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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Nov 08. 2020

내 몸을 깨우는, 요가에 입문하다

 요가를, 철학하다 ① - 요가 입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태어날 때 사람의 심성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 타불라 라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즉 현실 세계에 관한 이해는 직접 감각을 통해 얻은 경험에 의해 이끌리든가 아니면 간접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요소가 바탕이 된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중에서 -



경험에 앞서 내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


육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머릿속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설렘,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약간의 강박 관념과 거기서 오는 귀차니즘의 줄다리기가 작용된다. 이와 더불어 나는 개인 대 개인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 배우는 과정을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나 단체로 무언가를 배울 때보다 일 대 일이 주는 상호 간의 집중도에 편안함을 가진다. 혹시, 나만 못하면 어쩌지? 나 때문에 수업에 지장을 주면 어쩌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우열관계의 피곤함은 언제부터인가 일 대 일 수업을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요가를 배우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목과 어깨, 허리 통증으로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뿐,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도수 치료사의 공통적 조언은 "운동을 하셔야 나을 수 있어요!"였다. 하고 있는 운동은 평소에 걷기를 30분씩 하고 주말에는 등산을 하는데 근본적으로 어깨의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했다. 


물리치료를 받던 날,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손길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이 순간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직 젊은데 왜 물리치료에 의존하고 있지? 그런다고 어깨의 굳은살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내 몸은 내건데 병원에 의지하여 누워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 몸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고 딱딱하게 굳은 몸을 깨우고 싶었다. 


그다음 날 바로 요가원으로 가 상담을 받고 접수를 했다. 마침 그 시간은 수련 중이었다. 반쯤 열린 문 틈새로 수련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명상할 때 듣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요가매트 위에서 동작 하나하나 따라 하며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할 수 있을까? 동작을 알아듣고 따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저렇게 열심히 자신을 위해 수련 중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함부로 사용하고 돌보지 못한 몸에 미안함이 들었다. 등록을 하고 오던 날, 걱정했던 것보다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요가복은 처음이라


처음 입어보는 몸에 핏이 되는 요가복은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예전에 치마에 레깅스를 간간히 입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것이 어느 순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요가복을 입으니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뭐든지 처음은 어색하지만 적응은 빠르다. 난 요가복의 매력에 빠졌다. 심플한 스타일부터 여성스러운 스타일, 다양한 컬러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 운동도 장비발이라고 예쁜  요가복 입고 열심히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구입했다.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가, 첫 수련한 날


요가는 금요일부터 시작했는데 하필 금요일은 태양 경배 자세라고 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음악에 맞춰 12 동작을 6회 진행하는 것이었다. 초보자들을 위해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면 간단히 배울 수 있었는데 한 번 따라 하고 수련에 들어갔다. 명상 음악인 만트라에 맞춰 요가를 했다. 요가 첫날은 앞과 옆의 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눈을 열심히 굴려가며 따라 했다. 호흡을 들어마시고 내시며 요가 자세를 하라는데, 아직도 호흡은 어렵다. 들어마실 때 내시기도 하고 내실 때 들어마시기도 하는, 조절이 되지 않는 호흡을 한다. 다리를 찢고 벌리고 팔을 뻗고 시선은 천장을 보기도 하고 손끝을 보기도 하는, 음악과 함께한 1시간은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경험하면서 얻는 것에 대해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는 것이 낫고 생각만으로 미래를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때론 대책 없이 저지르는 것이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걱정되었던 그룹 수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 중에는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뻣뻣한 몸으로 열심히 따라 하면서 수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걸까? 왜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우연히 요가와 관련해서 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았다. 자세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수련자에게 왜 완벽하게 하고 싶은지를 요가 선생님은 역으로 물었다. 이어서 요가 선생님은 '요가는 완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을 향해가는 과정 속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뭔가 삶에 대한 지혜를 배운 느낌이 들었다.


앞서 소개한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로크는 사람의 심성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 즉 '타불라 라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인간에게는 타고난 우열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살다 보면 난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재능이 없는 것이다. 억울하다. 누구는 타고난 재능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로크는 타고난 재능이란 없으며 경험을 통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희망적인 인가.


아직은 수련이라는 말보다 열심히 곁눈질하면서 동작을 따라 하는 수준이지만 내가 요가를 경험하기 이전에 생각했던 것들, 잘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쩌지? 했던 것들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남과 비교하며 남보다 잘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씩 깨우는 과정으로서의 수련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마음가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몸을 깨우며 몸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은 분명 누군가 대신할 수 없으며 생각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접 체험하면서 얻어지는 값진 것이며 내가 모르는 자신을 좀 더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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