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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Sep 09. 2019

이 부부의 위로법

누군가의 실수에 여유롭게 공감한다는 것.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라는 것이다. 대부분 감정에서 그렇지만, 특히 “걱정되는 일”은 말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것은 나의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데, 그중에 단연 가장 피곤한 사람은 우리 부모님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유난을 떨 때마다 부모님은 “별 게 아닌 듯” 들으셨다. 이건 내 이야기에 무관심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첫 단락이 무언가 익숙했다면, 맞다. 밀란 쿤데라의 그 책 이름이 맞다.  차이점은, 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자체라는 것.

      

 한 달 전, 운전 연수를 어느 정도 받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다음날 한 번 혼자서 운전을 해보지 않겠냐 하셨다. 결국, 나는 혼자서 운전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주차된 외제차에 흠을 냈다. 보험처리까지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된 차만 보면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딸이 겁이 없어도 너무 없다시피 해서 운전대를 잡는 것을 매일 같이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이것을 말해야 하는가. 말하는 순간 더 걱정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주 잠깐 고민했으나, 이 가벼운 존재는 결국 엄마께 사실대로 얘기한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사진도 찍고, 보험처리도 했다며. 첫 사고인데 처리도 잘했네.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니. 너희 아빠는 아직도 차 긁고 다니잖아. 심지어 도로에서 멀쩡한 차 박아서 사고도 냈다. 엄마는 가만히 있는 택시 박고. 괜찮아. 다 그렇게 타는 거야. 무섭다고 안 타면 안 돼. 계속 운전해야 늘어."

 덕분에 다음 날, 나는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그 뒤로도 사고를 한 번 더 쳤다.  그때도 부모님은 니가 니 차 긁은 거 뭐 어떡하냐고 하셨다.


 전셋집을 빼고 이사를 해야 하는데, 집주인이 연락 두절이 되었을 때는 사실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때도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괜찮아. 너 말대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보증금 돌려받을 방법이 있는 게 어디야. 일단 준비를 하고 기다려 보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이런 식이셨다. 실패와 실수로 인해 겁을 내면, 나에게 상황을 회피하거나 금지하는 방법보다 오히려 그 상황에 노출 시키고 해결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셨다. 도덕적인 잘못이 아니라면, 실패를 경험하거나 다쳐도 혼을 내지 않으시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실수와 실패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해결하게 하셨다.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할 때는, 크게 혼이 났다.



 그리고 이 부부의 위로법은 큰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 처음으로 어이없는 이유로 윽박지르고 울부짖던 날, 같이 화를 내던 엄마는 갑자기 진지한 톤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답지 않은 걸 보니까, 요즘 우울증인 것 같은데, 병원 가보는 게 어때?"

 그 말에 나는 펑펑 울었다. 맞아. 요즘 나도 내가 이상하다며. 그 말에 엄마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 말라며, 그럴 수 있다고. 감기 같은 거니까 병원을 알아봐 주겠다고 하셨다. 덤으로 딸에게 너무 무신경한 것 아니냐며 농담조로 옆에 있던 아빠를 탓하는 것까지. 그에 대해 아빠가 미안해 딸이라고 말하는 것까지. 불면증을 심각하게 앓던 그 날의 나를 잠자리에 들게 했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들의 여유 있는 위로 덕분에 천성적으로 욕심이 많아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을 지녔던 나는, 실수와 실패는 할 수 있는 것이며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며 자랄 수 있었다. 실패했다는 것이 생각보다 별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것이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처지가 된 지금, 그들이 나에게 남겨준 이 소중한 것을 떠올릴 때가 많다.      


 실패와 실수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낙담을 하는 것이고, 자존감이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가장 가까운 이들이 공감을 빌미로 호들갑을 떨거나, 알맹이 없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집착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집착은 자라면 어김없이 분노와 절망을 열매로 맺는다. 만약 그를 정말 아낀다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의 열매를 떨굴 수 있을까. 그가 스스로 열매를 떨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열매를 조금이나마 거두어주길 원한다면,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실패와 실수에 먼저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한 아이가 다른 아이 자리에 우유를 쏟았다. 아이는 눈치를 보며 휴지를 꺼내온다.

 "괜찮아. 냄새 배기 전에 같이 얼른 닦아버리자."

 그러자, 아이들이 물티슈를 들고 우르르 달려온다. 자리 주인 역시 괜찮다며 같이 닦아준다. 비로소 우유를 쏟은 아이는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역시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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