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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Sep 24. 2023

소설 '할리페' 20

20화 <엠마의 결심>

“참, 제 언니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언니에게 들었어요.”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알랭님 아니었음 우리 언니는 아주 큰 일 날 뻔했다고 하던데...”

“제 일이니까요.”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들면 그걸 표현하는 게 맞죠. 

그래서 전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네.”

“그런데 늘 그런 식이신가요?”     


갑작스럽게 도전적인 질문을 받게 된 알랭이 당황하며 대꾸했다.     


“그런 식이라니요?”     


아무렇지도 않게 알랭의 두 눈에 적대감 없는 레이저를 쏘아대며 엠마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까 말, 그러니까 프시케 얘기할 때 빼곤 너무 단답형으로 의례적이시라 제가 말을 이어가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저 제 일이 그런 것이라 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뿐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러니까요. 이렇게 길게 말씀하시니까 좀 좋아요! 

대화란 상대가 뭔가 말을 이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맞는 거랍니다.”     


아무 말 없는 알랭의 뒤통수만 바라보다 다시 엠마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뭐 특별한 일 있으세요?”     


알랭이 고개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전 이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알랭님이 하셔야 할 일 중에 혹시 손님을 위한 일도 있나요? 

그러시다면 손님으로서 청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사실 손님을 위해 특별히 뭘 해야 하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후작님을 위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만.”

“와~ 말씀이 정말 많이 길어지셨네요. 

으음... 하날 배우면 열을 알아들으시는 모양새예요. 아주 좋아요. 

참, 그건 그렇고, 제가 드렸던 말씀, 그러니까 손님으로 청하고 싶은 게 있다는 얘긴 분명 후작님을 위한 일이기도 할 거예요.”

“뭐죠?”

“이미 아시겠지만, 후작님께선 우리 언니에게 지대한 관심을 넘어 엄청난 사랑을 느끼고 계시죠. 그런 언니는 절 엄청나게 사랑하고요. 

자, 그럼 여기서 우리 공식 하나 생각해 볼까요?

<A는 B다. B는 C다, 고로 A는 C다.>란 명제를 들으시면 뭐 떠오르시는 거 없으세요?”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글쎄요. 제가 공식에는 영”     


많이 답답하다는 듯 엠마가 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아니, 이건 뭐 복잡한 산수 뭐 그런 게 아니에요. 가장 간단한 공식이에요. 

보세요. 후작님은 제 언니를 사랑한다. 제 언니는 절 사랑한다. 

그렇담 어떻게 되죠? 후작님은 절 사랑한다!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어요?”     


이제 알겠다는 듯 그가 응답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공식입니다만, 그래서 제가 뭘 해드려야 하는 거죠?”

“후작님께서 사랑하는 절 위해 알랭님께서 제게 시간을 좀 내주세요. 

절 숲으로 안내해 숲을 구경시켜 주세요.”

“숲이요? 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일단 그럼 후작님께 다른 일이 없나 알아본 후 답변드리겠습니다.”     


엠마는 일단 좋은 시작이라 여겨 마음이 들떴다.

그래서 시몬느를 찾아 얼른 성 안채로 뛰었다.

그런 엠마를 바라보며 알랭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아침부터 동생 엠마를 찾던 시몬느는 그녀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아래층으로 내려와 조금 나이 든 집사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마구간 쪽으로 가는 듯 보였다는 그의 대답에 이제 막 그쪽으로 가려는 찰나 엠마가 안채로 뛰어 들어오는 게 시몬느 눈에 띄었다.

시몬느를 발견한 엠마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오더니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언니, 할 말이 있어.”

“그래. 위층으로 올라가자.”     


시몬느는 엠마를 데리고 그녀가 묵었던 방으로 함께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엠마가 시몬느를 포옹한 뒤 기쁨에 겨워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 많이 불쌍한 표정을 짓더니 시몬느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언니, 이건 나한테 너무도 중요한 일인데, 

언니가 사랑하는 동생 부탁 들어주겠지, 물론?”      


여전히 동정을 받으려는 과장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엠마는 시몬느를 힐끔거렸다.

그런 엠마를 보던 시몬느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입을 뗐다.     


“똑 부러지는 내 동생께서 이 언니한테 할 부탁이라는 게 뭔지나 우선 들어볼까?”     


이 말에 금방 화색이 돈 엠마는 아주 귀여운 표정과 말투로 시몬느에게 이렇게 외쳤다.     


“후작님한테 말해줘. 알랭한테 날 데리고 숲으로 가라 하라고, 제발!”

“그게 무슨 소리야? 숲으로 가라 하라니?”

“알랭하고 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래. 

상쾌하고 향 좋은 숲에서 둘이서만 피크닉을 하고 싶단 말이야. 단둘이서만!”

“그러니까 후작님한테 허락을 받아달라는 거지? 알랭한테 프리타임을 주라는?”

“그래, 바로 그거지! 

