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씨앗을 발아시키다.
“책방”
어린 친구들에게는 낯선 단어겠지만 분명 많은 성인들에게 향수를 안겨주는 단어이다.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소설책과 만화책들이 항상 반겨주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도 나온다고 하면 몇 날며칠을 설레며 그곳에 기웃거렸었다.
세상 모든 구매가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비디오샵과 함께 동네 책방은 빠르게 쇠퇴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즐거움은 빠르게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잊혀짐은 마치 나를 구성했던 일부가 소멸하는 느낌이었다.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교회나 미용실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네에 하나쯤은 삼삼오오 모여 책을 고르고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책방이 있었으면 했다. 사유를 통해 자유를 주는 책은 곧 그 문화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그 품격을 위한 책방의 반란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인아 책방이 있다.
얼마 전 직장 근처에 책방이 생겼다고 해서 방문하게 된 최인아 책방은 유럽식의 높은 서고와 커다란 피아노 그리고 “최인아”가 있었다.
처음 책방의 탄생을 전해 들었을 때 빌딩 숲으로 가득한 선릉이라는 곳에서 드디어 책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적이었다. 나는 항상 책을 찾았지만 오피스 단지 근처에는 책방은커녕 대형서점조차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벽에 부딪치면 가장 먼저 찾는 것 또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침 그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최근 최인아 책방에는 점심시간이고 퇴근시간이고 많은 사람들이 최인아 책방을 찾고 있었다. 맛 좋다는 식당조차 1년을 채 못 버티지 못하고 상권이 바뀌는 곳이 바로 악명 높은 선릉이다. 덕분에 최인아 책방의 생존과 성공은 많은 사람들이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물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봐야 할 일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서점에는 없지만 최인아 책방에는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는 없고 최인아 책방에는 있는 것
1. 주인이 있는 책방 그곳엔 최인아가 있다.
대표 나사장이 아닌 바로 주인이 있는 곳. 책방 주인은 더 사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책방 주인은 곳 그 책방의 룰이며 메인 큐레이터가 된다.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책들 사이에서 책방의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작은 서점일수록 책방 주인의 영향력이 중요하다.
사실 대형서점을 가지 않고 동네 작은 책방으로 오는 이유는 주인을 신뢰하는 마음과 나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다. 작은 책방의 주인은 그곳에 자주 방문해주는 손님을 모두 기억하고 배려하기 때문이다.
가끔 책방에 들러 골똘한 표정으로 책장 앞에 갸우뚱거리면 최인아 씨는 이렇게 묻곤 한다. “도와드릴까요? 어떤 책을 찾으세요?” 그런데 마치 이 질문이 “어떤 문제가 있으세요?”, “어떤 책의 도움을 받고 싶으세요?” 라도 다정하게 물어보는 것 같다.
2. 150명의 인생 큐레이터가 전하는 책 이야기
최인아 책방 1층 낮은 서가에는 북앤드를 통해 주제별 분류가 되어있다. 철학, 인문, 고전 이런 분류가 아니라 다정한 인생 질문들로 이루어진 분류다. 다들 한 번씩 그 질문에 한참 동안 머무르며 책과 질문을 되씹고는 한다. 1번에서 북큐레이터가 한걸음 다가가 책을 추천해줬다면 2번은 책을 찾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큐레이팅이다. 아래의 주제들에 맞게 엄선된 책들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30년 광고를 주름잡았던 최인아 씨와 정치헌 씨의 선후배들이 추천한 책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카피라이터도 있고 아트디렉터도 있으며 경영자도 있고 대리도 있고 과장도 있고 30 대도 있고 40대도 있다.
-최인아, 정치헌의 선후배 친구들이 추천합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불안한 이십 대 시절, 용기와 인사이트를 준 책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요즘, 재미가 부족한 그대에게
-가슴 뛰는 삶을 사는 중년의 당신에게
-나, 우리 한국을 둘러싼 이야기
3. 멋진 서재의 주인이 된듯한 느낌을 준다.
