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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Sep 08. 2022

그리하여 눈물 흘릴 필요 없음

소녀여, 곁에 아무도 없다면 혼자서 죽는 거다,

‘홀로 있으면 홀로 외로워진다. 둘이 있으면 둘이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겨루기에는 둘 다 너무 외롭다. 독하게 마음먹으면 더 고독하게 외로울 수도 있지만 더 고독하게 외로운 것을 지켜볼 사람이 없을까 봐 참는다. 이 외로움이 어디 가겠는가?’


김언 시인의 <홀로>라는 시는 사무치게 혼자다. ‘혼자 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집순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카페에 가도 혼자 책을 읽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하다. 차분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을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반면 나는 혼자 있는 상태를 싫어할뿐더러 견디지 못한다. 혼자 있는 것은 슬픔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안과 공포로 증폭된다.


혼자 있는 방,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린다. 전등을 켜고 스탠드를 켜도 너무 어둡다. 고요한 방 안에서 나는 쓸쓸하다. 어딘가에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엄마에게,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전화를 하는 나는 이상하게 명랑하다. 밝고 활기차다. 상대방이 걱정하거나, 혹여 부담을 느낄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목소리일 것이다. 전화를 끊은 후 또다시 적막감에 휩싸인다. 공허함이 공포로 바뀔까 두려워 노래를 틀어놓고 약을 먹고 잔다.


사람이 곁에 없는 것만이 혼자인 것은 아니다. 혼자 있는 상태는 물리적일 수도, 심리적일 수도 있다. 전시회에 가기 위해 친구를 기다리던 날,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마 혼자 있어서 그럴 것이라 여기며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친구를 만나서도 나는 창백했고 어딘가 불편했다. 점점 소리와 공간이 무서워졌고, 끝내 친구보다 먼저 전시회를 나와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군중 속에서든, 집에서든, 친구들과 함께 있는 강의실과 술자리에서든, 사람은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다. 그날 전시회장에서 나는 홀로 외로웠고 아무도 손을 뻗어 줄 것 같지 않았다. 광활한 우주 속에, 깜깜하고 깊은 바닷속에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은 공허함에 휩싸였다.


불편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을 업로드한다. 타인과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SNS는 안도와 위안을 준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타오르는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시간의 누적도, 감정의 교류도 없이 맺어진 피상적인 사람들과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우리를 서로에게서 고립시키고 신뢰와 책임을 약화시킨다. 소셜 네트워크 세상 속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차례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혼자 생각하는 것을 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글을 썼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줄 수도 없고 함께 손을 맞잡고 써 줄 수도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쓰고, 감정을 시로 정제시켜 써보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외롭지 않았다.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았고 흘러가는 대로 관조할 수 있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단어들에서 점차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 실존적인 외로움 일지 고민하며 호흡이 긴 글을 써 내려갔다. 일기장은 두툼해졌고 한 권, 두 권 쌓여갔다. 책이 쌓여가는 만큼 쓸쓸함은 한 단계씩 내려갔다. 외로울 땐 나와 이야기했다. 세상에 말 못 할 비밀은 없고 다만 듣는 귀가 없을 뿐이라 했던가. 혼자 있든 아니든, 새벽이든 한낮이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


고독은 ‘홀로 떨어져 있음’이다. 외로움은 ‘마음이 쓸쓸한 상태’로, 고독과 관련은 있지만 동일한 상태는 아니다. 혼자 있음은 나쁜 것도, 피해야 할 것도 아니다. 외로움 또한 병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다. 외로울 때 타인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깨닫게 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고독은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근본 감정이자 존재의 의미를 밝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외로움을 딛고 고독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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