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렸던 쇼핑 욕구가 터지는 시점
뭘 자꾸 버리냐고, 100일 동안 버릴 게 그렇게나 많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버릴 건 정말 많다. 그렇다고 해서 저장강박증이 있는 건 아니다.
내 성격은 지갑만 봐도 드러난다. 나는 얇은 지갑이 좋다. 지갑이 두툼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지갑 안에는 약간의 현금과 꼭 필요한 카드 몇 개만 넣는다. 하루가 넘도록 영수증을 지갑 안에 넣고 다닌 적이 거의 없다. 가끔 친구들의 빵빵한 지갑을 보면, 대신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가방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게 싫어서 그날그날 정리하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은 거의 안 들어있다. 마트에서 사은품을 받아오는 일도 별로 없다. 잦은 이사로 인테리어 소품도 잘 사지 않는다. 이삿짐이 늘어나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는 왜 물건이 많다는 걸까?
우리 집에 넘쳐나는 물건은 대부분 생활필수품이다. 베트남은 어떤 것이든 '있을 땐 있고, 없을 땐 없다'보니, 필요한 물건이 보이면 일단 2,3개씩 사다 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가는 한국은 말 그대로 쇼핑 천국이다. 예쁜 옷도 사야 하고, 질 좋은 양말도 사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주방용품과 욕실 용품도 챙겨야 하고, 약과 화장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디를 가든 신박한 아이템들이 넘쳐나니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다. 아이는 아트박스에도 들러야 하고, 다이소도 몇 번은 가야 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만 가면 억눌린 쇼핑 욕구가 터지지고, 충동구매가 넘쳐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계획적인 소비가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물욕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만다. 결국 캐리어는 가득 차고, 가져와보면 정작 쓰지 않는 물건도 많다. 생활필수품은 1년 치를 챙겨 오다 보니 수납장이 꽉 찰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칫솔을 잘못 주문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2년은 쓸 만큼 쌓였다. 칫솔로 가득 찬 수납장을 볼 때마다 든든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감이 먼저 밀려온다. 먹지 않을 것들도 맛있어 보인다고 사 왔다가 유통기한 지난 채 버리는 일도 흔했고, 예쁘다고 샀다가 한 번도 사용 안 하고 방치해 둔 것도 여럿이다. 이렇게 욕심과 결핍이 부른 화는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반복됐다.
아까워서 쉽게 버리지도 못하니 집안 곳곳에 물건이 쌓였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서는 책장도, 수납장도 침대도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계속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다. 혹시나 아쉬워질까 봐 뭐든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정신 차리고 하나씩 비워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필요해서 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필요 이상의 소비가 많았다. 결핍을 메우려는 욕심이, 그리고 불안이 소비를 부추겼다. 그래서 습관과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예쁜데 안 쓸 것 같은 물건은 내려놓고, ‘혹시 몰라서’라는 이유로 사던 습관도 줄이고 있다. '외국 생활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소비를 정당화하지 않으려 한다.
정리는 단지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욕망을 조율하는 일이고, 나와 나의 소비 습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게 진짜 ‘비움’이다.
그러고 보면 비움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