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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모든 것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by 수수

제주도살이 3년째다. 파도치는 바다도, 길거리 야자수도, 한라수목원 산책도 그저 일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다. 처음 제주도살이 시작했던 2023년 1월, 내가 거주하는 집 근처 동네 사이사이를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같은 모습이었다. 2025년 10월, 나는 이곳에서 여행자가 아닌 경제활동을 하며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지역주민이 된 거다. 그동안 단골 미용실도 생겼다. 미용실 선생님과 사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집 앞 단골 음식점 여사장님은 내가 잘 먹는 음식을 잘 안다. 3년째 기간제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근무한 초등학교마다 낯설지 않다. 지금 네 번째 학교다. 거주지가 제주시이지만, 첫해에는 주말이면 제주도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녔다. 1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멋진 곳들이다. 나는 성산일출봉 주변, 서귀포 예쁜 카페들, 한림, 사려니숲, 오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다녔다. 3년째인 지금, 서귀포는 먼 곳이 되었다. 너무 멀어 언제 다녀오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호에서 가까운 하귀정도면 족하다. 하귀만 가도 바닷가 아름다운 카페들이 즐비하다. 제주도 도민인 동료 교사가 했던 말이 내 것이 되었다. 서귀포는 너무 멀어서 1년에 몇 번 밖에 안 간다는 말이다. 그것도 특별한 여행 목적으로다. 나도 제주도민이 된 후로 그런 걸까? 2024년에 제주도민으로 옮겼다.

나는 매일 출퇴근하며 바다를 본다. 저녁에는 이호 해변 말등대 주변 공원을 달린다.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가 내 곁에 있다. 내 것이 되었다. 거칠게 몰아치며 부서지는 파도를 보는 것도 공짜다. 주말이면 승마를 배우러 승마장에 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휴일 바닷가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는 것도 간식을 먹듯 쉽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외로움을 달래며 찾아낸 보물들이다. 낯선 타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내 삶으로 끌어들인 일들이다. 2018년 폐암수술을 하고 나서,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주도에서 몇 개월 살았다. 제주도 곳곳을 산책할 때마다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폐암이라는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내 안에서 스멀스멀 소망이 꿈틀거렸다. 제주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간절했었나 보다. 2018년 이후로 건강이 회복되었고, 나는 지금 제주도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 도시 한 복판 아파트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 잠깐 머물렀다 가는 여행자가 아닌, 제주도민으로 산다. 내 주변 모든 자연은 내 삶을 가꾸어 가는 선물이 되었다. 이제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기름 같은 외로움과 낯섦은 사라졌다. 소중한 것들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감사'라는 말을 되새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좋은 사람이나 상황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소홀하게 대하는 듯하다. 가족, 연인, 이웃, 형제, 직장, 먹는 일, 자는 일, 얼마나 많은가! 내 방 작은 화분에 식물이 쑥쑥 자란다.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 하던 식물의 잎이 3배로 성장했다. 나는 가끔 식물을 볼 때마다 식물 잎에 내 볼을 갖다 대며 "고마워, 예쁘게 커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낯선 곳에서 지내는 동안 작은 자연까지도 내 마음을 토닥여 주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 들리는 소음까지고 정겹다. 그전에 신중하게 지켜내지 못했던, 익숙한 모든 것에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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