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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un 30. 2023

신이 선물한 휴가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건설회사 10년을 꽉 채워서 일했었다. 그 말인 즉 휴일은 일요일 빨간 날도 회사에서 나오세요 하면 나가야 하는 노동자의 삶이다. 휴가라고 남들은 들떠 있는데 10년 평생 사원으로 지내면 원하는 날짜에 간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단 휴가기간이 나오면 엑셀표를 작성한다. 부서와 직급순으로 나열되어 스케줄 표가 돌고 돌아 막내까지 돌고 나의 자리에 도착한다. 이미 알짜배기 휴가기간은 선택권이 없다.




20대는 젊어 친구와 둘이 일본여행으로 도쿄와 오사카를 선택했다. 여행짐은 간단히 챙겨야 하는 국룰을 알 리 없는 그녀들은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까지 바리바리 챙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는 근성을 보여줬다. 일본 여름은 습하고 축축 쳐지는데 젊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초밥도 맛있고 길거리 음식도 다양해서 골라먹는 재미도 더해져 말해 뭐 하랴 그냥 다 맛이었다. 자질구레한 쇼핑은 또 눈이 핑핑 돌아가고 그 당시 전자상가 구경은 입이 떡 벌어졌지만 선 듯 지갑을 열 수 없었다. 



하루 서로 5만 엔을 각출하여 경비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가당키나 한가 순진한 건지 우리는 그렇게 각자 5만 엔을 모아 10만 엔을 사용하고 밤에 다시 나눠가지고 아침에 다시 5만 엔을 채우는 귀여운 여행을 했다. 





대학동창 중 우리 둘만 여행코드가 맞아떨어져 몸고생을  열심히 즐겼으니 두 번째는 지리산 종주라는 여행을  제안했고 또 그걸 덥석 물었다.  산을 평소에 즐겼냐 물으신다면 단언컨대 동네 뒷산도 가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등산화와 등산 바지를 샀고 배낭은 산악회를 다녔던 엄마의 가방을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이 지리산 2박 3일 종주를 한다고 하는데 말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지만 평소 지랄 맞았던 성격이라 말려도 소용없음을 알기에 놔두시지 않았나 싶다. 



지리산 카페에 들어가 음식은 마른반찬과  햇반도 챙겨가야 하고 데워서 먹을 버너와 코펠을 들고 갈 갈 자신이 없었기에 우리는 전투식량이라는 것을 주문했다. 군대를 가본 적이 없는 여자 둘은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가방의 무게는 13kg 되었고 내 몸무게의 1/3을 짊어지게 된다. 




인천터미널에 도착해서 노고단(성삼재) 터미널로 향했다. 하하 호호 20대 젊음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한숨 자두면 좋으련만 마냥 들떠서 쫑알쫑알 쉴 새 없이 먹는 입과 떠드는 입을 움직였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골풍경과 낯선 냄새가 좋았다. 아 이것이 시골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우리는 지리산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 노고단까지 해맑고 싱그러운 웃음이 나온다. 평소에 물을 먹지 않는 나지만 안 먹으면 돌아가시는 지경에 이르러 자주 수분 보충과 스니커즈도 씹어 먹었다. 가방무게는 13kg 누가 누굴 짊어지고 가는지 악소리가 절로 나오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점점 친구와 대화는 줄어들었고 다음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첫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는데 전투식량을 사용해 본 적이 있던가 어리바리 물을 받고 안에 무언가를 톡 터트리니 기포가 올라오며 음식이 데워진다. 그러나 맛이 없다. 전투를 안 해서 그런가 이걸 어떻게 먹지 군인아저씨들에게 감사를 표할 지경에 이르러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보니 뭘 끓이고 볶아서 먹는다. 



