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2번 이직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각각 스타트업과 대기업으로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지요. 한 지인분은 "원래 있던 곳과 많이 다른 환경으로 옮겼는데 그런 결정을 한 배경이 무엇인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질문에 답했던 것을 곰곰이 떠올리며 이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 신입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2020년에 마케팅/AMD 인턴 경험이 있어요.)
2023년에 프로덕트 매니저로서의 첫 직장을 퇴사했고 이후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졌어요.
2024년에 2년차 경력으로 스타트업 A사, 대기업 B사까지 총 2번 이직했어요.
2024년 12월에 막 3년 차가 된 주니어 PM/PO예요.
본격 이직 준비를 시작한 2023년 12월 이후 2024년 3월까지 여러 기업의 채용 전형을 진행했어요.
2024년 4월 스타트업 A사에 프로덕트 매니저 직무로 입사했어요.
넥스트 스텝을 위해 A사에서 어떻게 일할지 목표 & 포지셔닝을 고민하며 일했어요.
(+ 커리어 카운슬링 w. Supersense 웬디님)
2024년 8월부터 다시금 이직 준비를 시작했고 재직 중이라서 신중히, 집중해서 지원했어요.
2024년 9월 대기업 B사에 프로덕트 오너로 입사했어요.
2024년 4월 이직: HR테크 스타트업 A사 프로덕트 매니저
왜 이곳을 선택했는가?
입사 후에 어떤 경험을 했나?
2024년 9월 이직: 리테일 대기업 B사 프로덕트 오너
왜 이곳을 선택했는가?
입사 후에 어떤 경험을 하고 있나?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
2023년 5월 퇴사 이후 재정비 기간을 갖다가 2024년 4월 이직한 곳은 HR테크 스타트업이었어요. 아직 2년 차 PM인 데다가, 이전에 커머스 도메인에서의 1.5년의 경력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도메인에 도전하기까지 아무래도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오히려 이전의 경력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하게 눈앞에 주어진 기회에 더 열린 마음으로 도전해 볼 수 있었어요.
도전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면접 경험이었어요. A사 면접에서 만나 뵈었던 프로덕트 리더분들과의 대화가 참 좋았는데요. 왜 그 경험이 그렇게도 좋았는가를 좀 더 설명하려면 그때 당시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전 직장을 퇴사를 하고도 몇 개월 동안은 무언가를 할만한 의욕 자체가 아예 없었어요. 번아웃이 나아지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어요. 퇴사 후 회복에 전념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었지만, 이직 준비를 시작할 시점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어요. 휴식기가 길어지면서 느끼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그런 제 상태는 당시 여러 번의 면접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서류 합격은 해도 면접 합격은 어려웠어요. 저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데, 저를 뽑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느끼게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A사 면접에서 프로덕트 리더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저의 경험과 능력을 인정해 주시고 믿어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의 느낌을 텍스트로 깔끔하게 정리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스스로를 긍정해도 된다는, 믿어도 된다는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선뜻 그런 마음을 먹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저에게는 A사 면접이 그 계기였어요. (실제로 A사 입사를 계기로 번아웃에서 벗어나서 그 이후로는 다시 의욕이 넘치는 상태로 부활했어요!)
그리하여 2024년 4월 A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A사에 입사하며 저에게 생긴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많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었어요. 그전에는 직장에서 주어진 정보를 흡수하기에도 바빴는데, 나름 경력직 이직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이건 왜 이렇게 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겐 이런 게 필요한데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대표님이 생각하고 계신 바와 반대되는 의견을 담은 디엠을 대표님께 보내기까지 하고요. (대뜸 보낸 메시지임에도 대표님이 포용해 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책도 선물해 주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직군의 동료들까지도 "항상 질문하는 사람"으로 저를 인식하고 계셨어요. 제 질문 덕분에 프로젝트 관련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도 들었어요.
이 시기에 저는 이직한 환경에서 커리어 방향성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Supersense 커리어 카운슬링을 받았었어요. 그때 Supersense 의 커리어 컨설턴트 웬디님이 제게 필요한 액션플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어요.
"Intellectual Challenge를 최적의 타이밍에 간헐적으로!"
이때 저는 소속된 조직에 지적인 도전을 하며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경력이 쌓일수록 이러한 임팩트를 더 많이 만들도록 기대받게 될 것이며,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저는 그 여정에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디뎠어요.
