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사는 세상이래.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엄마와의 기한 없는 ‘한시적 동거’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원래 참으로 정적인 스타일이시다. 웬만해서는 집이나 고향을 벗어나 어디를 잘 가시는 일도 없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 엄마에게도 코로나가 현실적으로 종식?!되면서, 캐나다에서 오래 살아온 50년지기 친구가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오신 일이 조금은 전환점이 되셨나보다. 엄마네 고향집에서 일주일간 친구와 함께 지내신 엄마는 나에게 잠시 집을 벗어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셨다. 초등학생, 중학생 자식이 한 명씩 딸린 나에게, 게다가 뚜벅이 인지라 기동력도 없는 나에게 그 고민의 ‘최선의 선택’은 엄마를 우리 집에 와서 지내도록 하는 일이었다.
3년 전 엄마는 어깨 회전 근개 파열 수술을 받으시며 수술 전후로 우리 집에서 두 달 반을 머무르다 가셨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때로는 특별했고, 때로는 힘들었다. 나도 결혼을 한지 벌써 15년이 지났고 혼자 독립해서 산 5년여의 시간까지 합치면 이미 우리는 같이 산만큼, 각자의 삶을 따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코로나에 걸릴까봐 무서워서, 이후엔 코로나 백신 맞고 후유증을 견디느라, 마지막으로는 코로나에 진짜 걸려서 고군부투 하느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이에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던 것이다. 나의 초대를 엄마는 흔쾌히 반기셨고 오랜만에 경상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온다는 설렘인지, 딸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대감이었는지 자주 가시지도 않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까지 하고 오셨더랬다.
3년 만에 만나는 엄마라지만, 모녀지간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마치 어제 본 마냥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다행히도 3년 동안 엄마는 그리 늙지 않은 채 그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안도했고 감사했다.
충청남도의 귀퉁이에 있는 한 소도시에 살면서, 경상남도 구석탱이 시골의 엄마를 만나려면 5시간을 차로 달려가야 하는지라 엄마 얼굴을 보는 일은 기껏해야 일 년에 두 번이면 최대치였다. 그 물리적, 시간적 간극을 좁히고 싶었던 탓인지, 엄마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파고 들고 싶었던 이유에서였던지, 나는 평소 유튜브를 보다가 좋은 영상이 있으면 엄마에게 보내드리곤 했다. 엄마가 집에 오시고 좋은 점은 굳이 카톡으로 영상 공유를 하지 않아도 바로 옆에서 “엄마 이 영상 한번 봐봐.” 하며 들이밀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인복지학을 전공하신 이호선 교수님은 노년에 관한 강연을 하며 ‘재수 없으면 200년을 사는 세상이 되었다’라는 농담 같은 진담어린 말씀을 하셨다. 이미 통계상으로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90살이 되었으며, 엄마와 같은 50년대 생 베이비부머들은 분명 평균적으로 100살까지 살며, 그야말로 천운에 따라?! 120살을 넘어 200살까지도 살지 모르는 초장수 사회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엄마, 사람들이 대부분 70살 되면 앞으로 내가 얼마나 살겠어 라며 자포자기 하듯 살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된대. 지금부터도 20-30년은 거뜬히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배우고, 젊은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대.”
언젠가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새로 나온 전자기기나 새로운 어플을 다루고 배우는 일에도 무관심해진 엄마에게 나는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드렸다. 다행히도 엄마 역시 그 강연을 유튜브로 들은 직후여서였는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래, 니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그렇겠네.” 하신다.
어느덧 루틴이 되어버린 엄마와의 40여 분 간의 동네 시골길 산책시간동안, 우리는 그간의 시간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와의 이야기는 주제도 시간의 종단의 범위도 한정이 없다. 그게 바로 모녀 사이라는 건지도 모른다. 스트레칭 하는 법과 스쿼트 하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 드리며, 내일은 엄마에게 또 어떤 새로운 시도를 도와드릴지 슬쩍슬쩍 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내일은 엄마 핸드폰에 날씨앱도 깔아드리고 폰뱅킹 하는 법도 알려드려야겠다. 21세기를 한참이나 살아내야 하는 우리 엄마에게, 엄마가 나를 오랜시간 가르치며 돌보았듯이, 아니 그만큼의 만 분의 일도 못 미치겠지만, 조금씩 하나하나 엄마에게 세상을 다시 알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