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에서

아쉬움 그리고 안도감

by 진정

연말은 언제나 사람을 멈춰 서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끝맺고, 정리하고, 매듭짓는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지나온 발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때다. 한 해가 흘렀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도 않고, 특별히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연말이 되면 우리는 마치 어떤 약속이라도 한 듯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짚어보며, 다가올 시간을 조심스레 상상한다.


올해는 어땠을까.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이 질문 속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지나간 것들에 아쉬움을 느끼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의 숨이다. 삶은 언제나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불완전한 날들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잃고, 다시 채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쉽게 말해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사람은 결국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스스로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웃고 울며 나눈 순간들이 그 사람을 이루고, 그 순간들이 쌓여 또 다른 날로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상처로 남고, 어떤 것은 미완의 숙제로 남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걸 쥐려고 했을까. 사람과의 거리에서, 말과 행동에서, 지나간 선택들 속에서 무엇이 옳았는지 고민하는 일이 연말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나 관계란 꼭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조율해 가는 긴 여정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연말이 되면 더욱 타인의 시선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고,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짙어진다.


그러나 아쉬움만으로 한 해를 보낼 수는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삶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경계 속에서 흐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품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연말은 그러한 선택들을 모아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삶에 대한 태도는 바로 이런 순간에 드러난다.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며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가. 모든 선택은 결과를 남긴다. 때로는 그 결과가 우리의 의도와 너무나 달라 고통을 안기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 역시 우리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된다.


문득, 올해를 관통했던 한 가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본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랑, 혹은 무력함. 그 어떤 감정이라도 괜찮다. 그것들은 모두 살아 있음의 증거다. 감정이 있는 한 우리는 아직 삶 속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이해해 간다.


연말의 공기는 유독 차갑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서 우리는 온기를 발견한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작은 순간들에서 온다. 익숙한 이름을 부르고,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는 일. 연말은 그런 작은 일들이 빛나는 시간이다.


삶에 대한 태도는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달려 있다. 지나간 날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내일로 가져가려는 마음. 연말은 그러한 태도를 다잡게 만드는 계기다.


한 해가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가, 나는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받았는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연말의 풍경은 이렇다. 지나간 흔적이 눈처럼 쌓이고, 새해의 바람이 그것을 덮는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여전히 우리라는 이름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삶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올해가 그랬듯, 내년에도 우리는 또 다른 날들을 살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다. 그러니 연말에는 다만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날들을 조용히 바라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잊고 지냈던 자신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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