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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May 18. 2022

너를 지지 하진 않지만 이해할 순 있어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양극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양극화는 어느 단어보다도 와닿는 단어가 되어 가고 있다. 저녁 식탁 앞에서 벌어지는 언쟁부터 낯부끄럽게 공적인 티비 언론 자리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까지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함께 매일을 살아간다.


선거, 민주주의, 탄핵, 코로나19, 인종차별, 종교, 성소수자, 페미니즘, 비건.

단어들만 나열해도 벌써 머리가 지끈해져 오는 이런 갈등들 앞에 누군가는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필력 하며 목소리를 높여 투쟁하고 있을 거며, 누군가는 이런 투쟁들 속에서 나가떨어져 입을 벙끗하기 조차 질려 말하길 포기했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그러든 말든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도대체 갈등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양극화란 무엇일까?


polarization.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정의하기 어렵다. 1600년대 과학자들이 빛, 방사선, 자력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용어로써, 하나의 극 방향으로만 자력은 움직이고, 다른 극에서 멀어진다를 설명하던 단어이다. 정치학에선 양극화를 정치적 사고방식이 나뉘어 이념적 극단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양극화는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구분되고 있다.


감정적 양극화: 적대적 집단의 구성원들이 상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성향

이념적 양극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양극화된 사고방식을 보이는 것

정치적 양극화: 특정 정당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경우

인지적 양극화: 어떤 문제에 관하여 반대 정당의 태도라고 믿는 것과 실제 반대 정당의 태도 사이에 있는 차이


이렇듯 양극화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각자를 구별할 수 있어야 더 좋은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다.



갈등의 시작, 어트랙터


양극화 요인과 관련해 발표된 동료평가 논문과 메타분석을 조사했을 때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요인에 사람, 집단, 사회라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이 세 가지는 얽히고설켜 갈등을 유발하는 '어트랙트'를 만들어 낸다.


1. 사람: 인간은 매우 감정적이고 자존감을 추구하지만 인식 측면에서 매우 빈약하다.

한마디로 편향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보를 감정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고도로 합리적인 이슈들을 다룰 때도 우리 뇌의 감정 중추가 활성화되어 감정에 휘둘린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편향 메커니즘을 강력히 뿌리박았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신념과 가치를 확증해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더 좋아하며, 그렇게 함으로 개인과 집단의 자존감을 높여 소속감을 만든다. 소속은 곧 생존과 연결된다. 더더욱 뇌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 내가 맞다고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과 어울리 게 된다. 편향은 점점 더 짙어진다. 점점 더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듣고 싶은 거만 듣게 된다.


2. 집단: 인간은 선호 집단을 빠르게 형성하고, 집단을 일치와 극단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앞의 내용과 연결된다. 결국 집단을 형성함으로 우리는 생존을 할 수 있었기에 엮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결속'을 만들기 위해선 같은 생각, 신념, 가치관, 문화, 행동을 공유할수록 높아진다. 본능적으로 소속집단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은 '타자'를 만들어 낸다. 다른 집단에 비해 소속 집단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다고 여길 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타 집단과 싸우게 만든다. 리더와 외부인들이 이런 지렛대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분열을 조장하고, 분열과 제압을 이용해 권력을 얻을 수 있다.


3. 사회: 사회 규범과 사회 구조의 차이가 중요하며,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적대감이 쌓인다.

'동종 선호' 한마디로 '끼리끼리' 이런 동종 선호를 반영해 지역 사회의 물리적, 사회적 안전과 경제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 넓은 사회 차원에서는 보편적으로 위계적 집단 구조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며, 특정 집단이 최상층으로 올라가 지배하며 그런 구조를 필사적으로 유지한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의 위치는 관심사, 정체성, 접근할 수 있는 자원 정보에 영향을 미친다. 집단들은 고립된 사고를 가지게 되고 경쟁적인 구조와 규범을 지니면서 양극화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된다.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여, 개인, 지역 사회, 거시적 차원의 성향과 영향들이 복잡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마치면서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개인의 '확증 편향'을 더욱 키우며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거기에 소셜 네트워크, 혐오를 무기로 이용하는 미디어, 넘쳐나는 정보들까지 더해져 하나의 문제에만 접근하여 해결할 수 없는, 이 모든 문제를 엮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버리는 슈퍼태풍을 만들어 낸다.


인지적 복잡성(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낮아지고, 인지적 경직성(이분법적 흑백 사고)은 더 높아진다. 우리의 생각은 더욱 협소해진다. 내 생각안에 갇히게 되고 자신의 바운더리에 속한 사람들만 신뢰하게 되고 뚜렷한 당파적, 인종적 정체성이 나타나게 된다. 거기에 불안전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본능은 매우 복잡하고 가변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더 불안하고 더 단순하게 사고하고 더 나쁜 의사 결정을 내린다. 슈퍼태풍 앞에 일차원적 접근은 더 짙어지고 다양한 양극화 현상을 비치면서 점점 더 다루기 어려운 갈등으로 이어진다. 집단 내부와 타자 사이에서 스스로 조직화되고, 그것을 바꾸려는 외부의 시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다루기 힘든 어트랙트가 된다.


슈퍼태풍



이런 위협들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에게는 안전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이와 아울러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멀어지게 한다.

-P.49



갈등은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두 가지 이론을 살펴보자.


변화 이론(Theory of change):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과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 관한 일련의 신념과 가정.


이런 변화 이론은 어렸을 때의 경험과 관찰, 공식적인 교육과 문화적, 종교적 양육으로 변화 이론의 상당 부분이 형성된다. 우리 뇌의 신경회로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며, 이것과 모순되는 정보는 완전히 무시한다.


