작열하는 태양이 모든 것을 녹일 듯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9월의 카리브해는 눈이 부시다 못해 멀 것 같았다. 내리쬐는 햇빛을 고스란히 담아낸 바다는 빛의 알갱이를 가득 머금은 채 쉬지 않고 반짝였다. 새하얀 모래사장과 새파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와 줄지어 선 초록빛 야자수들이 아름다운 빛의 대비를 이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반짝이는 이 섬은 마치 해적의 보물 상자 같았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바다 @숲피


고급스러운 대형 호텔들이 즐비한 복잡한 칸쿤의 해안가에서 고작 20분 벗어났을 뿐인데,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시야를 방해하는 높은 건물 대신 나지막한 건물 사이로 탁 트인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왔고, 파도가 몰아치는 역동적인 바다 대신 고요한 바다가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어지러운 도로변과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대신 작고 귀여운 골프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카리브 섬의 모습 그 이상이었다. 


골프카로 떠나는 섬 투어


이 섬을 여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골프카를 빌리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골프카들은 이슬라 무헤레스만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이슬라 무헤레스는 골프카가 주요 이동 수단인데, 길이가 7km, 폭이 500m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섬의 크기 때문에 자동차의 필요성이 낮아 자동차가 많지 않은 데다가, 도로의 폭도 넓지 않아서 오히려 덩치가 큰 자동차보다는 작은 골프카로 섬 주변을 더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거리 @숲피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골프카를 빌리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골프카 대여 업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행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장사꾼들이 호객 행위를 하며 다가오기도 하고, 거리에서 골프카들이 줄줄이 주차된 곳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대여 업체를 두어 군데 정도 둘러본 뒤, 1,500페소-한화 약 100,000원-에 종일 렌트를 했다. (시간당 500페소, 2022년 9월 기준)
 

이제는 이 작은 섬을 구석구석 둘러볼 차례였다. 목적지는 우리가 있는 북단에서 섬의 남단까지 내도록 달리는 것. 이슬라 무헤레스는 남북으로 긴 섬인데, 섬과 멕시코 내륙을 잇는 선착장, 호텔, 식당 등 대부분의 시설이 몰려 있어 여행자들이 주로 머물게 되는 곳은 섬의 북쪽이다. 먼저 지도를 살핀 뒤 골프카의 시동을 걸었다. 탈탈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골프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태양이 가장 먼저 땅에 닿는 곳


목적지인 섬의 남쪽 끝에 도착을 했다. 푼타 수르(Punta Sur). 남쪽 끝지점이란 뜻이다. 싱싱 바람을 가르던 골프카를 멈추고 절벽을 향해 난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생전 찾지도 않던 콜라를 마구 들이키고 싶은 기분이 든다. 바다의 뜨거운 열기는 가시지 않는 갈증을 자꾸만 불러왔다. 뻥 뚫린 하늘 아래 뜨거운 태양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오의 태양은 잠시의 틈도 내어주지 않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만이 여행자의 노고를 살며시 달래줄 뿐이었다.


푼타 수르 @숲피


나는 지금 섬의 끝에 서 있다. 숨이 멎을 듯한 절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 절벽 앞에 서면 눈을 메우는 것이라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바다와 푸른 하늘이 전부인 곳.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귓가를 스치는 거친 바람 소리와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였을까. 수백 년 전 마야인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이곳 섬의 가장 남쪽 끝단에서 달의 여신이자 다산과 비를 상징하는 익스첼(Ixchel) 여신에게 풍요를 빌었다. 세상의 끝에 서서 태초의 바다를 마주한 채. 


푼타 수르의 마야인 동상 @숲피


오래전 마야인들이 서 있던 이곳은 떠오르는 태양이 가장 먼저 땅에 닿는 곳이다. 멕시코 영토의 가장 동쪽,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안녕을 빌었을까. 긴 시간이 흘러 마야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그 시간을 증명하듯 작고 소박한 신전만이 홀로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엔 이제 여행자들의 허기를 달래줄 갖가지 음식을 파는 노점이 생겼고, 입구엔 익스첼 여신의 동상이 세워졌다. 푼타 수르는 매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 익스첼 여신의 동상은 유명 관광지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놀러 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잠시 왔다가 훌쩍 떠나갈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절벽의 끝자락에서 거센 바람을 홀로 견뎌내고 있는 신전의 모습이 왜인지 외로워 보였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울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푼타 수르의 절벽 @숲피


카리브의 마법, 이슬라 무헤레스


눈길을 사로잡는 색색의 아기자기한 수공예품들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 해변에 다다랐다. 세계 10대 해변 중 하나인 플라야 노르테(Playa Norte)는 섬의 북쪽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하얗고 고운 백사장과 얕은 바다가 어우러진 낙원 같은 곳이다.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인 해변가엔 신나게 물장구치며 노는 아이들과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로 가득했다. 


플라야 노르테 @숲피


손 끝으로 만져본 바닷물은 따뜻했다. 한낮의 태양이 한참을 데워 놓고 갔기 때문이리라. 감겨오는 바닷물은 두 발을 잔잔하게 어루만졌고, 부서진 파도의 거품이 발등을 부드럽게 감쌌다. 백색의 모래는 또 얼마나 고운지 슬며시 발가락으로 쥐면 금세 그 틈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잔잔한 바다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얼굴만 내놓은 채 마치 목욕탕처럼 물속에 들어앉아 맥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아득히 귓가를 적셔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왜 이곳이 지상낙원으로 불리는지, 왜 마법의 마을 중 하나인지 알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파스텔 빛으로 물든 하늘, 햇빛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주황빛 선명한 여운이 남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간. 누군가 세상의 예쁜 색들만 모으고 모아 예쁘게 칠해 놓은 것처럼,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하늘은 촉촉한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물을 먹어 먹먹한 구름이 수평선 주위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해질녘의 플라야 노르테 @숲피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릴 때, 그때만큼은 모두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본다. 하늘은 수없이 많은 색들이 뒤섞여 오묘한 빛깔을 자아냈다. 내가 살면서 본 것 중에 가장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산란하는 빛이 빚어낸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물의 색과 살갗에 닿는 그 따스한 온도. 나는 그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졌다. 그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따스해서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곧장 바다에 뛰어들어 엉엉 울고만 싶어졌다. 저마다의 외침과 저마다의 탄성, 저마다의 흥얼거림이 한 데 뒤섞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일몰 @숲피


발갛게 작열하다 타들어가는 오늘의 가장 뜨거웠던 태양은 물러갈 때를 마치 안다는 듯 다가올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사람들이 다녀간 자리엔 수많은 발자국과 누군가 지어 놓은 모래성만이 남았다. 이곳의 모래 위엔 얼마나 많은 발자국들이 새겨졌다 지워졌을까.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에는 어떤 이야기가 새겨져 있을까. 바다 위를 자유로이 활강하는 새들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





"멕시코 마법의 마을 여행기"는 남이사님과 제가 함께 꾸려나가는 매거진입니다. 이전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프롤로그 읽으러 가기 : https://brunch.co.kr/@yunj81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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