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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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위대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수많은 노래, 영화 그리고 책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사랑은 그만큼 위대한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요즘에는 ‘과연 사랑이 그만큼 위대한 것일까?’라는 의심이 들곤 한다. 무언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결국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언어의 한계’가 사랑을 과대 포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하다 죽는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 거대한 포장 속에서 나에겐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선택과 집중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만의 나이테를 만들어 간다. 의심과 후회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모두의 사랑은 저마다 결을 만들며 커져 나간다.
나이테는 성장의 증거이다. 성장을 위한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냈다는 상징인 셈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제 몸집을 불리기 위해 견뎌야하는 힘든 시간이 결국 사랑의 나이테를 만든다.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는 사랑이 가장 연약해진 순간부터 가장 단단해진 순간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사랑이야, 가 아닌 우리도 사랑일까? 라는 물음은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대다수는 권태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의 생로병사를 다룬 영화'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더 와 닿았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시간의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찾아 오지만 사랑의 경우는 달랐다. 사랑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찾아오는 것도, 독자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게 인상깊었던 장면에는 사랑의 생과 로, 병과 사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죽은 세포와 새로 생긴 세포의 교차점. 나이테가 새겨지는 순간이다.
마고는 남편인 루와 이웃 대니얼, 두 사람 사이에서 결국 대니얼을 선택하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의 변화를 인정하고 결국 남편에게 고백을 한 마고는 루에게서 샤워를 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받는다. 평소 마고가 씻을 때마다 찬물이 쏟아지고 루에게 이를 고쳐달라며 투정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데 마지막 샤워 장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루는 샤워 커튼을 걷으며 그동안의 찬물이 모두 자신의 장난이었음을 밝힌다. 그리곤 “함께 늙어있을 훗날에 이 모든 것을 고백하려 했다.”는 담백한 말을 건네며 화장실을 나선다. 남겨진 마고의 울음에는 앞서 말했던 생로병사 그 모두가 공존해 있는 것 같았다. 하루도 빠짐없던 그의 장난 (생), 마지막 샤워(로), 그녀는 몰랐던 지난 그의 사랑(병), 결국 대니얼을 택하는 그녀(사). 마고와 루 사이 끔찍한 사랑의 모습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새로 만난 대니엘과의 왈츠 또한 그저 그렇게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신호’ 와 ‘거리’의 상관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랑에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다. 발신자는 있지만 수신자가 부재하는 상황은 사랑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거리’와의 관계이다. 가까워서 잘 읽어낼 수 있는 신호가 있는 반면 가깝기에 읽어내기 힘든 신호도 있다. 두 사람을 그토록 가깝게 만들어 준 것이 사랑이었으나 결국 그 가까움 때문에 사랑을 끝낼 수 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내겐 씁쓸하기만 했다.
다행이도 인간은 식물보다 능동적이다. 환경에 의해 새겨지는 나이테를 두고만 보는 나무와 달리, 선택과 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나이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모든 경험이 곧 성장은 아니다. 다음의 나이테를 위해서는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이 필수적이다. 마지막 장면에 홀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편안해보였다. 경험과 반성을 통해 보다 성숙해진 것이다. 그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누군가와는 멀어지고 누군가와는 가까워지길 반복한다. 그 시간 속에서 그녀가 가진 사랑의 나이테는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나의 신호에 대해 생각했다. 안타까운 역설의 순간을 피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어떤 식으로 신호에 귀기울여야 할까. 이런 고민의 순간들이 만들어낸 나의 가장 바깥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