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 3
황동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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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시인의 정서 감정을 심미적 방식으로 표현한 언어예술 이다
물론 특정 시대현실이나 이념을 표방하는 리얼리즘 시와는 구분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때문에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적화자의 감정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마치 다정한 연인과의 대화는 서로가 마주한 거리 분위기 억양이나 태도에 따라 친말감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연인끼리의 데이트에는 대리인이 등장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시의 발화자(시인)는 그의 대리인(시적 화자)을 통해 역할 대행을 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시적화자는 시인자신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경우 시인과는 다른, 그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시인은 화자라는 ‘대리인‘를 통해 그가 바라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때문에 화자의 어조(목소리)를 주의 깊게 살피고 분위기(정서적 거리)를 파악하는 일은 행복한 시 읽기의 초석이 된다.
어조(tone)는 화자의 목소리를 말한다 자기 자신이나 청자 혹은 대상에 대해 가지는 태도(attitude)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특성상 주로 문장의 서술어를 통해 표출된다 기본적으로 여성적 어조(김소월의 진달래)와 남성적 어조(이육사의 광야)가 있다 전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적 목소리이고 후자는 강건하고 스케일이 큰 의지의 목소리 이다 화자가 처한 상왕이나 태도에 따라 교훈적 관조적 명상적 독백적 예찬적 풍자적 어조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어조는 화자의 심리적(심미적) 거리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대상에 대해 화자가 취하는 태도에 따라 가까운 거리, 먼 거리, 적절한 거리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가까운 거리는 지나치게 감정에 의존하는 경우로 몰입유형이라 부른다
이 유형은 화자가 화제(시의 중심주제)에 대해 심리적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경우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 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다 당신입니다> (김용택)
서술적 표현으로 화자의 감정을 직접 제시하는 -요형 어미가 빈번하게 나오고 절제가 부족하여 감상적 자아도취적이다 그 결과 ‘감정의 과잉‘에 빠질 우려도 있다
반대로 먼 거리(관찰유형)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정서적 결핍이 우려되기도 한다. 관찰유형은 다분히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경우다
어젯밤 어둠이 울타리 밑에/ 제비꽃 하나 더 만들어
매달아놓았네/ 제비꽃 밑의 제비꽃 그늘도
하나 붙여놓았네 *
-봄과 밤(오규원)
예시처럼 화제에 대한 감정적 관여를 배제하고 외적인 상태에 주목하는 것이다
말의 절제를 통한 의미(자연의 신비)의 부각에 헌신한다 이 경우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사실의 객관적 기록에 의존한다 따라서 화자의 정서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가 적극적으로 읽어야 의도를 유추할 수 있다 .
이에 비해 적절한 거리는 화제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감정을 절제하는 중도의 미학을 보인다 이를 개입유형이라 부르는데 서정시의 일반적인 형태로 보면 된다 또 배제(해체) 유형은 심리적 거리를 극대화시키는 경우다 특성은 유사성이나 인과성의 파괴, 생경한 이미지들의 나열, 문명과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난해성을 보이기도 한다.
개입유형은 화자가 화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경우다 정서적 체험을 재료로 하는 현대시가의 특성상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이 경우 감정의 직접제시 보다 다른 사물에 감정을 의탁하는(객관적 상관물) 간접제시를 선호한다 주로 회고적 술회적 사색 명상적 어조나 교훈적 어조가 드러난다 또 현대시에서 화자의 표면적 태도와 심층적 태도를 어긋나게 하여 조롱 자조의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
배제(해체)유형은 심리적 거리를 극대화시키는 경우로 유사성 인과성이 무시된 파격적인 언어나 생소한 이미지의 배열로 현대의 모순 부조리를 부각시킨다 때문에 종종 비인간성 난해성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어조 또는 심리적 거리에 관심을 두면서 다음의 예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텍스트는 ‘꽃’이란 주제로 한정하기로 한다 '관념'의 꽃이 아닌 실재로서의 꽃(flower)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꽃은 개화 만개 낙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의 섭리를 간단명료하게 대변해준다 다름 아닌 우리 삶의 은유적 축소판일지 모른다
꽃은 그것으로 절정이다 꽃을 피우기까지의 격정과 인내, 그 수고로움은
꽃을 피우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 그 자체로 절정이고 그 자체로 허무다
물론 씨앗을 남기고 생명을 이어가는 일, 디엔에이를 먼 매래의 후손에게
전해주는 사명 따위는 어쩌면 부차적인 것인지 모른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동백이 활짝> 송찬호
동백꽃을 일반적으로 기다림 열정 같은 여성성으로 은유하던 것과는 다르다 발상부터 기발하고 생소한 이미지의 제시가 당혹감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묘사에 해당하는 앞 연에서 동백나무를 엉뚱하게 사자에 비유한다 꽃나무의 외양을 사자의 ‘네발‘ ’갈기‘로 묘사하여 공격적 태도를 부각시킨다 허공을 배경으로 ’붉은‘의 색채대비도 신비감을 더해준다.
뒤 연은 화자의 다급한 심리가 제시된다 한 순간 바람에 떨어져 사라지고 말 꽃에 대한 연민, 시간의 찰나성을 통해 자연의 무상(無常)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완성해야만 한다‘와 같은 단호함은 의지 혹은 결의에 찬 어조다 객관과 주관이 조화를 이루어 감정을 절제하고 있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은 벚꽃이란 동일한 제재로 각기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자아화 하는 경우로, 어조나 심리적 거리가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의를 기우려 감상해보자.
