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관하여

by 소래토드


로이는 켄트에 대한 깊은 생각은 일단 접어 두고 손에 든 책을 펼쳤다. 익숙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계 소리가 로이의 귀 안쪽에서부터 옅게 울리기 시작했다.


로이의 심장 부근에 마치 숨기운 듯이 존재하는 시계소리는 때로 혈관을 타고 몸의 일부로 흘러가고는 했는데, 그러한 방법으로 로이가 집중해야 할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배의 키를 잡을 때는 손과 어깨였고, 책을 읽을 때는 눈이었고, 날아오를 때는 날개였다. 그러므로 로이는 지금은 책을 읽을 때가 아닌, 소리를 들을 때임을 알았다. 로이는 책을 든 상태로 글씨가 아닌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아버지에 관해서는 다시 읽지 않고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아이들의 귀에 닿도록 얼마든지 반복해서 이야기해 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먼저 제게 들려주실 이야기가 혹시 있습니까?"


남자는 당황한 듯이 얼굴을 붉혔다.


“제가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시계소리가 로이의 손 끝과 팔목에 흘렀다. 로이는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잠시동안 생각했다. 무심코 손에 든 책장을 넘기다가 그는 두 번째 장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로이는 눈을 감고 시계 소리에 집중했다. 붉은 배 위에서처럼 시계 소리는 여러 음폭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뜻을 이해한 로이는 눈을 뜨고 남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신의 말이 켄트의 책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켄트의 책에 기록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로이는 사실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된 후에 로이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영원한 존재와 연결하려는 갈망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로이의 시선은 자유나 바다, 음식과 같은 보다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었다. 셋째 하늘로 가려던 것도 켄트와 함께하는 여정에 대한 신뢰였을 뿐이었다.


켄트의 책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올 일에 대하여 기록되는 것으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비로소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언어 그 자체였다. 그 안에 기록된 한 줄의 문장이나 단어 하나 만으로도 사람의 삶을 완전히 변하게 할 수 있는 글, 로이는 스스로 경험했음에도 아직까지는, 그 글의 무게를 온전히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실 켄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로이에게 켄트는, 친절한 안내자 혹은 보호자였다. 아직까지는 그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로이에게는 충분했다. 그러나 로이는 이제 어떤 다른 기점에 서 있게 되었고 그것은 로이를 위한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로이가 다른 이들을 셋째 하늘까지 안내하고서도 다시 홀로 첫째 하늘로 돌아와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새로운 기점에 서 있게 된 사람은 로이뿐만이 아니었다. 늘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왔던 이 ‘남자’는 이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제 막 읽는 법을 터득한 로이는 받아 적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로이는 시계 소리의 지시에 따라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벤입니다."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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