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력을 몰아넣은 시리즈
이쿠사가미는 지금 일본이 지닌 영상적 역량을 최선을 다해 쏟아 넣은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쪽으로는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실사 영화 쪽으로는 특유의 과장된 연기톤과 캐릭터성 때문에 장르물 쪽으로 특화되어 버린 측면이 있는데 이 두 요소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분명한 장점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과장된 캐릭터성은 인물을 선명하게 하고 작품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한다. 인물이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2D라서 그렇다. 허용도가 높은 거다. 만화니까. 문제는 이러한 애니메이션 작법을 그대로 실사 영화로 옮겨올 때 발생한다.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되고 나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지점이다. 2D로 볼 때는 재밌었는데 이걸 진짜 인간들이 연기하니 인물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거다.
2D 캐릭터였을 때 느껴지던 복잡한 인물의 고뇌와 욕망이 실사화되는 순간 매우 단순화되어 버린다. 만화잖아 저건, 하는 순간 실사의 미덕인 현실감이 박살 나는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도 유치한 아동용 콘텐츠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내기 어렵다. 원작의 작품성이 높을수록 실사 영화는 더 기괴해진다.
문제는 애니메이션 강국으로서 익숙한 애니적 캐릭터 조형을 실사 작품에도 자꾸 응용하려 든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정확히 말하자면 망가에 익숙한 만큼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데도 애니의 장점을 자꾸 흡수하는 경향이 있는 거다.
최근 개봉한 만화 원작의 실사 영화 텐댄스에서도 그런 기시감을 느꼈는데 캐릭터성 자체가 2D 스럽다. 다시 말해 특정 성향이 압도적으로 도드라져야 개성이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조형법 때문에 실제 현실 세계의 인물답지 않고 어딘지 작위적인 부분이 생기는 거다. 두 주연 배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조형된 방향이 그러하니 이 한계를 넘어서기가 매우 어렵다. 텐댄스처럼 원작이 만화가 아닌 경우에도 이 작법의 영향은 여전하고.
이쿠사가미는 이런 애니적 캐릭터 조형을 최대한 억누를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쿠사가미는 만화적 상황을 차용하면서도 그 안의 인물들의 개성을 조금 희석시켰다. 만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보다 현실에 존재할 법한 개연성을 조금 더 부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바람의 검심 사이토처럼 보일 사쿠라 같은 경우도 꾸역꾸역 만화적 캐릭터 성을 억누른 게 눈에 보인다.
뭐랄까, 망가적 영향력을 최대한 낮추고(그럼에도 상당히 만화적이긴 하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고 노력한 느낌. 그런 측면에서 작품은 특유의 과장된, 히이이익 살려줘랄지 내가 얼마나 미친놈인지 보여주마!! 같은 리액션을 최소화하고 비교적 담백하게 극을 이끌어가려 한다.
이런 변화에서 일본의 야망이 느껴진다. 넷플릭스를 통해 메가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일부 콘텐츠의 선전이나 탄탄한 내부시장을 기반으로 무서운 속도로 자국을 따라잡고 있는 중국의 저력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쿠사가미는 일본 내에서만 통용되는 과장된 캐릭터성과 연기의 톤 앤 매너를 수정하고 망가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시험해 보는 느낌이 있다.
전개가 무척 빠르고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는 인물들 보는 재미도 있다. 필요이상으로 고어하거나 잔인하지 않고 일본이 잘하는 사무라이 영화, 그중에서도 명작 반열에 오른 작품들의 미장센을 활용한 면모도 언뜻언뜻 보인다. 무엇보다 액션 면에 있어서는 카메라 활용과 동선이 잘 맞아떨어지는, 합을 잘 맞춘 듯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건 원래부터 일본이 잘하던 부분이었다.
잘하는 것은 승계하고 불호가 있는 부분은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쿠사가미는 현재 일본이 지닌 영상 제작 역량을 쏟아부었다. 캐스팅도 화려하고 세트와 소품 활용도 공을 들인 모습이다.
주인공인 사가 슈지로는 배가본드의 무사시와 바람의 검심의 켄지를 섞어놓은 느낌이고 나머지 인물들도 우리가 사랑했던 명작 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부분이 많다. 킬링타임용으로 볼만하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