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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4. 2024

나의 무대

나는 가끔 내가 싫다가도 애틋해서 나에게 선물을 한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상을 받을 때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내가 못마땅하지만, 그 과정과 마음을 이해하는 또 다른 내가 줄 수 있는 건 애틋함 뿐이던가.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다정함을 건넨다.

행동의 주문서를 위로라는 포장지에 담아 

마음의 치료제와 함께 선물한다. 내일의 나를 위해서.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관객이 되는 나를 본다.

화려한 불빛아래 있는 나보다

무대 아래에 있는 내가 더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그동안 나는 일인 다역을 하는 성실한 배우였다.

각각의 가면들을 적절히 사용하며

가끔은 우아한 딕션으로, 때로는 당돌한 웃음으로,

씩씩한 여장부였다가 , 또 단아한 현모양처로...

나의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았을지 모르나

색색의 가면 속의 나는 다시 무대가 낯설어졌다.




내가 서 있는 이 무대가 나만의 무대인 줄 알았다.

내가 맡은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인공이었고 나의 말과 행동이 모두에게 좋은 대본이 될 거라 착각했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는 상처가 되고,

옳다고 믿었던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일치되는 것이 아님을 너무 늦게 깨달았을 때,

아, 그때의 상이 내가 잘해서 주는 상이 아님을,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잘 걸어가라는 나침반이었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딸깍, 무대 위 조명이 꺼졌을 때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한동안 조명이 켜지지 않길 바랐다.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일지 냄새일지 모를 불길한 예감을 빛으로 마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은채, 서서히 밝아지는 빛에

온몸을 맡긴다.

어렴풋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잘할 필요 없어. 진정한 너의 길을 가.

용기가 필요하니? 그럼 조금 더 천천히 가도 돼.'

반짝, 내 손 안의 무언가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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