언젠가 생성형 AI 기반 프로덕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이룰 수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 브런치에 올린 글(AI의 시대, PM으로 살아남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2023년에도 AI 관련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경험이 있어요. 그만큼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관심이 있었는데, 운 좋게도 회사에서 직접 LLM 기반 프로덕트를 만들어볼 수 있었던 점이 뜻깊었어요.
이전에 개인적으로 공부했던 것에 더해서 프로젝트 맡은 후 주말에 서점을 뒤지며 찾아낸 기술 서적들을 읽으며 배운 것을 바로 업무에 적용하고 감을 잡아간 경험이 인상적이었어요. 단순히 새로운 기술 도입에 포커스를 맞춰서는 안되고, 현재 우리에게 어떤 사업적 전략/방향성이 있는지, 고객/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정말 LLM 도입이 맞는지, 만일 도입한다면 결정적으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다방면에서 '왜 지금, 이곳에, LLM이어야 하는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이러한 상위 기획을 마치고 경영진과 1차 싱크를 맞추고, 프로덕트 구성원들과 2차 싱크까지 맞춘 후에는 당연히 어떻게 LLM을 도입할 것인지, LLM 기반 프로덕트는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해야 했어요. 모두가 LLM 기반 프로덕트 개발이 처음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더욱 넓게 정보를 탐색하고 습득해서 바로바로 공유해서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는 물론 책도 도움이 되었지만, 매일 새롭게 현장에서 길어올린 정보가 공유되는 채널들(ex. 링크드인, 미디엄 등)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테스트, 데이터 및 서비스 관련 정책 정의와 내부 협의, LLM 모델의 비용 예측과 비용 절감을 위한 여러 시도까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달만에 기능을 출시했을 때는 역시 만감이 교차하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게... 되네..?'에 가까웠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능 출시 이후 B2B 고객들이 실제로 이 기능에 매력을 느껴서 우리 제품을 구매하고, 더 많이 사용하게끔 만드는 일이 남아있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일즈팀과의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직접 세일즈팀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세일즈의 언어와 프로덕트의 언어,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걸 배웠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부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2년차에게 LLM 기반 프로덕트 론칭 프로젝트를 담당하게끔 하는 곳이 많진 않을 거라, 이 환경이 아니었다면 못했을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몇 개월 만에 이곳을 떠나 다시금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당시의 저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또한 저에게 필요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직 준비를 거듭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조직은 어떤 조건을 갖춘 곳인지가 점차 명확해졌어요. 커리어 성장을 위한 니즈도 존재했고, 향후의 인생 계획과도 닿아있었습니다. 당시 이직 준비를 하며 정리했던 우선순위는 위와 같았어요.
그동안 경험했던 조직들은 어땠는지 돌이켜보고, 그때의 경험들을 토대로 앞으로 경험하고 싶은 조직은 어떤 조건을 갖춘 조직일지 구체화했어요. '이런 곳에 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은 조건들이었죠. 이후 조건에 80% 이상 부합한다고 여겨지는 기업의 JD가 열리면 적극적으로 지원해봤는데요, 현재 재직 중인 B사가 이 과정에서 지원했던 곳입니다. (입사 후 돌이켜보니 위에 적어둔 우선순위 상의 조건을 대부분 만족했네요. 역시 요구사항은 명확할수록 좋다는 레슨런!)
입사 전에 B사에 다니는 지인분께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며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회사도 지원자에 대해 알아보려하지만, 지원자 또한 회사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나 프로덕트 오너/프로덕트 매니저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의해 업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프로덕트 조직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표 중심의 제품 고도화에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드렸고, 충분한 답변을 받은 후 안심하고 집중해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여러가지를 여쭤봤음에도 불구하고... 답변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하여 2024년 9월에는 B사의 프로덕트 오너로 이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제 입사 후 3개월이 지나간 시점입니다. 지금까지는 3개월동안은 이곳의 조직 문화,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에 집중해왔어요. 처음엔 당연히 낯설고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스타트업만 경험해봤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진 느낌이었거든요. 특히 저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퍼포먼스의 수준,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느껴졌어요.
스타트업에서는 주니어는 사수 없이 알아서 잘해야 했지요. 참고할 수 있는 문서도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바로 물어봐서 확인하는 성향이 생겼어요. 또한, 어깨 너머로 빠르게 배우고 정확하지 않더라도 빠르게 실행하는 게 필요했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피드백하며 일하려 노력했어요. 필요할 경우에 팀장/실장님께 피드백을 받았지요. 물론 주변에 저보다 연차가 높은 동료분들이 계셨지만 말 그대로 동료로서 같은 레벨에서 고민을 나누는 사이에 가까웠고 누군가가 저의 사수가 되어서 일을 알려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고민을 함께 나누지만 기본적으로 각자도생이랄까요.