암묵적 이론(implicit theories): 자신, 타인, 주변 세계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품고 있지만,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가정과 신념을 말하며 우리가 세계와 관여하는 방식은 암묵적 이론으로 형성된다.


이것들이 엮어 상황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갈등의 해결 방식과 이해도는 달라지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 개인의 가치관, 신념, 가정에 따라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고 이것이 곧 충돌이 된다. 특히나 직면한 문제가 어려울수록 이 두 이론에 더 휩싸이게 된다. 즉 갈등의 본질적 속성과 해결이란 어쩌면 통념적으로 제공하는 해결법이라던지 갈등상태 해결을 위한 정답을 내리려거나 대결이나 싸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단순히 갈등 자체를 '고쳐지는'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갈등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갈등을 이겨내야 할 게임이나 수리해야 할 시계가 아니라 어트랙터 역동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바라보기이다. '동적 시스템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갈등이 어떻게 변화하고 저항하는지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갈등을 분석하고 고치려 하기보다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근본적으로 긍정적 방향으로 갈등을  '재형성'하는 것이다.


방향의 재형성


우리의 현재 갈등을 바라보는 익숙한 관점을 갈등을 양산하고 구조적 힘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부담스러운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체계적 지혜' 지속적인 갈등의 복잡한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과 건설적인 패턴을 만들기 위해 작용하는 여러 힘과 흐름에 맞춰 일할  있는 역량을 쌓는 것이다.


한마디로 흐름에 맞추는 거다. 죽은 물고기조차 강물을 따라 흐를 수 있다.


저자는 몇 가지 방식을 제안한다.


원칙 1: 다르게 생각하라

당신의 변화 이론을 바꾸는 거다. 갈등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획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시스템이 변화하는 이유와 불변하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원칙 2: 재설정하라

새로운 시작의 힘을 포착하라. 어떡하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 갈등의 조건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원칙 3:강화하고 부서라

변화를 추구할 때 긍정적인 상태를 촉진하는 것과 부정적인 상태를 없애는 것이 매우 다른 경로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잠재적 거품을 찾아내 우리를 몰아가는 더 파괴적인 역동의 힘을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


원칙 4: 복잡도를 높여라

실타래처럼 엉킨 수많은 요소 중 내부 모순(내부의 견제와 균형)보다 양 진영의 관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개인의 다양한 가치, 태도, 신념, 집단의 규범, 이야기, 규칙 등을 떠올리며 이해하며 그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사랑을 키워 상대 진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거다.

그저 단순한 찬반 형식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상호 관련된 형태의 정보를 제시하여 서로 각자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선택적 편향과 인지를 줄이고 딜레마와 모순된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복잡도는 갈등을 더욱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원칙 5: 움직여라

새로운 경로와 리듬을 활성화해야 한다. 긍정적 사고의 경로와 리듬을 자꾸 가중해야 한다. 평화는 움직임 속에 있다.


원칙 6: 유연하게 적용하라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라. 자신의 실패에 적응하고 인간이 형편없는 의사 결장자인 이유(효율성, 현실, 존중감, 환경의 동시적 압박으로 인해)를 인정하고 인지적 편법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우겠다고 계획하라.



"재설정하고, 강화하고 부수며, 복잡도를 높이고, 움직이고, 유연하게 적용하기를 바란다."

-p.133




결국 우리는 이렇듯 살아 남기 위해 깊게 박힌 생존 본능에 의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집단을 이루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맞다고 말해주는 확인에 본능적으로 끌리며,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 내 말에 맞다 해주는 사람, 즉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런 사람들과만 어울리기에 점점 더 그 의견에 고착되어 어트랙터가 되어 간다. 갈등이 꼭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일까? 갈등은 갈등 그 자체로 남겨둘 만하다 생각한다. 다양한 갈등이 있기에 다양한 문제들이 제시되고 다양한 생각이 밖으로 나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게 또 새로운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애당초 사람을 바꾸긴 어렵다. 이미 설계된 DNA에 의해서든 살아온 환경에서 보고 들은 것들의 영향이든, 편향의 생존 메커니즘이든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란 정말로 정말로 어렵다. 그럼 그런 그들을 굳이 바꾸려 내 주장만을 펼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지'라는 현자의 자세를 연습하는 것 또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순응하는 것이다. 한 일화가 생각난다.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께서 '노숙자를 도와주는 것이 옳은 것일까?'에 대한 찬반 의견을 던졌다. 사회적으로 암문적인 통념상이든, 도덕적 윤리의식의 주입이든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었다. 그 반대하는 아이들의 이유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도와주면 거기에 고착되어 다른 일을 하지 않을 거란 이유였다. 정말 놀랬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니 갈등의 문제가 마냥 자기주장을 펼쳐 이겨야 하는 싸움의 대상이 아닌 '토론'의 장이 되었다.


이렇듯 이분법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게 과연 있을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슈퍼태풍이 만들어낸 거대한 갈등들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두 가지 정답으로 가를 수 있는 문제일까? 우리는 좀 더 순응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시각, 나와 다른 관점의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시각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동의는 할 순 없어도 그들의 생각을 이해함으로 받아들일 순 있는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한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질없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저자는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50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졌고 그 경험들로 인해 모든 미국인, 즉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시골에 사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진보적인 사람들과 보수적인 사람들, 그 모두와 연결되어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한 생각, 행동, 말 등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 '분열'이란 것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통찰력이 생겼다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 우리는 어느 늑대를 키울 것인가.


"싸움은 네 안에서 일어난단다. 네 안에는 두 마리 늑대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 한 마리 늑대는 두려움, 분노, 시기, 탐욕, 오만, 이기적 자아를 나타내고, 다른 늑대는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너그러움, 믿음을 나타낸단다. 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과 똑같은 싸움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일어나고 있어."
"어느 늑대가 이길까요?"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분열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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