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흑백 요리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역시 상황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는 존재구나.
습관적으로 욕을 하며 다 밟아주겠다고 난장을 피던 출연자가 세련된 매너의 메이저 셰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후반으로 갈수록 그 태도를 지우고 숨기게 되는 변화를 지켜보며 능력주의니 서바이벌이니 요리경연이니 하는 프로그램 기조보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성정은 타고난 것과 개인이 지나온 생의 경험들이 결합해 형성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 흑수저 셰프의 변화는 요리 경연이라는 일시적인 경험을 통해 일어난 것으로 감화라기보다는 순간적인 눈치 보기에 가깝다. 성정이 크게 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험에 노출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새로운 변화의 룰을 체화해야 한다.
요리경연은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경험이다. 더군다나 백수저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파워풀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의 눈치보기는 특유의 강약약강적인 태도에 더 가까운 것도 사실이고. 눈치보기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상대로 발생하는 효과니까. 하지만 굳이 굳이,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만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엔 요즘 내가 너무 힘들다. 중요한 것은 작다면 작은 바로 그 변화니까.
어찌 됐든 이 요리 경연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품격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백수저 셰프들 역시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된 흑수저 셰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성장해온 사람들이란 부분이다. 프로그램의 명명과는 반대로 백수저 셰프들은 실버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출연진 구성 자체가 타고난 특권 층 대 바닥에서 올라온 언더독이라는 흑백 요리사의 기본 기조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바이벌을 싫어하는데도 이건 보게 된다는 평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복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포장과 내용이 맞아떨어지질 않는 거다. 그리고 이 기획의 실패야말로 역설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백수저 요리사들 역시 흑수저 요리사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가장 하위에서부터 차근히 주방의 허드렛일을 하며 수많은 견제와 무시, 질시와 방해를 겪으며 성장해 왔다. 이러한 백수저 셰프들의 개개인의 역사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채 태어나서 너는 왜 나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묻는 위선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상황, 악의를 가진 타인들로부터 받은 피해, 좋지 않은 스승을 만나고 나쁜 동료를 통해 얻게 된 불신, 열악한 재정상황. 수많은 악재와 구조적인 문제를 마주하며 셰프들은 전진한다. 이 과정에서 개개인들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작은 선택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축적되기 시작하는 거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고난들을 어떻게 뚫어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했는지가 오늘날의 그를 만드는 셈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분명 더 수월한 위치에서 스타트 라인을 끊는다. 반면 누군가는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최선을 다해도 개인의 힘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장벽 앞에서 발을 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이 구조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가, 그 과정에서 이 모든 불합리를 어떻게 나의 경험으로 재구조화하고 해석하는 가가 유의미하다는 믿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구조화된 모순 속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이 작동하는 최소한의 지점이 나를 구성하는데 결정적일 수 있다는 걸 상기하는 거다. 그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하지 않은가.
타고난 성정이란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좋지 않은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은 남을 밟으면서 쾌감을 느끼고 비열하고 저속한 욕망에 사로 잡히게 된다. 타인을 누르며 느끼는 충족감을 보상으로 삼아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려 들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착각한다. 악인처럼 보이는 이 음험한 욕망의 이면에는 당연히 생략된 수많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가 누적되어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쌓여온 성정이 단 한 번의 경험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타인과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가치를 바로 체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그들로부터 배우며 그렇게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자극적인 초창기 기획의도와 달리 원숙한 품격을 두른 채 자가발전하기 시작한 지점은 다름 아닌 이 몇몇 백수저 셰프들 덕분이었다.
특히 에드워드 리 셰프, 여경래 셰프, 정지선 셰프와 안유성 셰프 등의 활약이 크다. 다분히 사대주의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에드워드 리 셰프의 성장 과정을 보면 사회적 역할과 기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느껴진다. 미국 사회에서 주는 압력 덕분인데 페미니즘 이슈, 환경 이슈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기 때문 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 박혀있으니 다른 백수저 셰프들도 영향을 받는다. 특유의 남초 요리 관련 프로그램 바이브와 전혀 다른 파동이 여기서 발생한다.
여경래 셰프의 경우도 한국 주류 남성 집단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성 후계나 후배를 좀처럼 키우지 않는 한국 요식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에드워드 리와는 또 다른 결로) 여성 후배를 (실은 여성 후배라기보다는 후배의 성별을 개의치 않는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진심으로 대하며 그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장유유서를 따지며 체면을 중시하는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는 달리 후배에게 패배하더라도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도달했음을 기뻐하는 어른의 얼굴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안유성 셰프 역시 미디어 노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 출신에 셀럽 셰프들이 가진 끼와 센스와는 거리가 먼 장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다른 셰프들의 전략적 사고가 빛이 나는 순간에도 자신의 요리를 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차분히 디쉬를 만들던 그는 프로그램이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정지선 셰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불시에 새로운 룰을 적용하며 탈락자를 가려내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룰에 따르기보다 자신의 원칙과 무엇보다 함께 해온 동료에 대한 신의를 중시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녀 역시 프로그램 밖의 인간형이다. 순간의 승리보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더 중요한 사람. 그래서 찰나의 이윤보다는 지속적인 경영이 더 중요한 사람. 이들이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그래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원래부터 이 프로그램 우승과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거니까.
이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닻과 같은 역할을 하니 그들의 선택들을 분기점으로 프로그램이라는 거대한 배의 선로가 방향을 바꾸게 된다.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서바이벌 경연이라는 기조는 개나 줘버려 가 되는 셈이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감은 무척 중요하다. 프로그램에 다양성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획일적인 가치를 신봉하며 모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변주가 일어난다.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들이 발생한다. 이들이 각 축에서 앵커로 기능하며 프로그램 전반을 뒤흔드는 역동이 내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다시 글의 초반으로 돌아가서 롤모델의 중요성, 특히 자신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품격을 버리지 않고 생존해 낸 선배들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경험은 굉장한 특혜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언제나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고.
화가 많고 욕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노약자들을 때리거나 위협하는 요즘의 우리들을 떠올리다 흑백요리사가 생각났다. 수시로 욕을 하고 다 밟아서 내가 우승하겠다고 허세를 부리던 그 요리사의 작은 변화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도, 상황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품위를 잃지 않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부분들을 소중히 떠올린 사람들, 결국 상황은 모두 지나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만을 새로운 자산으로 삼아 더 나아가는 사람들, 조금 더 앞으로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 이후의 세계를 고민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베풀어진 세상의 상냥한 면을 행운으로 여기고 자기만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에게도 상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어깨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사람은 더 대우해 주는 쪽으로 변하려고 하니까. 경쟁이나 승리보다 품격을 더 높이 쳐주니 그 방향으로 기우는 것처럼, 이건 이타적인 속성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속성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눈치라도 보게 만드는 쪽이 더 낫다. 언젠가는 이걸 정말로 체화하고 진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남을 밟겠다고 시작했지만 결국 그 끝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 줄 수 있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속적으로 눈치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고,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더 다양하고 더 성숙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다수의 선만이 악을 희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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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MBC | 에피소드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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