십리에 걸쳐 슬픈 뱀 한 마리가
혼자서 길을 간다
희고 차가운 벚꽃의 불길이 따라간다
내가 얼마나 어두운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피었다
저 벚꽃 논다
환한 벚꽃의 어둠
벚꽃의 독설,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내가 얼마나 불온한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진다
-<벚꽃 십리> (손순미)
시 <벚꽃 십리>의 관점도 독특하고 파격적이다 화자는 자신을 ‘슬픈 한 마리의 뱀’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벚꽃 길을 ‘희고 차가운 불길‘로, 나를 따라오는 동행으로 설정 한다 그리고 화자-뱀-인간과 벚꽃-불길-자연의 대비를 통해 나의 부정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고해성사라도 하듯 고백한다 그것은 ’어둠‘이고 ’더럽고‘ ’불온한‘것이다.
‘환한 벚꽃의 어둠’ ‘벚꽃의 독설’은 화자의 부정적 심리가 반영된 역설이다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은 나의 감추어진 ‘불온성‘을 고발하기 위한 트릭에 불과한 것이다
서술적 표현은 ‘-피었다‘ ’-논다‘ ’-진다‘의 간결체로 다분히 고백적 자조적 어조로 심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절제되어있다 벚꽃이라는 객관적 긍정의 세계를, 정뱐대인 주관적 부정의 세계로 자아화 하여 바꾼다 그것은 화자인 ’나‘를 통해 ’우리‘라는 현대의 속성을 여지없이 풍자 고발하고 있다.
우리가 그곳에 다다른 날은
화엄벚꽃 이미
시간의 물길에 녹아
십리화개를 후르르 떠난 뒤였다
그래도 아직 무슨 미련 남아
미처 떠나지 못한 꽃잎 몇은
하동포구까지 내려와
다압쪽 나룻배가 건너오길
초초히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누가 말했는가
가야할 시간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그러나 정작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사랑 애절한 그리움도 있느니
눈물보다 더 무거운 내 사랑
쓸쓸한 저녁도 있느니
-<화개동천에서> (허형만)
허형만 시인은 ‘사소한’ 일상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뭔가를, 시적 영감을 꺼집어내는 비범함을 지녔다 자연에서 혹은 삶에서 문득 발견되는 지혜를, ‘진실’을 놓치지 않는다 인생의 기쁨 경이로움 뒤의 비애와 눈물까지도 감추지 않는 ‘찡한’ 휴머니티를 지녔다 그는 전통적 서정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강하고 날카로운 풍자를 토해내기도 한다.
시 <화개동천에서>는 벚꽃의 낙화를 보는 쓸쓸함과 이별의 정한을 회상적 어조로 그렸다 첫째 연에서 이미 져버린 벚꽃에 대한 아쉬움, 둘째 연은 아직 떠나지 못한 꽃잎의 허전함, 마지막 연은 자연의 순응을 거부하는 애절한 그리움으로 우수의 정서를 드러낸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이형기의 낙화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태도다 하지만 허형만의 벚꽃은 순리보다 오히려 휴머니티에 중점을 둔다 순리는 냉엄하고 비정하지만 인본은 사람다움에 무게를 둔다 벚꽂의 낙화가 보여주는 ‘무상함‘과 생의 애절한 ‘그리움’을 대비시켜 허무를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무상(無常)으로 귀결되는 근원적 슬픔의
한계를 어찌할 것인가?
꽃은 절정에 이를 때 무상을, 낙화에 이르러 휴머니티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면 황동규 시인의 꽃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나는 나무들이 꽃을 잔뜩 피워 놓고
열매가 생기기를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사방에서 벌이 잉잉거릴 때
꽃들은 먼발치서 달려 오는 벌을 맞으러
하나씩 문을 열 것이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
이 팽팽함!
배나무나 벚나무 上空에서
새들은 땅 위에서 환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잠시 天上과 地上을 잊을 것이다.
-< 꽃 > (황동규)
<즐거운 편지>의 황동규 시인, 그는 선친인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그늘이 늘 부담스러웠다고 회고 한다 그러면서도 문학의 길을 따라간 것은 운명적인 것인지 모른다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그늘‘에 대한 반발로 시를 선택한 것일까? 90년대 중반 그의 연작시 <풍장>은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시로 승화시킨 문학적 구도(求道)(?)의 결정체였다.
황동규 시인의 시 <꽃>에서는 화제를 어떤 태도로 바로보고 있는지 눈 여겨 보기로 한다 어조의 단서가 되는 서술어를 보면, 첫째 연에서 -생각할 수가 없다(전제), 들째 연에서 -문을 열 것이다(자연의 협동), 셋째 연에서 -잊을 것이다(새의 상상), 처럼 화자의 생각 추측 관조를 통해 화제를 자아화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처럼 자연의 협동이란 우주의 신비를, 그 은밀한 질서에 대한 경외감을 풀어 낸다 특히 둘째 연에서 “꽃송이 하나하나가/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 /이 팽팽함!”에서는 극적인 절정을 보는 긴장 감동이 최고조에 이른다
화자의 목소리는 차분히 대상을 탐색하는 관조의 어조다 심리적 거리는 주객관이 조화를 이루는 적절한 거리로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는 화자와 청자 간의 소통이다 시인은 그의 대리인(시적 화자)를 통해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화제(대상)에 대한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어조와 심미적 거리를 파악하면 시인의 은밀한(?)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시인(화자)이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독자(화자)가 준비가 부족하다면 의미가 없다 대신 조금 덜 좋은 것이라 해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면 보다 행복한 시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월간 문학공간 2018. 5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