좋은 책의 발견도 중요하지만 책방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서재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최인아 책방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서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오직 팔기 위한 평면의 진열대와 5층짜리 책꽂이 몇 개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아무도 그곳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천장까지 높게 솟은 책장에 이동식 사다리 그리고 세상이 편해질 것만 같은 안락한 독서 의자 그리고 언제라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의 존재는 방문객에게 꿈의 서재를 선물한다.
방문객이 많은 편이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책을 하나 찾아들고 소파에 앉으면 완벽한 개인 공간이 된다. 눈치 주는 사람도 눈치 받는 사람도 없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하사이시 조의 클래식 연주, 책을 넘길 때 나는 특유한 종이 냄새 그리고 한 없이 따듯한 조명은 책을 읽기 위한 완벽한 개인 공간을 제공한다.
(읽는 사람보다 읽다 잠든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4. 책방에 참여하다. (문화를 파는 책방)
수많은 인터뷰어들이 그녀에게 물었다. 수익모델이 무엇인가요? 수많은 지인들이 걱정했다. 임대료는 나오겠습니까? 일면식 없는 타인들은 비웃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책방이라니?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첫 번째 강연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단지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겠다고 책방의 성장에 따라 계속해서 유연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발전해나갈 생각이라고 그러니까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핵심은 책방 사람들의 참여다. 책과 관련된 또는 책방 사람들의 고민과 관련된 강연을 열고 책을 연결시킨다. 시기적 주제에 맞는 최인아 책방 “Day”를 만들어 책방에서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실제 이번 9월 처음으로 기획된 “쟁이의 생각법” 릴레이 강연은 페이스북 공지 4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한 강의에 50명 정원이고 6강이면 300명이다. 물론 중복 참여자도 많겠지만 300개 모두 유료 결제 자라는 게 의미 있다.
강연을 시작으로 추석 연휴 싱글을 대상으로 한 “싱글 추석” 그리고 책방 음악회 등 오픈하는 프로그램마다 매진이 이어지고 대기자가 줄을 서고 있다. 마치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 책과 하드웨어를 연결하여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면 한국의 최인아 책방은 책과 소프트웨어를 연결하여 책방 문화를 팔고 있다.
5. 책방의 브랜드가 나를 표현한다.
일반 책방과는 달리 최인아 책방은 브랜드 이미지와 상징에 대해 공을 많이 들였다. 생각의 숲을 표현한 심플한 로고가 박힌 에코백과 수첩에서부터 책을 담는 봉투까지 최인아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머그컵이나 연필 같은 다양한 굿즈를 점차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직은 컬래버레이션보단 최인아 책방의 자체 브랜드 구축에 조금 서 신경을 쓰고 있다. 최인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강연 및 세미나 타이틀은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오직 최인아 책방에서 만참 여할 수 있다. 이러한 소프트한 스킬은 결국 락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최인아 책방이라는 브랜드를 “나”가 입는 것이다. 그 브랜드 안에는 책이 들어있고 광고인이 들어있고 생각이 들어있고 최인아라는 이름의 신뢰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런 브랜드는 곧 취향이 된다.
대형서점에는 없고 작은 동네책방에는 있는 결정적인 그 무엇은 바로 취향이다. 최인아 책방, 노홍철의 철든 책방 심야 서점을 운영하는 북티크, 미스터리 전문 책방 미스터리 유니온 등등 서로 자신들의 브랜드를 구축해 팔로워를 모으고 있다. 강력한 팔로워를 모으는 데 있어 "긱"한 책방 주인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앞으로 장차 두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책이 좋고 생각의 씨앗을 표현하기에는 책방 장사가 더할 나위 없기도 하지만 최인아 씨는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어떤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내 보고자 도전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을 잘 선택했다. 책이라는 이름의 가치에 비해 이만큼 힘든 홀대받는 비즈니스도 없다. 비록 시작은 작은 책방이지만 출판산업에 의미 있는 촛불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성취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젊음과 나이 듦에 얽매이지 않고 다음 도전을 이어나가곤 한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최인아 씨의 귀중한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 카피는 앞으로 아래처럼 바뀌지 않을까…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