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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y 17. 2016

지금 당신의 시간, 얼마나 남아 있나요?

내 시간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커피 1잔은 4분, 버스비는 2시간, 스포츠카는 59년.
이렇게 세상의 모든 재화가 시간으로 환산되어 거래된다면 어떨까?


  이것은 영화 <인 타임>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1년의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은 화폐처럼 이용되는데, 보유하고 있는 시간은 손목에 뜨는 숫자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두 소진하기 전에 노동을 통해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이 노동의 대가는 하루를 버틸 만큼일 때도 있고, 그보다 부족할 때도 있다. 하루치의 시간을 벌지 못한 이들은, 온종일 열심히 일했지만 손목의 숫자가 늘기는 커녕 줄어드는 것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가난한 자들은 타인에게 시간을 빌리거나 훔치기도 한다. 때때로 애타게 시간을 빌려보려고 하다가, 남은 시간이 0이 되어 길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이도 있다. 반면 시간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그 시간으로 다시 시간을 불리고, 영생을 누린다.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이 시간을 훔쳐갈까봐 겹겹이 둘러싸인 철옹성 같은 구역에 모여 살고 있다. 그 안에 사는 이들은 영원히 25세의 젊음을 유지하며 매일같이 파티를 벌인다.


  이 영화는 SF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적이다. 사실 영화에서 말하는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면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이다. 또한 실제 세계에서 때때로 ‘돈’이 다시 ‘시간’으로 치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세계는 더더욱 현실적이다.


  그러면 현실 세계로 돌아와,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A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A는 아침 7시 전에 출근하여 약 1시간 만에 삼성역의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시간은 9시지만 팀의 막내라 먼저 출근해 업무준비를 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회식을 너무 늦게 끝났던 탓에 아침부터 피곤하다. 술이 친목을 다지는 방법이라고 믿는 부장님과, 부장님 없을 때 ‘우리끼리’ 한 잔 하길 바라는 과장님 덕택에 요일을 가리지 않고 술자리가 이어진다.


  오전에 받은 사내교육에선 언제나 업무시간 외에 자기계발과 자격증 취득을 하도록 권유한다. 이번 주 내내 회식에, 주말엔 부서 친목 등산까지, 회사 스케줄로 일주일이 꽉 차 있어, 도대체 언제 자기계발을 하라는 건지 당황스럽다.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더 일찍 출근해 중국어 공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점심시간에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인 ‘점심 소개팅’을 한다.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모자라는 시간 자원을 영 아닌 상대에게 오래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성사되어도 직장이 가까우니 연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잠이 부족해 근처 ‘낮잠 카페’의 해먹에 누워 30분만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래도 이번 소개팅이 잘 되면 연애에 대한 주변의 독촉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란 생각으로 잠보다 소개팅을 택했다.


  저녁에는 자동적으로 야근, 일이 끝나곤 부장님의 권유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귀가한다. 시간이 늦어 환승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1시간 반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이미 자고 있다. 어두운 집 안이 오늘따라 적막하게 느껴져서 조금 서럽지만, 다들 이렇게 사는거겠지 싶다.


  토요일에는 겨우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러 간다.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그냥 혼자 보는 것을 택했다. 상영시간에 맞춰 갔더니 10분 넘게 광고를 해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늦게 올 것을... 영 피곤하지만, 별다른 수도 없으므로 그냥 참기로 한다. 집에 돌아와 주중에 하지 못한 가족과 식사 한 끼, 밀린 집안일을 해결하고 남은 시간은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부서 사람들과 등산을 다녀오고 뒤풀이 까지 하고 나니 이미 저녁이다. 새해에는 꼭 얼굴 보자고 했던 친구가 생각나지만, 도저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며 살지만,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은 도무지 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내일부터 더 일찍 출근해 중국어 공부를 해야 하므로, 일단 자고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렇게 또 순식간에 주말이 지나간다.


영화 <인 타임>의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열심히 살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A는
현대 사회의 ‘시간 빈민’이다.

  

  A의 일주일은 24시간×7일=168시간이다. 이 중 A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용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왕복 출퇴근 10시간, 막내라서 일찍 출근하는 5시간, 회사의 자기계발 요구에 부응하여 중국어를 공부할 2.5시간, 주3일 각 4시간의 야근 및 그로 인해 추가되는 퇴근소요시간 약 13.5시간, 야근 후 맥주 약 6시간, 회식 2회 12시간, 일요일 친목 등산 및 뒤풀이 8시간, 이것만 더하더라도 57시간이다. A가 하루 6시간 잔다고 가정하면 168시간 중 남는 시간은 69시간, 이 중 정규 노동시간을 제외하면 29시간, 하루 평균 4.14시간이 남는다. 물론 이 시간에는 하루 세 끼 식사하는 시간과 샤워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 공과금 납부, 장보기 등 사소한 생활사를 해결하는 시간, 그리고 A가 영화관에서 관람한 10분의 광고시간 같은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A가 자유의지로,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이 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실제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래 일하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면에 대한 신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회사 안에 가두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458시간 긴 근로시간을 자랑하게 되었다. 스스로 업무 조절이 가능한 관리자 급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A와 같은 20-30대 사회 초년생들은 기성세대의 근면 신화에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하고 회사에 개인의 시간을 납부한다. 하루 8시간의 근로 시간이라면 월급을 받는 대가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 저당잡힌다.