반면, 지금 속한 조직에는 사수/선배가 계세요. 보통 규모가 큰 곳에서는 직속 상사보다는 선배/사수/선임이 신입이나 주니어에게 일을 알려주시는 것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조직이 커질수록 실무자 간에 선/후배 관계에 따라 일을 알려주고 배우는 방향으로 변화하는구나 싶었어요. 저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규모의 조직이고, 처음 경험하는 관계였지요.
나한테도 언젠가 사수/선배가 생겼으면 좋겠다 했었지만, 사수 - 부사수 혹은 선배 - 후배 관계도 처음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한 거더라고요. 사실 사수/선배가 없었다보니 당연히 그 관계에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감을 잡기가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어요. '내가 이런 부분까지 공유드려도 되나 or 공유드려야 하나?' 라던가, 피드백을 받았을 때에 '혹시 내가 너무 못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피드백을 주시는 건가!'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스스로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과욕 상태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다소 방어적인 상태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그저 환경이 달라져서 이전과 달랐던 것뿐, 자연스러운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임을요. 그런데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그때부터는 이 조직에서 저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야할지도 좀더 알게 되었어요. 모르는 부분이나 진행하고 있는 부분을 자주 공유하고 도움도 요청하면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아주 든든해요!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항상 찢어지도록 큰 보폭으로 휘청거리면서 걷는 게 익숙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한 발 한 발 나만의 일하는 방식과 노하우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며 걸어갈 수 있는 환경에 왔다고 느껴요.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을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일하는 환경이 달라지는 게 이렇게까지 영향이 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나름대로 제 안에 어떤 고정된 관점이나 인식을 형성해두었단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보니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려면 그동안의 관점과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하더라고요.
그리하여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회사에 다니는 요즘. 저는 이제 막 3년차 주니어가 되었다보니 이곳에서는 연차 기준 가장 막내에 속해요. 그런데말이지요? 사실 지금 좀 어색해서 그렇지, 본래 제 인생의 추구미는 용의 꼬리예요. 어딜 가든 제가 제일 못하는 상태로 시작해서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 레퍼런스 삼아 영향 받고 배우면서 성장해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 딱 그런 상황이에요. 압도적으로 그런 상황이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라서 든든해요. 저는 제가 맡은 일을 차근차근 완성도 있게 해나가면 되고요.
여유를 가지려고, 너무 잘해야만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그게 성격상 잘 안되는 편이지만 그런 면조차도 스스로 인정하고 보듬으며 노력해보려고요! 긴장해서 패닉이 오는 것보다 부담을 내려놓는 편이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괜찮을 거예요. 저는 언제든 항상 이전보다 더 나아지길 선택해왔고,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꼭 믿어주려고요. 혹시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계속 믿어주려고요.
이곳에서 저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한다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등 기획하는 하나하나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갖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어찌 보면 PM/PO라면 당연한 걸 지금 배운다고? 싶을 수도 있지만 막연히 느끼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말하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동안은 막연히 why가 중요하다 였다면 앞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놓은 why로 정말 제대로 설득해서 결과물을 내어보는 경험을 많이 쌓고 싶어요. 그러면 주변에 계신 선배분들처럼 생각하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3년에 적은 일기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어요.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내가 PM/PO로서 why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푸시해주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런 환경에 와 있어요.
1~2년차까지는 사업적인 방향이 이러해서, 요구사항이 존재하니까, 필요한 기능이니까 만들어야 했어요. 저는 기획자로서 이 기능을 어떻게 잘 만들지를 고민해서 100% 수행해내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요. 우선은 실행을 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 실제로 3개월차 신입 프로덕트 매니저일 때 제가 세웠던 단기 목표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3~5년차에는 어떤 문제를 왜 해결해야 하는지, 그 해결을 위해 이 기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구성 요소 하나하나의 이유와 과정에서의 선택 하나 하나에 대해 '왜'를 명확하게 정의해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환점이 오고 있다는 걸 2023년의 저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운이 좋게도 저는 스타트업에 다니며 제 연차에 쉽게 맡기 어려운, 제법 큼직한 일을 하는 기회를 얻었어요. 덕분에 나름대로의 성과도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환경에 왔어요. 한 발 한 발 크고 작은 유효타를 날리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그 경험이 쌓여 훗날 어느 일이든 능수능란하게 해결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떤 업무를 하던 이 일을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서 실행하기를 반복해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계속해서 성장시켜보려고요. 단순히 일을 쳐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서 신중하게요. 그럼으로써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보다 효율적/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이요. 몇년째 이어오는 Today I Learned 챌린지가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줄 거 같아 기대가 됩니다.
