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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로 Apr 12. 2022

당신의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인생 후르츠>(2017)

  나는 어려서부터 안빈낙도하는 삶을 동경했다. 「월든」이나 「조화로운 삶」,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으며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끌렸다. 엄청난 부자나 유명인사보다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더 멋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실제로 그런 삶을 꿈꾸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복잡한 서울을 떠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집에서 그들처럼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밤들이 있었다. 그러나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 생각은 공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의 접점에 다가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영화 <인생 후르츠>는 건축가 슈이치와 그의 부인 히데코가 50년 살아온 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매일 정원을 가꾸고, 집을 수리하고, 요리를 한다. 일종의 ‘슬로라이프’다. 슈이치는 1960년대 고조시의 뉴타운 설계자로 참여했지만, 고도성장을 원하던 도시는 그가 계획한 자연 친화적 도시 계획보다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에 낙심한 슈이치는 히데코와 함께 자신들이 살아갈 집을 직접 짓고, 몸소 자신의 건축 철학을 실천하기에 이른다. 반세기를 함께 살아온 이 부부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긴 시간의 철학을 보여준다. 집은 보석상자와 같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처럼,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을 ‘삶’의 알레고리로 표현하며, 슈이치의 건축 철학을 삶의 철학과 연결시킨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두 사람의 식탁에 오르는 요리를 지켜보는 일이다. 정원에서 수확한 과일과 야채들은 히데코의 손을 거쳐 엄청나게 다양한 요리로 변신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철 음식을 먹고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던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은 것인 언제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어떤 이는 지금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어떤 이는 지금보다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인생 후르츠>와 같은 영화를 보며, 슈이치와 히데코 같은 삶을 꿈꿀 것이다. 자연 속에서 복잡한 마음 없이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며,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인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삶 말이다. 어린 시절 내가 동경하던 안빈낙도의 모습 또한 슈이치와 히데코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느릿하고 고요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9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원을 가꾸고, 집을 수리하고, 요리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쇼이치와 히데코는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임은 행동이고, 행동은 우리의 이상을 현실에 가깝게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그들은 ‘슬로라이프’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슈이치와 히데코는 삶의 목표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걸어 나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한다. 삶의 목표에는 실패가 있을 수 있지만, 삶의 방향에는 행동과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그 질문을 나에게 돌려본다. 누군가 나에게 삶의 방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까? 부끄럽지만,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살고 싶다. 슈이치 할아버지처럼 매일 누군가에게 10장의 그림엽서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적게 소비하고, 적게 말하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물론 대추나무처럼 많은 사랑 열매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못나고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 후르츠>는 꾸준히, 천천히 맛이 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혹여 이번 인생에 그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인생에 그런 흔적이 나이테처럼 새겨질 수 있다면, 나는 그 방향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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