그리고 이왕이면 주방에 말해 맛난 도시락도 좀 준비해 주면 너무너무 고맙겠고. 

부탁이야. 언니! 이 가련한 동생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진 않겠지?”     


엠마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언니에게 애교를 부렸다.

시몬느는 사랑에 빠진 동생 엠마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더불어 자신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에 몹시 흡족스러워졌다.

시몬느는 동생을 진정시킨 후 후작을 만나러 갔다.      

후작을 대면한 시몬느는 흥분하고 들뜬 목소리로 그에게 외쳤다.     


“내 동생 엠마가 사랑에 단단히 빠져버렸답니다, 후작님!”     


평소와 다른 시몬느의 다소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에 놀란 표정이 된 후작이 입을 열었다.     


“아니, 누가 보면 그대가 사랑에 빠진 줄 알겠는걸. 하하!”     


무안해진 시몬느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 듯 보이다 이내 흥분에 떨린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엠마를 위해 후작님께 드릴 부탁이 있답니다!”

“부탁이라?”

“네!”

“우선 들어나 보기로 하지. 부탁이란 게 뭐지?”

“알랭에게 시간을 내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사랑스러운 동생 엠마가 알랭과 숲으로 피크닉을 가고 싶어 한답니다.”

“알랭에게 시간을 내라 하라? 그건 좀 말이 이상하고, 오늘 할 일이 있느냐고 물어오면 그때 할 일은 딱히 없다고 답하면 되겠지? 본인의 의지를 억지로 강요할 순 없는 것일 테니까 말이지.”

“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후 늘 하던 그대로 알랭이 후작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해 물어왔을 때 후작은 이렇게 답했다.     


“오늘 그대가 할 일은 딱히 없네만... 

내가 아끼는 사람이 무척 아끼는 사람이 그대와 함께 숲으로 구경 가길 원하는 것 같던데... 

가능하겠나?”     


알랭은 그러겠다고 답했고, 그렇게 해서 엠마는 소원한 대로 알랭과 단둘이서만 숲으로 피크닉을 떠날 수 있었다. 

시몬느가 직접 만든 도시락과 약간의 과일, 후식까지 지참한 건 물론 어떻게든 알랭이 자기에게 빠져들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당찬 결심과 함께 엠마는 알랭을 따라 숲으로 갔다.     

숲으로 들어선 두 사람 앞에 다람쥐와 토끼,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은, 말을 할 줄 아는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랭을 바라보는 엠마의 눈빛을 보고 감을 잡게 된 다람쥐와 토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야릇한 행동을 보던 엠마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머머! 알랭님! 이것 좀 보세요! 

어떻게 다람쥐와 토끼가 사람이 그러듯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일 수 있죠? 

이런 거 보신 적 있으세요?”     


다람쥐와 토끼의 이상한 행동을 보던 알랭이 겸연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피하려 하자 엠마가 다시 재촉했다.     

“이것 좀 보시라니까요. 얘네들이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어요, 지금!”     


알랭의 무반응에 자기들의 작전이 실패한 걸 알아챈 다람쥐와 토끼는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들을 눈으로 좇던 엠마가 어색해하는 알랭을 골려 먹기 위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동물의 세계에도 불륜이 있을까요? 쟤네들이 방금 보여준 그런 금지된 사랑 같은 거?”     


답을 못하고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알랭을 보자 엠마는 더욱 신이 나 그를 골려 먹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원래 사랑이라는 건 물불을 안 가리는 거잖아요?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찌 됐든 상관없이 빠져들고 그러는 거”     


그때 갑자기 알랭이 팔을 치켜들어 뭔가를 잡아채는 걸 본 엠마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잽싸게 뭔가를 잡아채는 순간에도 나머지 한 손에 들고 있던 피크닉 바구니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은 걸 보곤 다시 한번 놀라며 엠마가 외쳤다.     


“뭐죠? 지금 방금 손으로 한 게? 내가 뭘 본 거죠?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뭘 잡은 거죠?”     


말과 함께 굳이 알랭의 손을 보려고 하더니 그의 손에서 뭔가를 발견하곤 소릴 꽥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악! 그거 혹시 뱀인가요?”     


알랭의 손엔 뱀의 목덜미가 잡혀 있었는데, 정작 알랭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이 뱀은 그냥 뱀이 아닙니다. 

독은 없지만, 무척이나 꼴 보기 싫은 뱀이지요.”     


하면서 알랭이 땅에 손을 털었다. 

뱀은 땅에 떨어져 부끄럽다는 듯 홀연히 숲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그런 알랭을 보던 엠마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정말 보면 볼수록 내 스타일이야! 

얼굴은 새초롬하니 연약해 보이는데 저런 박력은 도대체 어디에 숨겼다 나오는 거람? 

하긴 언니 말에 의하면 그렇게 용맹스럽고 싸움도 잘하더라지? 

수줍음과 야수성이 묘하게 공존하면서 거기에 츤데레까지~ 볼매야 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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