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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연애 만화의 로망 : 원수연과 한승원

내 취향대로 이야기하는 한국 순정 만화

by 소소한더쿠

나에게 원수연 작가와 한승원 작가는 이 대표작이 인상적이다라는 느낌이 다른 작가에 비해 덜한 편이다.

작가의 이름만큼은 90년대 한국 순정 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임에 분명하지만, 이 작가의 대표작을 꼽아보라 하면 취향에 따라 여러 작품으로 흩어지는 느낌이랄까.

(덧붙여 설명하자면, 원수연 작가는 풀하우스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전에 엘리오와 이베트를 꼽을 팬들 또한 많을 것이고, 원수연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친한 언니는 작가의 단편선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나에겐 휴머노이드 이오의 이미지가 강하고. 그리고 한승원 작가의 대표작을 프린세스로 꼽아버리면 작가를 정말 좋아했던 팬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프린세스에는 흐린 눈을 하려고 한다.)

아마 내가 이런 느낌으로 두 작가를 떠올리는 데에는, 순정 만화 잡지 '나나'를 시작으로 순정만화를 한창 열심히 볼 때, 한국 순정 만화계를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가장 활발히 활동을 하는 작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두 작가의 중장편의 연재작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었고, 단편작도 꽤 많이 볼 수 있었으며, 멀지 않은 과거에 발행된 단행본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한승원 작가가 '프린세스'라는 애증의 대서사시를 시작하기 전까지 작품 발행의 회전율이 좋았다고 하면 조금 실례이려나. 다른 한편으로 표현해 보면 작품 활동을 성실히 진행했다는 것이니, 당시 순정 만화의 독자로서는 활발히 활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꼽아보자면, 내가 본 두 작가의 작품들이 남녀의 연애를 중심에 둔 스토리라는 것. 남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배경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야기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고 그 사랑의 결말을 보여주는 로맨스 연애 스토리랄까. 이 속에 시대, 장소, 출신, 직업 등과 같은 배경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은 주인공들의 연애를 방해하지만 결국 그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가 되어주지, 주인공들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소까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지만, 보고 나서 어느 한 작품이 특별히 인상 깊게 남았다든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다 비슷한 연애 이야기이니까. 좋고 싫고를 떠나,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애 이야기라는 건데,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는 재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특정 작품이 떠오르지 않아도, 한승원, 원수연이라는 이름만으로 말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몰랐던 역사의 한 부분을 알게 된 것도 즐겁다. 다소 각색이 되어 있더라도 전혀 몰랐던 역사적 사건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는 건 언제나 고맙다.


청춘의 원인 모를 울렁임에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해도 무작정 솟아오르는 열정과 가까운 이들의 믿음에 다시 한번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오글거려도 코 끝이 찡해진다. 이와 반대로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으로 끌려 내려가는 모습에는 그 청춘에 구원이 나타나기를 응원한다. 성장으로 나아가는 탈피기를 함께 하며 나의 부끄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앞뒤 없이 풋풋한 감정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하는 건 주책맞은 어른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잘 만들어진 판타지 세계관은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의 옆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것 같아 두근거리게 만들어 주고, 그 세계에서 활약하는 캐릭터들의 능력치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와 사람과 관계에 대한 색다른 고찰은 무릎을 치는 감탄을 자아낸다.


최근엔 이런 작품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넘쳐 나는 느낌이다. 하나하나 챙겨보다 보면 어디서 또 이런 작가들이 튀어나와서 이런 괴물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거냐 싶을 정도이다. 평범한 설정과 단순한 흐름의 작품은 살아남기 어려워서, 남녀의 연애 이야기조차 여러 가지 장치가 걸려 있다. 만남이 범상치 않던지, 남자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던지, 여자의 콤플렉스가 사실 본인에겐 전혀 콤플렉스가 아니던지, 그래서 앞으로의 전개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게 오히려 클리셰가 되었다. 이런 클리셰에 밀려 평범한 연애는 일상 만화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좋은 작품들을 보다 보면 가끔은 머릿속과 마음이 시끄러워지기도 해서, 말랑말랑한 연애 이야기를 보며 하나의 감정만을 가지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 한승원 작가가 간절해진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원수연 작가를 떠올리기도 할 것 같고.)



가끔 <YOU> 나 <노란방 여자와 파란방 남자> <빅토리 비키>가 너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기저기 뒤져 보았지만 절판이 되었거나 온라인판으로 나와 있지 않아 도통 보기가 힘든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을 보며 그리 어렵지 않은 연애 이야기에 말랑말랑해지고 싶다.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예전의 순정 만화가 담당한 말랑말랑 연애 이야기를 요즘은 웹소설의 로맨스 장르가 대신해 주고 있어 순수한 연애 이야기가 부족하다고 할 순 없고.

꽤 네임드로 알려진 작가의 유명한 작품도 많고, 꾸준히 새로운 작품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인다. 작품마다 달리는 댓글을 보면 다 비슷한 생각에 원하는 것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고 말이다.


한승원 작가와 원수연 작가의 작품이 지금 나온다면 유명 플랫폼에서 바로 연재가 가능할까. 요즘의 트렌드를 고려하면 아마도 주변 지인과 편집자는 웹소설을 먼저 제안할 것이고, 웹소설의 인기가 바탕이 될 때야 웹툰 연재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나 또한 새로움이 넘쳐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들 속에서 오로지 연애에 국한된 작품을 애써 찾아보기보다는, 풍부한 로맨스 웹소설 작품들 속에서 한승원 작가와 원수연 작가의 감성을 담은 작품을 내 서재에 담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은 나에게 만화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작품이 아니라, 콘텐츠 트렌드에 따라 나의 감성을 어떻게 충족하고 있는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게 되었다.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구룡 제네릭 로맨스> <하이큐> <츠루네> 등등을 보다 보니, 역시나 <노란방 여자와 파란방 남자>를 보고 싶어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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