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책, 분리, 글쓰기, 자연, 그리고 깨달음
음악은 내게 늘 위안이었다.
학창 시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음악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세상과 날 차단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난 음악을 선택했었던 거 같다.
그에 못지않게 책 또한 내겐 크나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훨씬 전부터 알게 모르게 난 나 스스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기 위해 난 내 주변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마 내 눈에 들어온 게 책이었을 것이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때로 흥미롭지 않은 부분은 건너뛰면서 내 나름대로 속독도 습득했다.
그 덕분에 전체 요지를 파악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던 것도 일면 사실인 듯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활발함을 가장했던 내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안으로 침잠하며 골몰하는 게 훨씬 편했고 그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됐다.
분명 말을 하고 있지만 서로 뜻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 한계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때 난 뭘 했던가?
때론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애도 써봤지만 분명 그건 쉬울 일이 아니었다.
단지 봉합만 됐을 뿐 그 안에 곪은 본연은 쉽사리 뿌리 뽑히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삶이란 멍에라고 생각했다.
너와 나가 달라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때론 슬펐다.
왜라는 멍에를 늘 짊어지고 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내게 위안이 됐던 건 적당한 거리 두기라는 회피였다.
상황과 본질을 분리하는 것이 날 편하게 만들어줬다.
시간이 흘렀고, 의식하지 못한 채 글쓰기라는 것에 매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글쓰기가 내게 그 무엇보다 큰 위안이라는 걸 깨닫게 된 현타의 시간을 경험했다.
신세계였다!
하이퍼그라피아라는 용어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난 쉴 새 없이 내 생각을 글로 옮겼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이토록 신통방통하다니~ 하면서 매일 쓰고 또 썼다.
그 시기와 내가 자연에 빠져들게 된 시기는 겹쳐있다.
자연이 내게 이토록 위로와 위안이 되어줄 줄 난 왜 미처 몰랐었지?
하루하루 감동과 감격을 만끽했다.
물론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난 첨엔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는 개체처럼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겨울에도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 졌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곳엔 또 나름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날 놀랍게 만든 건 죽은 것 같던 생명체들이 봄이 되면 되살아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이 부러웠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처럼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건 언감생심 꿈도 꿔선 안 될 일이었다.
그리고 곧 난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는 걸 또 알게 됐다.
끝없이 느끼고, 배우고, 사랑하는 것!
세상에 널린 다양한 질료를 탐하며 내 안에 가둬 물아일체를 완성하고 그것들을 추앙하는 그것이라는 걸 말이다.
생명력에 깊은 숭배심을 바치며 자연과 하나가 될 그날까지 내가 추구할 게 분명한 당위, 즉 존재적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