  이렇게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시간들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두가 24시간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노동자들의 시간은 고용주체 혹은 근면 신화 추종자들에 의해 먼저 소비되어 버린다. 그리고 겨우 남는 시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이들은,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하는 일들에 배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이미 하루에 주어진 시간 자체가 24시간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벌어도 벌어도 늘 시간이 모자라 고통받는 <인 타임>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영화 <인 타임>의 스틸컷_시간을 지불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한편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발달은, 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 더 큰 불행을 불러왔다. 스마트폰이나 SNS를 통해, 회사가 아닌 곳에서도 언제나 업무 지시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자,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상시 업무 대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의 시공간이 확장된 것이므로, 어쩌면 노동 시간의 유연성이라는 선택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과 여가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고 정책적인 지원이 뚜렷한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시간의 유연성보다는, 전통적으로 일과 여가 사이에 존재하던 벽이 사라졌다는 점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업무환경의 변화는 노동시간의 추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우리나라와 같이 근무시간과 개인시간의 선이 모호한 환경에서는, 스마트 기기와 SNS를 통한 업무가 오히려 노동시간을 추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업무지시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 간의 경계의 파괴로 인해, 우리는 이제 저녁 혹은 주말, 어느 때에도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소유하기 어려워졌다. 나의 시간을 모두 저당 잡힌 것이다. 퇴근 후 상사가 파일 전송을 독촉하고 핸드폰 배터리는 1% 남은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파일을 전송하는 한 광고를 그저 웃으며 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시간의 부족은 심리적인 이유도 있는데, ‘시간 경험’이란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국내 조사에서 소비자의 75%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고 한다.(최인수 외, <2016 대한민국 트렌드>)그리고 언제 시간 부족을 경험하느냐는 질문에는, ‘할 일이 많을 때’, ‘쉬는 시간 확보가 어려울 때’, ‘지금 하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때’, ‘할 일이 있지만 능력이 따르지 않을 때’,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될 때’라는 답변들이 줄을 이었다. 이 답변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막연한 이유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그 아래에는 막연하게 ‘무언가 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노력 강박’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노력강박을 갖게 된 것일까?


  이 서늘한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 아래에서는, 남들만큼은, 혹은 남들보다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심지어 남들보다 뒤처지면 도태되고, 남들만큼 하거나 더욱 잘하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남들만큼’이 어디까지인지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공부나 일을 지속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해야 할 일과 계발할 능력 리스트를 계속해서 작성하는 것이다.


영화 <인 타임>의 스틸컷_남은 시간을 확인해보는 이들 (출처: 네이버 영화)


  이것은 사실 개인적인 심리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의 문제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심리구조 문제이다. 이미 여유시간 없이 살아가는 A에게 회사는 자기계발을 권유하는데, 이것이 승진과 관련되었다면 권유보다는 요구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 A는 잠을 줄이고 다른 시간을 쪼개서 중국어 공부 시간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시테크(時-tech)’, 시간 경영이다. 결국 A는 자기계발의 강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도 일종의 자원으로서 계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든 자연이든 개발하고 착취하여 경제적 이득으로 치환해내고야 마는,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이렇게 여유를 갖기 어려운 사회구조 자체가 사실은 가장 큰 문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타의에 의해 돌아가는 삶, 내 시간을 내가 쓸 권리를 박탈당한 삶은 그 삶을 바꾸기 위해 생각할 힘까지 앗아간다. A는 자신이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지, 왜 이렇게 매일 허덕이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지만, A가 처한 환경은 그 고민을 다음 주로, 다시 다음 주로 미루게 한다. 그저 그 허덕이는 틈새에서 아주 잠깐, 가벼운 '힐링'을 누릴 수 있는 허락된 자유를 제공할 뿐이다.


동일한 속도로 흐르지 않는 우리들의 시간


  이는 대학생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20대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남들만큼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으며, 이 사회에서는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다. 매일 4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수업을 듣는 학생과, 부모님의 지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방학에는 어학연수와 토익학원을 다닌 다른 학생. 이 두 학생의 대학생활 4년이 과연 동일한 속도로 흘렀을까. 그들의 학점과 이력을 비교해보면 같은 4년을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졸업 후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평가받을 때가 오면, 이 시간의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 것이다.


  자본의 격차는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의 격차를 불러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자원 역시 돈처럼 쪼개고 아끼고 재테크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일찍이 깨달았다. 이들의 막연한 불안과 욕심은 그들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재촉하지만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는 사회가 제공한 것이다. 이것을 단지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이겨낼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시간에 쫓기는 삶을 강요받은 이들에게, 한숨 돌리며 여유를 가져보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가질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공평하지 않은 시간을 견뎌내고 내 시간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늘의 공허만을 잠시 잊게 해주는 사소한 힐링도 아니고, 사치스러운 여유를 권하는 일도 아니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질문과 그 답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그 첫 질문은,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인가?’이다.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것이 온당한 일인지,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지, 우리 각자, 그리고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가족·친구와의 만남과 작은 취미생활, 피로를 풀 수 있는 수면시간, 온전히 내 것인 주말을 위해서, 그리고 쫓기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속도로 노력하 넘어져도 다시 손잡아 일으켜 줄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 참고서적

사라 노게이트, <시간의 심리학>, 갤리온, 2009

강수돌 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코난북스, 2015

최인수 외, <2016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2015


** 이 글은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2월호에 기고했던 글로서, 일부를 수정 및 생략 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실린 글을 보시려면 www.ilemonde.com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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