저는 제법 꼼꼼한 편이에요. 스타트업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저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꼼꼼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제가 PO로서 챙겨야 하는 디테일과 그렇지 않은 디테일을 명확히 구분해 선택과 집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느껴요.
함께 일하는 선배분들의 피드백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인데요, 예를 들면 to-be를 설명할 때 저는 와이어프레임을 피그마로 예쁘게 그리고 만족해버렸는데, 사실 실제로 소통할 때 필요한 건 to-be에서 이 넛지가 왜 여기에 들어가야 하는지, 왜 강조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보다 뾰족한 근거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단편적인 예시이고 그 외에도 필요한 디테일과 필요하지 않은데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욕심으로 굳이 챙기는 디테일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요. 모든 디테일을 챙기면 좋은 거 아니야? 싶을 수 있지만, 이 조직과 직무에서 응당 챙겨야 하는 디테일이거나 혹은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일부 디테일은 포기하거나 미뤄둬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날카롭게 사고하고 액션하는 PO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디테일과 필요하지 않은 디테일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해보여서 의식적으로 노력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2023년 연말 회고 내용을 다시 봤어요. 퇴사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부터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로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 저는 어느새 PM/PO로서 세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네요.
"지금처럼 이렇게 회복 탄력성이 높은 걸 유지하면서 일해야 되는 동기는 어디에서 유발되나요?"
한 번은 면접 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그날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저는 제가 어딘가에 기여했다라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해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좋은 일도 물론 있지만 힘든 일도 겪으면서 제가 직업인으로서 성숙해지는 것도 있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양한 목적이 있고 방향성이 있겠지만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은 '나는 발전했어. 나는 이제 조금 더 성숙해졌어'라는 것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듦에도 불구하고 계속 동기부여되면서 '그래도 더 해봐야지, 이번엔 이거 해봐야지, 재밌겠다.' 하면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면접이 끝난 후에도 이 질문을 오래도록 되새김질 했어요. 일이 나에게 주는 여러 감정과 경험을 소화해내기란 참 어려운데, 그럼에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요. 실제로 저는 2023년에 퇴사한 후에 PM/PO도 회사 생활도 아닌 아예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시 회사로, 다시 PM/PO로서 일하기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스스로 다시금 정리해보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오래도록 반복해 읽는 글이 떠오르더라고요. 헤르만 헤세의 산문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삶은 당대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언젠가는 스쳐 지나가 버리겠지만 우리 각자에게는 생과 사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과제를 저마다 안고 있다. 그 과제는 평범하고, 교훈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들은 '해결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며, 그것은 그저 우리에게 고통 그 자체만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 고통은 곧 우리의 삶이 되며, 기쁨이라는 감정과 삶에서 느끼는 고귀한 가치는 오직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152p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고, 일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그 과제가 주는 다양한 감정 중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백하자면 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예요. 자아실현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일이 너무 중요해서 그만큼 괴로웠어요. 왜 나는 하필이면 일에서 자아실현을 하나 싶었지요. 하지만 저 글을 읽고 나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이 과제(즉, 일을 통해 인정 받고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자신)를 꼭 해결하려고만 애쓰지말고, 이 과제를 통해 경험하는 순간들, 감정들을 통해 인생이 다채롭게 채워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2024년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고, PM/PO라는 직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아직은 제가 더 해볼 수 있는 게 많고, 하나씩 해내다보면 더 성숙해지겠지요. 직업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도요. 이러한 기대가 있었기에 2024년에는 새로운 환경으로, 원하는 환경으로 이동하고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서, 이제는 전환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지금 제가 겪고 있는 변화에 감사하고 올 한 해동안 바쁘게 도전했던 저 자신에게 고맙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에게 많은 도움과 응원 보내주시고 인사이트를 주신 분들께도 감사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꼭 도우러 갈게요.
연말에 이직 회고를 쓰게 되어서 마치 연말 회고 같은 마무리를 하게 되었네요.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희노애락으로 다채롭게 채워지는 삶을 떠올리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2024년을 마무리하실 수 있기를 바라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