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 2024
커서 하나만 깜빡이는 빈 여백의 모니터.
손을 움직이는 순간, 문자가 뛰쳐나온다. 덩굴처럼 단어와 단어가 서로 엮이고 문장과 문장이 뒤섞이면서 베틀처럼 직조되어 가는 하나의 이야기.
그 이야기 안에 살아 숨 쉬는 인물이, 인연이, 사연과 서사가 부딪히고 헤어지길 반복하면서 빈 화면은 어느새 생명으로 가득 찬다.
지키고 싶었으나 지키지 못했던, 그러나 여전히 남은 잔해들을 소중하게 그러안고 지키고자 하는 의지들로 충만한 세계가 그 안에 있다.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 있는 후지노와 두려움이 많지만 좋아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쿄모토.
서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네 컷 만화를 통해 조우하는 순간은 역시 기적 같은 일이다.
학보에 그림을 투고하지 않는다. 졸업장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이 수많은 변수들을 뚫고 나온 하나의 루트가 쿄모토에게 가닿는 수간 독자적으로 존재하던 두 사람의 세계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전진하기 시작한다.
인물과 스토리, 배경과 톤으로 나뉜 후지노와 쿄모토의 열정은 원고 속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며 서로에게 협력한다. 수시로 우쭐대지만 의외로 줏대가 없는 후지노는 심약해 보이지만 만화를 향한 애정만큼은 압도적인 쿄모토의 그림을 보며 성실함을 배워간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쿄모토는 허세를 기세로 만드는 후지노의 분방함과 매력적인 인물과 스토리 라인을 창조할 줄 아는 재능에 매료돼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용감한 마음을 키워나간다.
닫혀 있는 하나의 문을 상징으로 수시로 문을 열고 부수고 손을 내어 잡고 끌어당기며 지속되는 두 사람의 얽힌 관계는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정신없이 박동하는 성장기의 혼돈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단정히 묶어내며 독자적인 성장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 이토록 다르지만, 그러니까 철저히 외롭고 완벽히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결코 혼자서만은 자라날 수 없다고.
룩백의 미덕은 이 미묘하고 복잡한 성장의 과정을 두 인물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면서도 각 자의 욕망을 오롯이 보존하고 있는 개별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사람의 꿈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각 자의 꿈을 향하는 각각의 독자적인 루트가 있고 그 루트 안에서 서로의 시공간이 겹치게 되는 분기점을 정밀히 포착해냄으로서 서로의 성장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따라서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쿄모토의 꿈은 어쩌면 후지노의 미래 프로젝트를 더 나은 실력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할 테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만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룩백에는 두 사람의 연이 겹쳐지는 몇 번의 분기점이 존재하는데
1. 처음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주러 가는 후지노
2. 후지노를 뒤쫓아나오는 쿄모토
3. 연재를 함께하기로 결정하는 후지노
1. 미대를 진학하고자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쿄모토
2. 쿄모토의 죽음과 이로 인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후지노
3. 후지노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결말을 네 컷 만화로 전달하는 쿄모토
4. 쿄모토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으로 다시 나아가는 후지노
등이 그러하다. 전반이 후지노의 선택과 쿄모토의 대응으로 전개된다면 후반은 역으로 쿄모토의 욕망과 후지노의 대응으로 대구 되는 구조며 이는 모두 4번의 결말로 불가피하게 귀결된다.
피치못할 상실로.
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각자의 생을 독자적으로 추동하면서도 서로의 선택에 영향을 받고 상대의 재능과 마음, 그들이 각자 선택한 루트를 서로 지켜보고 때로는 뒤쫓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채워 넣는다.
이 과정은 언제나 따뜻한 선의나 애정으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질투와 불안함, 슬픔과 분노, 실망과 회한이라는 부정적인 감정들과도 함께한다. 타인의 바람을 깎아서 내 삶의 질료로 함께 하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자신의 길을 가는 상대를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외로움이,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열망을 상실의 자리에 대신 퍼붓는 맹렬함 같은, 하나의 설명으로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수 만 가지의 감정들이 상영 시간 내내 화면 위로 들끓었다 소강하고 다시 끓어오른다.
쿄모토를 미대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이제 정말로 홀로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후지노의 얼굴은 그래서 눈물이 나도록 분하고 복잡하게 뜨겁다. 그녀는 찡그리고 분노하고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쿄모토 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나가는데 그 생생한 표정만으로도 그녀 앞에 펼쳐진 전투의 격렬함이 느껴질 정도로 (단지 책상 앞에서 만화를 그리는 정적인 씬인데도)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룩백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이 생동함이다.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예쁘고 아름답게만 그려지며 소모되는 것과 달리 룩백은 여성 인물들을 욕망하고 애정하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하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웅크리고, 달리고, 울고 웃고 뒹굴고 일어서는 모든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다.
한 컷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후지노의 표정은 우리가 사랑하는 수많은 대가들의 그것과 몹시 닮아있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인 후지모토 타츠키 본인의 얼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녀를 통해 키시모토 마사시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타무라 유미의, 그리고 켄타로 미우라의 얼굴을 마주한다. 창작하는 자로서의 굳건한 정체성이 의지로 작동하는 그 경건하고 강렬한 순간이 후지노의 얼굴에 가득 담겨있다.
이 생동하는 생의 의지.
목적도 이유도 알 수 없지만 내면에서 추동하는 이 강렬한 힘이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에 이야기를 채워 넣고 떠나간 것들을 수백 번 우리에게 돌아오게 만든다. 각자의 루트를 진행하는 순간순간 기적처럼 겹치는 아름다운 분기점들 위에서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함께 쌓아 올린 기억과 감정들은 끝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 기어코 고통을 뚫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동력이 된다. 피할 수 없는 헤어짐과 상실, 상처와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지켜야 할 것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이유 없이 잃게 만드는, 혼란하고 불규칙하게 폭력적인 세상에서도 끝끝내 놓지 않는 이 강렬한 의지야말로 결코 죽음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가장 강렬한 생의 저항이며 상실한 것을 회복하고 말겠다는 투쟁의 표현이다.
물리적 법칙과 논리를 비껴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서라도 마침내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의지. 가장 내밀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나눴던 기억과 감정들을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자신으로부터 뺏어갈 수 없다는 강렬한 선언이 영화 안에 엄청난 기세로 담겨있다.
상실한 것들,
고통과 외로움들,
고독과 두려움을 넘어서 어딘가에 가닿고자 하는 의지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 배워간
연결과 상냥함,
존경과 애정하는 마음이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러니까
지지 마.
이야기를 멈추지 마.
룩백, 2024.
p.s
만화란, 정말. 굉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