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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4. 2024

행복에 관한 고찰

나에게 행복이란





나에게 행복은 항상 멀리 있는 것.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산 넘어 해가 지면 다시 산 위로 해가 떠오르듯이

한 고비 넘기면 기다리고 있어야 할 행복이 나 잡아봐라 하고 다시  달아나는 것. 어쩌다 좋은 일이 있으면 곧바로 나쁜 일이 찾아오고, 인생의 궤도가 늘 그렇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행복 따위나 쫓으며 감상에 젖는 건 어리석은 일. 나는 똑똑하고 씩씩한 아이니까 그것쯤 없다고 뭐 대수랴. 굳이 올 생각 없는 행복과 밀당하는 시간에 난 우아해지는 법을 연구했다. 매일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햇볕도 잘 보게 하면 잘 성장할 수 있겠지.. 나의 성장속도가 행복이 달아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때 제 아무리 행복이라도 더 이상 도망갈 엄두를 못 내겠지. 행복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옹졸해지지 않으며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내가 될 때야 비로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들 행복 찾기 놀이를 즐길 때 난 태연할 수 있었고 남 보기엔 이미 그런 것쯤 장착된 것처럼 연연해하지 않았다. 행복을 갈구하지 않으니

불행도 크게 와닿지 않았고 적당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가로이 TV를 함께 보던 남편이 불쑥 던진 말. “여보~행복하지?” , “어,,, 어? 그럼,, 행복하지..” 그렇게 잊고 있었던 ‘행복’이란 단어를  그가 ‘소환’시켰다. 그러고는 곧, "당신이랑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 함께 먹는 그것 자체가 행복이지." 한다. 마치, "넌 왜 행복을 자꾸 멀리 보내? 이미 옆에 있짆아!"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난 ‘에이~그게 무슨 행복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 깨달았다.

난 감사를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것을..


내가 지치고 암울했을 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했다. 내 의지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후, 변하지 않는 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피해 우울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가두었다. 그때는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을 꿈꿨고,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삶을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룬 지금, 나는 또 다른 것을 욕망한다.  한 단계가 끝나면 그다음 단계로 레벨 업 되는 게임의 현장으로 늘 도전의식과, 목표만이 존재한 회색빛 현실은 결국 내가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면 지금 나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간의 고통과 힘듦으로 얻어낸 ‘보상’이라는 생각 외에는 하지 않았고, '그 결과가 겨우 이것이야?’라는 한탄으로 더 큰 동력을 만들어 낼 생각밖에 없는 교만한 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가 맞았다. 인간은 행복은 잘 모르지만 불행은 잘 인지한다고 그랬다. 내 안의 불행에 너무 큰 에너지를 쏟고, 다시 만나기 싫다는 간절한 열망이 이미 찾아온 행복을 무시하게 된다.

누군가는 또 그랬다. 행복을 좇지 말고 행복을 살아야 한다고. 무슨 개똥 같은 이야기야? 했지만, 오늘, 난 방법을 좀 찾은 것 같다. 행복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감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앞으로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의 프레임을 씌우기로 했다. 하루의 시작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배변판 아닌 다른 곳에 실수해서 엉덩짝 몇 대 맞아도 좋다고 꼬리 치며 안기는 우리 집 반려견도 감사하고, 매일 나에게 집중하며 독서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에도 감사한다. 책 좀 읽으며 똑똑한 척 나불대는 아내를 기꺼이 낮은 모습으로 받아주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나의 외적, 내적인 결핍 또한 성장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니, 그것 자체도 감사하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어느새, 마음이 풍성해진다. 이렇게 쉬운 방법을 왜 여태 몰랐을까..



아주 좋은 강의를 들어도, 누군가는 “뭐야, 뻔한 얘기잖아?”라고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설사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차이점을 찾거나,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했는지 등 하나라도 얻으려고 열린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같은 강의를 듣더라도 전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간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삶 곳곳에 숨어 있는 ‘행복’을 자꾸 발견하고 찾아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삶의 이치를 감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보이지 않는 행복을 좇는 행위야 말로 거짓된 행복일 가능성이 크다. 맹목적인 욕심을 행복이라 착각하게 되는, 결국 허상에 의존하는 내 모습을 버리려고 한다. 그렇게 행복과 친해지는 삶 속에서, 나의 생각이, 나의 글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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