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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s Oct 27. 2024

그대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10주기

십 년 전 그날을 기억한다.

'속보'의 간단명료한 문장들이 너무 황당하던,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부터 쏟아지던, 설마 오보겠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의심하며 밤새우던.

이십여 년 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그대와 처음 마주했던.

삼십여 년 전, 첫사랑에 빠졌던.


나의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를 함께 숨 쉬었던 그대가 떠나고 10주기가 되었다.

나는 어느덧 떠날 무렵의 그대와 동년배의 나이를 지나간다.  




한강의 노벨상 소식 이후 인터넷과 SNS 속 세상이 온통 한강의 소설 속 구절들로 떠들썩하던 10월이었다. 그런 잔칫집 소음을 뒤로하고 모처럼의 망중한에 꺼내든 책은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었다.

10년 전에 사두기만 하고 차마 펼치지도 못한 채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이 책의 출판사가 무려 문학동네였다는 것도 이제야 새삼 알았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니 문장 문장마다 그의 목소리가 활자에서 소리로 변환되어 생생히 울리는 체험을 했다.    

그리웠다. 나직한 저음, 쾌속의 달변, 잘 벼린 칼날 같지만 한없이 따뜻한 이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오래전 일찍이 각인되었었지.   


10주기의 10월 한 달 동안 그의 책을 가만가만 조금조금씩 읽어 내려갔다.  

조용하고 화창한, 추모식이었다.



이 책은 생전 그가 썼던 글들을 모아 엮은 모음집 형식이라, 15년 전 혹은 20년 전쯤 썼음직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그의 시간이 10년 전에 멈춰버렸다는 가감 없는 현실이 묘한 슬픔으로 불쑥불쑥 치고 올라왔는데, 그건 단지 문장들에 배어 있는 과거의 화법이나 시절 지난 농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주제에 대해, 이 사안에 대해, 지금의 그라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까. 어떻게 과거의 자신의 발언을 새로 업그레이드해 진화된 썰을 풀고 있을까.

10년의 세월을 머금은 그의 이야기는 분명 매혹적이었을 것이고, 논리적이었을 것이고, 빈 틈 없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고, 듣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해졌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변함없이 약자의 편에 선 따뜻함이 기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쯤이면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작금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천박하고 불안정한 것과 신해철이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의 부재를 연결 짓는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꼰대도 개저씨도 아닌, 예외적인 한 사람의 큰 몫을 그는 해내었을 텐데.




한국에선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독보적인 음악인이자 논객이던, 많은 이의 오빠이자 형이던 사람이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끔찍한 고통 속에 한창나이에 눈을 감았다.

한낱 소리소문 없는 1인의 팬이던 나의 삶에도, 이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 상실로 남았다.


그것이 마지막인 줄 예상하지 못했던 상실들이, 어처구니없는 이별들이, 점점 더 자주 뒤통수를 친다.

그때마다 주저앉아 망연자실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또 꾸역꾸역 믿기지도 않는 숫자만큼씩 나이를 먹어 있어 황당해지고.

 

애초에 좋은 이별이 가당키나 한가.  

이별들은 하나같이 아프고 아렸다.         


누구에게나 삶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상실의 연대기인지도 모른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

내 곁에 있었던, 더 이상 곁에 있지 않은 그대에게, 그대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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