또 하나 여자들이 없다. 그럼 꿀 같은 휴가 기간에 누가 지리산 종주를 한단 말인가 겁 없는 녀석들 둘은 이제야 현실을 지각하고 오도 가도 못하니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고 아닌가 싶은 마음을 붙잡고 다시 전투식량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첫 번째 대피소에서 반찬과 햇반을 버렸다. 13kg 배낭을 등에 더 이상 짊어지고 갈 수 없어 버리고 기본적인 먹을 건 다 버릴 수 없어 친구가 배낭에 넣어줬다. 세상 힙하다고 할까 친구 얼굴에서 후광이 비쳤다. 생명의 은인처럼 고마웠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친구가 먼저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체력 하면 나보다 한 수 위인데 왜 저럴까 싶어 물어봤다. 어랏 친구는 몸을 생각한다고 햇반중에 현미가 들어간 것을 골랐는데... 아뿔싸 괄약근이 말을 듣지 않는다. 힘을 다 써버리니 똥꼬님은 조절이 안되어 방귀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왔고 우리는 힘든 와중에 웃다 울다 반복했다. 



첫날 대피소에 도착해서 가방을 던지고 등산화를 벗고 발을 계곡물에 담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냉찜질을 하지 않으면 물집 때문에 다음날 걸을 수 없게 되어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30분은 지졌던 거 같다. 발인지 돌덩이 인지 구분 안 가는 물건이 되었지만 우리는 저녁을 위해 대피소에 짐을 넣고 햇반과 전투식량을 꺼냈다. 




지리산에 공주님이 납시오




저녁이 되니 점심보다 더한 파티타임이다.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온다. 이미 콧구멍은 내 것이 아니었다. 가당키나 한 것인가 산속에 돼지를 어떻게  잡는지? 부러움에 돈을 주고 사 먹고 싶었는데 남자들은 고기를 짊어지고 왔던 것이다. 주섬주섬 구웠던 고기와 반찬을 주는데 사양할 수 없었다. 신이 내린 고기가 이런 맛일까 그냥 녹는다. 



산에서 먹는 밥은 밥상이 따로 없다. 그냥 쭈그려 앉아서 삼삼오오 먹기 때문에 이 집이 내 집이요 내 집도 네 집이 되기에 눈이 마주치면 얻어먹는 정이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꿀맛 같았던 식사 시간이 지나 세면 타임이다 얼굴은 물로 씻었고 몸은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줬다. 얼마나 땀을 흘렸던지 노폐물의 땀냄새도 없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생각해 보니 하루동안 소변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먹은 수분이 그대로 땀으로 나가 버리는 친환경 시스템이다. 


 


둘째 날 눈이 떠지고 조금 걸었더니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걸음걸음 천근만근 입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누구 파스 좀 줬으면 좋겠네가 절로 나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뿌려주는 파스에 의존해 두 번째 대피소에 도달했다. 이 고생을 왜 하면서 왔나 싶은데 이미 이틀을 걸어와서 다시 노고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제는 하산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루 자고 나면 하산이다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잠을 청했다. 





새벽에 웅성웅성 소리가 들린다. 새벽 3시 30분 뭐지 저 사람들 난 모르겠다. 난 안 들린다 잠을 다시 청했고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다. 부랴부랴 대충 아침을 때우고 우리는 천왕봉을 향해서 출발했다. 




오긴 왔구나 이 돌덩이를 보려고 이 고생을 했나 감격스러웠고 앞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새벽에 사람들이 나갔던 이유를 지리산 종주를 뒷산처럼 하지도 않을 분더러 천왕봉의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도 힘들다고 했다. 다행인지 이날은 날씨가 흐려서 아쉬움이 1도 남지 않았다. 




하산하는 길은 행복함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힘들었던 지리산종주가 끝나가니 이제야 아름다움에 눈길이 머물렀고 경이로운 감탄사와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계곡의 물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흙냄새와 안개의 촉촉함을 어떻게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올라가기에 버거워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내려오는 발걸음은 시간이 잡고 싶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 아쉬움이 맴돌았다. 




2박 3일간 나의 여정에 함께해 준 발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에어컨샤워를 시켜줬다. 물집하나 잡히지 않고 119에 실려가지 않았음을 그때는 몰랐으나 나이가 들어보니 가장 보통의 일들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 23km를 감행함 

젊음 그 찬란함 

이십 대 무모함 

친구와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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