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친일 사상의 시작

배신과 생존 사이에서

by 소선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 의해 사라졌을 때, 하늘은 마치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워졌다. 거리에는 침묵이 감돌았고, 사람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독립을 외쳤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 무릎은 결국 배신으로 기록되었다.


일제는 조선을 장악한 뒤, 지식인과 관료, 경제인들을 포섭했다. 지식인과 관료는 권력과 교육이라는 유혹에 빠져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했다. 경찰과 군인은 같은 민족을 고문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경제인들은 민중의 재산을 수탈하며 자신들의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불렀지만, 민중에게는 배신자로 기억되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독립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죽어갈 때, 이들은 부와 권력을 쌓으며 현실주의의 명분 뒤에 숨었다.


일제는 더 정교한 통치를 위해 조선의 사회 구조를 재편했다. 한때 자부심이었던 전통과 문화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일본식 가치관이 강요되었다. 언어와 이름을 빼앗기고, 역사는 왜곡되었다. 학교에서는 충성의 개념이 주입되었고, 경제 구조는 일본 자본의 이익에 맞춰 조정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저항의지를 잃어갔고, 일제에 협력하는 길이 생존의 방편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길을 택한 자들은 민족의 이름을 걸고 죄책감 없는 성공을 꿈꿨다.


1945년 8월 15일, 태극기가 하늘을 수놓았고, 거리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시대를 꿈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친일파는 어디로 갔는가?” 많은 사람들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끌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친일파들은 혼란의 틈을 타 다시 살아남았다.


미군정은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친일 관료와 경찰을 기용했다. 국민의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친일 세력이 권력을 이어가는 발판이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탄압받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 했지만, 해방된 나라에서는 침묵과 배제 속에 잊혀졌다.


친일파들은 과거의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냈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그들이 반공의 영웅으로 둔갑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독립운동가들은 빨갱이로 몰려 탄압당했고, 친일파들은 안보의 수호자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논리는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고 기득권 세습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되었다.


해방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다. 민족을 배신했던 자들은 다시 권력을 손에 쥐었고, 정의는 침묵했다. 친일 세력의 청산에 실패한 대한민국은 그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고 있다. 친일파들은 법과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었고, 일제강점기 동안 쌓은 부는 세습되었으며, 독립운동가들은 빨갱이로 몰리고 역사는 왜곡되었다. 그 결과, 불평등과 부정의 구조는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진 깊은 고통이다.


친일 사상과 그 잔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남아 불평등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친일 세력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잊혔고, 배신자들은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남았다.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고리를 끊을 것인지 스스로 묻고 답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친일 사상과 그 잔재는 세대를 넘어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답을 알려준다. 국민이 깨어 있을 때만이 불의는 심판받고, 역사는 바로 세워질 수 있다. 과거를 덮는 것은 상처를 깊게 할 뿐이다. 이제는 직시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