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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y 21. 2024

붉은 천막의 포차에서 인생이야기

<남원포차>에서 소주 한잔해보기

  비가 너무 쏟아졌다. 사람 많은 축제의 끝자락을 시샘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비가 오는 날에는 술을 부르는 분위기도 더 절정에 오른다. 흔히 말하는 인생 이야기를 속닥이기엔 흐린 날씨와 술은 빠질 수 없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워졌다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그리고 비가 몰아치듯 쏟아지면, 덩달아 매콤하고 기름진 것도 함께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역시나 모든 것과 어울리는 소주로 귀결된다. 인생의 모든 것이 쓴맛으로 연결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몸소 실천하듯이 인생 노가리에는 결국 소주였다.


  다만 요즘에는 그런 감성 가득한 포차가 없어서 붉은 천막만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강탈된다. 과거에 누구나 쉽게 찾던 포장마차. 붉은 테이블이나 주황 천막은 2차로 수다 떨던 아지트였다. 그래서였을까? 비가 오는 와중에 내가 새로 생긴 술집에 발길을 돌린 것도 이러한 원색적인 끌림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비 오는 날에 저러한 조명과 입구는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전에는 청국장을 팔고, 육개장을 팔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개업을 한지가 일주일도 안된 곳임에도 입구부터 오랜 발걸음이 있었던 편하게 주문했다. 메뉴는 종이로 이것저것 붙여 놓았지만, 안주로 좋은 메뉴들의 맛은 알면서도 또 새로운 곳에서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디 좋은 단골을 찾아서 항상 어떤 일이 생기면 찾아가는 포차처럼. 기대반 우려반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메뉴로 주문했다.

  일단 붉은색 테이블에 주황색 조명에 어울리는 매콤 곱창 볶음과 오징어 튀김 안주를 시켜놓고 문 전에 나온 칼칼한 콩나물국에 이 집에 인상이 확 좋아졌다. 기본이 된  번데기나 집반찬 같은 안주에 소주를 이미 두어 잔 시작한 후였다.

  그러다 이른 시간에 첫 손님들에게 주인 사장님은 곱창의 맵기 정도를 물었는데, 약간 매운 정도로 주문하고는 달달한 매움과 쫀득함께 함께 나온 깻잎과 고추에 함께 먹어보니 더 맛이 좋아서 술 한잔에 안주를 서너 번 먹었던 것 같다. 양념 잘된 안주에서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각각의 재료가 제법 많이 들어간 것이다. 잘게 썰린 깻잎도 그렇고, 이쁘게 포장하려고 뿌려 놓은 깨도 좋다.

  물론 같이 나온 오징어 튀김도 바삭한 겉표면에 짭조름한 것이 안주로 손색이 없었다. 보통은 동그란 오징어 튀김을 생각하지만, 큰 감자튀김 같은 모양도 나는 먹기 좋았다. 매운 곱창 소스에 툭 찍어서 한 번. 상큼한 간장 소스에 다시 한번 먹다 보니 배는 부르지만, 마지막으로 라면을 주문했다.

  처음 준 기본 국물이 다 식어서 다시금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을 때는 가성비 좋은 라면을 주문했다. 보통은 그러한 라면은 신라면이 많지만, 여기는 안성탕면이었다. 그래서 안성탕면 특유의 조화와 안정감을 국물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칼칼한 맛. 는 부르지만, 먹성이 좋은 나는 면에 김치를 올려서 후루룩 면치기를 하고 국물을 떠먹었다. 역시 마무리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인생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안주를 먹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알딸딸한 상태로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그게 하루살이 인생의 낙이라면 맞을까? 모든 시름은 여기에 털고는 다른 안주로 다음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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