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상이 좋으세요."
"죄송한데 중고 서점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이 쪽 방향이 가락시장 방면이 맞나...?"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은 최악이다. 세 번째 질문은 오히려 좋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첫 두 질문은 그저, 내가 속이기 쉬운 순진한 인상이기에 던지는 의도적 접근이다. 내가 매우 이성적이며 의심이 많은 인간임은, 실제 나를 알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편견은 보이거나 들은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외모라던지 일반화의 오류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순진하게 생긴 나는 속이기 쉽고, 모범생들은 재미가 없으며, 여자 운전자는 초보운전인 데다 만만하기까지 하다. 이는 내가 의외로 똑 부러진 행동을 하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잘 놀기도 하는 모습을 볼 때, 여성 트럭 운전자가 능숙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에도 잘 깨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편견이기 때문이다. 정설처럼 자리 잡아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되짚어보면 나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혔던 경험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ADHD가 있는 학생을 과외한 적이 있다. 오래 가르쳐온 학생의 지인이었는데, 추천을 받아 수업을 맡게 된 것이다. 첫 시험을 보던 날, 어머님은 학생이 ADHD를 앓고 있다며 걱정을 표했고,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그저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시험을 보는 동안 눈앞이 캄캄해졌다. 첫 문단을 채 마무리하기 전에 시험지에 칼을 그리는 학생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나는 ADHD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어머님의 걱정으로 만들어진 색안경을 끼고 말았다. 숙제를 착실히 해오는 모습에도 답지를 베낀 것 아닐까 하여 답지를 빼앗았고, 열심히 글을 읽어 내려가는 중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하지만 나의 ADHD 학생은 수업을 누구보다 잘 따라왔다. 집중력이 부족한 만큼 노력으로 채우는 학생이었다. 숙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잘 해왔고, 집중력도 점차 향상되어 과외를 마칠 때 즈음엔 반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ADHD라는 말만 듣고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학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대학 시절, 외국인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있었다. 줄여서 '외특'. 그들은 실제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인데 외국에서 거주하는 재외국민이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이 학생들은 다양한 이유로 질타를 받았다. 대학에 쉽게 들어왔다,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한다, 한국에 와서 영어를 쓴다,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 이외에도 다양한 뒷담이 오갔다. 결국 '외특'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아무런 잘못 없는 신입 외특 학생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심지어 선행을 해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그들이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들도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힘들어하는 한국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고, 모두를 동등하게 존중해주었다. 다년간 함께 생활하며 많은 친구들이 외특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하며 섣부른 편견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외특 친구들은 그들의 전형에서 최선을 다해 성공하였고, 조별 과제에 익숙하지 않은 새내기였으며, 한국어에 서툴렀고, 언어나 문화가 유사한 서로가 더 편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의 행동을 잘못 해석했고, 누구 하나 먼저 손 내밀어 한국 문화를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공중방역수의사'로 군 대체복무를 앞둔 나에게도 한 여자 동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애들은 좋겠다. 3년 동안 쉴 시간이 있잖아."
이 말을 듣고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실제로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고 사회에서 수의직 공무원으로 3년간 일을 한다는 점에서 공중방역수의사는 만족도가 높다. 군 문제 해결에 공무원들은 일을 안 한다는 편견까지 더해지니, 공중방역수의사는 3년을 쉴 수 있는 꿀직업이라는 편견이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수의직 공무원은 박봉에다 축산이라는 힘들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3D 업무를 해야 하기에 대부분 기피하는 자리다. 여자도 수의직 공무원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젊은 수의사들이 자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 원하지 않는 일을 3년간 강제로 해야 하는 남자들에게 부러움을 표하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보거나 겪었거나 들어왔던 것들, 이런 경험들이 편견으로 자리 잡아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편견은 n수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편향적이다. 즉, 과학적 통계가 아닌 짧은 경험에 입각한 편향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은 긍정적인 면을 가리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한다. 그렇게 편견은 강화되고, 특정 집단을 매도하기 쉽다. 나와는 다른 경험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행동은 당연히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나도 모르게 틀린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 둘 쌓여온 편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단언컨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본다면 사람의 진면목을 절대 볼 수 없다.
우리의 경험은 무한할 수 없다. 각기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꿈과 목표, 교육의 방향도 다르며 무엇보다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나와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은 상당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매우 세심한 일이다.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기꺼이 그 에너지를 지불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는 휴머니즘에 감동하고 위로를 받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봄날의 햇살'이라는 별명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듯, 우리가 지불한 에너지는 언젠가 감동의 물결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깨부수고 기꺼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날이 온다면, 세상은 정말 봄날의 햇살로 가득한 따뜻한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