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실어

by 승아

날이 좋다. 창을 너머 들어오는 바람이 더운 몸을 식혀주고 있어. 오늘은 그렇게 가고 싶던 미호 미술관을 다녀왔어. 무릉도원을 모티프로 삼아서 지어진 곳 이래. 그래서 그런지 구불한 산길을 1시간 정도 지나쳐왔던 것 같아. 창 밖으로는 짙은 녹음이 가득 차있어서 행복했어. 잊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도 했어. 산 꼭대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쉽게 오지 못할 그 장소에 꽤나 많은 사람이 들어서 있었어.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아름다움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장애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당장의 근사함에 넋을 놓았던 것 같아. 유리로 만든 일본식 지붕은 해의 위치마다 제 모습을 달리해서, 시시각각 다른 장소로 나를 유인했어. 생각했던 것보다 커다란 장소는 아니었어. 같은 곳을 여러 번 거닐 수 있어서 좋았어. 전시를 보면서는 많이 웃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작품 앞에 서있기도 했었어.


혼자라 좋았어. 눈치 없이 나의 템포로 순간을 즐길 수 있었어. <bust of youth>라는 작품을 보고는 <call me by your name>이 떠올랐었어. 그 앞에 앉아서 이 작은 조각상의 어느 부분이 부서진 젊음을 표현하고 있을까, 많이 궁금해했던 것 같아. 나의 젊음이 어떤 식으로 부서질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서.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작은 큐피드도 봤어. 빨간 바탕에 정말 손톱만 한 큐피드가 화살을 들고 있었어. 하트가 빨간 이유에 대해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화살에 맞는 순간에 비유했던 옛 그리스의 신화를 나는 생각했던 것 같아. 화살처럼 사랑이 찾아온다면 이별은 어떤 식으로 찾아올까?


혼자라서 아쉬웠어. 이런 생각을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 나는 말간 표정으로 몇 가지의 물음표를 네게 건넸을 테고. 너는 그런 나만큼 말간 표정으로 네 생각을 이야기했겠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 거야. 나는 예상 밖의 네 대답에 놀라며 검색을 해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잠깐을 생각한 네가 조용히 혼자 인터넷의 도움을 빌려 근사하고 정확한 대답을 내어 놓았을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불현듯, 어떤 계기를 만날 때면 나의 상상이 계속될 때가 있어. 그런 계기가 특별하지 않아서, 참 큰일이다 싶지만 진짜 같은 가짜가 나를 정확히 에워쌀 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 행복해할까, 불행해할까. 가짜가 늘 나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서, 나 나름의 생각은 웃고 있을 것도 같고, 진짜인척 하는 모습이 얄미워서 한쪽 눈은 찌푸리고 있을 것도 같고.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를 판별할 수 있는 나의 토템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좋든 싫든 혼란스러운 마음은 분명하니 말이야. <인셉션> 속 도미닉이 꿈과 현실을 판단했던 그 토템처럼, 나도 나의 상상의 빈틈을 확인할 수 있는 열쇠가 필요한 요즘이야 ㅡ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모호해지고 있어. “무지란 섬세한 이국의 과일과 비슷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시들어버린다.” 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과 달리 요즘의 나는 나의 무지가 아닌 나의 앎이 시들어버리는 중이야. 시들어버린 것이 믿기지 않아 그것들에 대해 자주 조물 거리지만, 그런 행동들로 인해 나는 더 확실히 알게 되지, 나의 시들어버린 앎에 대해. 궁금해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잘 지내는 것도 싫고 잘 지내지 못하는 것도 싫어. 무엇이 잘 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하이볼을 몇 모금 홀짝였더니 솔직하지만 쓸데없는 말들이 자꾸만 튀어나오네. 말을 줄일 타이밍이 다가왔다는 의미겠지? 타국이라 다행이다. 이해받지 못해서 편안한 마음이 들어. 이해받지 못해서. 이런 오늘을 나는 바람에 실었어. 오늘도 안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