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벗은 일상의 자유주의자
아침마다 세상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詩를 연다. 자연을 거부하고 인공人空을 찬미한 저 보들레르처럼. 오늘만큼은 자연을 만나지 못하겠다. 초연할 자신이 없다. 그 천진한 감동을 억누르고 살 자신이.
르 클레지오를 읽고 편지를 쓰려는데,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난다. 허기란 그런 것, 빈궁한 본능에 불과한. 그러거나 말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블루스를 추는 감정이 요란하다.
어릴 적 인신매매범에 의해 괴물 같은 세상에 휘말린 아프리카 소녀. 그녀의 삶에는 만남과 이별, 악마와 천사, 지식인을 가장한 프랑켄슈타인과 비렁뱅이를 가장한 철학자 등이 꼬인다.
# 혼돈의 정당한 변명에 부쳐
“귀여운 것, 일어나지 마, 그러고 있어. 여기는 네 집이야. 내가 널 재워줄게. 넌 내 어린 딸이니까. 나는 너 같은 아이를 기다렸어. 내가 널 보살펴줄 거야-”(124쪽)
어린 시절의 나는 조숙한 고집쟁이였다. 따듯함을 극도로 꺼리던 오만함과 상반된 애정결핍, 피해의식을 핑계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나는 미지의 환상에 이끌리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쓸모없는 유념유상의 밤들을 혹한酷寒처럼 지내던 숱한 나날들 끝에
“그러고 있으니 아줌마처럼 보여.”(127쪽)
내게는 나의 춤을 / 못된 흑인의 춤을 / 내게는 나의 춤을 / 족쇄를 깨는 춤 / 감옥을 날려버리는 춤 / 흑인이란 아름답다 - 착하다 - 정당하다는 춤을 (165쪽)
아줌마가 되어 가시덤불 지구에 놀러 온 외계인처럼 나는 잠시 인간 세계에 정착했다. 온갖 악기들이 집시들과 얽히고설켜 춤과 노래를 부렸다. 쓰레기더미의 풍요로운 지식이 벌레처럼 득시글거리고, 버려진 무덤에 아기의 살들이 부어올랐다. 진실로 도시를 모르는 도시인들이 공장에 갇혀 반나절 이상 노역하다 지쳐 다시금 제도 안으로 복귀했지만, 아름다운 건 새우잠뿐이었다. 잠이라는 춤에 빠져 세상은 잠시 제쳐두어도 좋았다.
조금은 변했을 내 모습을 봐줄 거울을 찾지 못했던 그 시절이 가고,
그때 문득 나는 왜 그녀가 우리 둘이 서로 닮았으며 둘 다 자신의 육체를 가지지 못한 존재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뭔가 진정으로 원한 적이 없고 항상 타인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169쪽)
“사람이 배가 고프면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지.”(183쪽)
어느 날 나는 메아리 없는 침묵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차라리 눈물의 레퀴엠에 가까웠다.
나를 인간이라는 단어로 갈무리한 신의 부적절한 조처에 반항하듯 내 뱃속엔 외계인이 살았다. 기생충을 먹이로 성장하던 녀석은 날 무던히도 괴롭혔지만, 얼마 안 가 별이 되고 말았다. 이름이 별똥별이라나 뭐라나. 신의 은총으로 나는 좀처럼 하늘을 보지 않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타인을 착취할 가능성이 더 이상 남지 않게 될 때, 지주와 공장 노동자가 사라질 때, 한쪽에서는 배불리 먹는데 다른 쪽에서는 굶주리는 일이 없게 될 때, 그런 모든 일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될 때, 그때 우리는 정부라는 기계를 고물상에 넘겨버릴 것이다.”(레닌, 239쪽)
나는 과감히 지구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이 구워낸 감각적인 푸성귀들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기에. 아니, 결핍 생산을 숭고한 의무인양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건 채, 스스로를 착취할 안식처를 마련하고 그 안에 오래 침잠하면서 삶은 다름 아닌 고독과 슬픔의 누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계로 버둥대면서도 정부를 퇴물취급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를 폭로하는 그림을 그리고, 詩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면 그건 내가 여전히 외계인이어서 일 것이다.
나는 자동차들이 달리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차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없다 - 반대로 차들이 달려오는 쪽으로 걸어가면, 우리는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들은 차체 안에서, 어두운 차창 뒤에서 우리를 두려워한다 - (275쪽)
길쭉한 두 바퀴를 굴린 지는 얼마 안 되었다. 뇌의 지령으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두 다리. 눈 감은 채 세상을 헤아린다는 것 자체가 고초일 텐데, 네 개의 바퀴가 상하좌우에서 도로라고 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활보하고 다니니 내겐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이용당할밖에. 두세 시간 인간의 부속에 대해 터무니없는 용서와 화해를 구하다 보면 뉘엿뉘엿 가라앉는 해와 맞닥뜨리게 된다. 자연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그림자를 밟고 눈물을 쏟게 된다.
아! 나의 길,
황금물고기...
단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