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루프에 빠진 대화

by 박정욱

반복은 예고 없이 시작된다


개발자에게 '무한루프'는 두려운 단어다. 프로그램이 어떤 조건에서든 반복을 멈추지 않고 계속 실행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반복문을 작성했는데 그 안에 탈출 조건을 잘못 걸었거나 아예 빠뜨렸다면, 그 코드는 끝없이 실행되며 시스템의 자원을 계속 소모한다. 메모리는 점점 가득 차고, CPU는 한 작업에 붙잡혀 다른 요청을 처리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은 멈추거나 느려지고, 심하면 시스템 전체가 다운된다. 개발자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루프에 명확한 종료 조건을 걸고, 혹시라도 빠지게 될 무한루프에 대비해 예외 처리 로직을 넣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루프가 시작된 뒤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상황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원인을 추적하고, 수정하고,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도 리소스가 들어간다. 무한루프는 그렇게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개발자가 아닌 아빠에게도 무한루프가 있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종종 비슷한 감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반복은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명확한 조건도 없고, 종료 시점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끊임없이 묻고, 나는 반복해서 대답한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똑같은 내용을 돌고 또 돈다.



나는 지금 이벤트 리스너를 덕지덕지 붙인 상태다


이벤트 리스너는 웹사이트에서 특정 동작이 일어날 때 실행할 함수를 등록하는 장치로, 예를 들면 버튼을 누르면 어떤 코드가 실행되게 만드는 일종의 센서다. 한 번은 이전 직장에서 맡았던 웹 프로젝트에서 화면 전환 시 이벤트 리스너가 제거되지 않고 누적되는 버그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버튼을 누르면 해당 기능이 실행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내가 놓친 것은 그 버튼의 이벤트가 중복으로 쌓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페이지를 이동할 때마다 리스너가 하나씩 추가되고 있었고, 그 결과 버튼을 한 번 누르면 같은 함수가 여러 번 실행됐다. 시스템은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호출이 중첩되며 리소스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문제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디버깅을 하며 호출 로그를 따라가고, 리스너를 관리하는 로직을 다시 짜면서 겨우 복구했지만, 그 시간 동안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그때의 코드와 비슷한 상태에 있다. 아이의 질문에 계속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에 작은 리스너들이 덕지덕지 붙는 걸 느낀다. “왜?”라고 물으면 “그건 말이지…”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잠시 뒤에 또다시 “왜?”가 돌아온다. 나는 한 번 더 대답하고, 다시 또 대답한다. 처음엔 자연스러웠던 응답이 점점 기계적으로 바뀌고, 표정은 굳어간다. 반복되는 대화에 감정은 희미해지고, 리소스는 줄어든다. 아이는 똑같은 말을 해도 늘 같은 에너지를 담지만, 나는 점점 무거워진다. 마음속 로그는 쌓이는데, 어느 누구도 그걸 들여다보지 않는다.



육아의 챗봇이 필요하다


첫째가 “아빠, 오늘은 왜 어린이집 안 가?”라고 물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쉬는 날이야.”라고 대답하면, 몇 분 뒤 다시 묻는다. “근데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 맞지?” 또 대답한다. “아니야, 오늘은 쉬는 날이야.” 다시 잠시 지나면 또 묻는다. “그럼 내일은 가?” 이쯤 되면 나는 자동응답 챗봇이 된 느낌이다. 동일한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반복하는데, 이전 맥락이 공유되지 않는 느낌. 마치 캐시가 없고 세션도 유지되지 않는 서버처럼, 아이와의 대화는 항상 초기 상태에서 시작된다.


논리에서 질 때도 있다. "아빠, 이거 사줘!" 라고 물었을 때 "이거 집에 있잖아" 의 답에 "집에 있으면 왜 사면 안되?" 라고 답이 오고 그 질문에 "집에 있으니까, 똑같은 걸 살 필요가 없잖아?" 라고 하면 "집에 있지만 그래도 사줘" 라고 답이 왔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고집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당당해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사실 꼭 집에 있다고 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럴 때면 오히려 내가 고집스러워지거나 마지 못해 똑같은 걸 사주고 집에서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아내가 나보다 더 잘 통제하는 것 같다.


개발할때라면 이쯤에서 일정 시간 동안 같은 요청이 들어오지 않게 막는 스로틀링을 걸거나, 같은 질문이 반복되면 마지막 응답만 처리하는 방식으로 중복 요청을 필터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아에선 그런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질문은 새로운 요청이고, 모든 요청은 실시간 반응을 요구한다. 게다가 대답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야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해도 같은 표정과 어조로 반응하지 않으면 아이는 금세 눈치를 챈다. 대충 대답하면, “아빠, 왜 화났어?”라고 되물으며 새로운 반복문이 시작된다. 나는 화난 게 아니라 지친 것뿐인데, 그걸 아이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웃으며 대답해야 한다. 시스템은 계속 동작해야 하고, 다운되면 안 된다.



무한루프엔 메모리 누수가 있다


개발 시스템에서 무한루프가 반복되면, 메모리 누수나 리소스 과다 사용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된다. 육아도 다르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반복이 쌓이면 조금씩 무너진다. 체력은 고갈되고, 인내심은 닳고, 감정의 여유는 줄어든다. 아이가 “또 해줘!”를 열 번쯤 외치는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쉰다. 처음엔 즐겁게 놀아주다가, 반복이 이어질수록 목소리는 점점 건조해진다. 표정도 딱딱해진다. 아이는 변함없이 기대하지만, 나는 점점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이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다. 요청은 많고,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으며, 멀티스레딩도 되지 않는다. 모든 걸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동시다발적인 요구는 결국 처리 지연으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 아이는 표정을 바꾼다. “아빠, 나랑 놀기 싫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멈춰 선다. 루프는 여전히 돌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점점 소진되어간다.



아이에겐 루프가 아니다


나는 반복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들이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이는 매번 진심이다. “또 해줘!”는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또다른 기대의 표현이었다. 같은 놀이, 같은 질문, 같은 말. 나에겐 루프처럼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모두 새로운 경험이다. 질문은 늘 처음인 것처럼, 놀이는 늘 새롭게 시작된다. 그리고 같은 "왜?"를 반복하면서 아빠의 응답이나 반응이 재밋어서 반복하기도 한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주 잊는다.


아이에게 반복은 안정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똑같은 그림책을 여러 번 읽고, 같은 놀이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익숙한 질문과 반응은 예측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아이는 편안함을 느낀다. 어른인 나는 지루해질 수 있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면, 루프는 더 이상 피곤한 작업이 아니라 같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아이의 눈높이를 배운다. 효율보다는 정성, 속도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다. 이 루프는 멈춰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야 할 일상의 리듬이다. 그렇게 나는 반복의 무게를 감당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간다.


개발자였다면 이런 반복은 최적화해야 할 대상이지만, 아빠는 다르다. 이 루프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탈출 조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조건이 필요하고 그 것을 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다. 반복은 더 이상 에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간 끝날 루프라서


언젠가는 이 루프도 자연스럽게 종료될 것이다. 아이는 “또 해줘” 대신 “됐어, 혼자 할게”라고 말할 것이고, “왜?” 대신 “알겠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지금 이 반복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아마 아이가 뭐라도 아빠에게 질문해주기를 바라고 기다릴지도 모른다. 지치고 피곤했던 순간들이, 나중에는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 루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있다.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는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본다. 때로는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지친 몸으로 대답을 생략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입을 연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 속엔 믿음이 있고, 애정이 있고, 작은 손으로 세상을 붙잡으려는 마음이 있다.


오늘도 둘째는 같은 질문을 다섯 번째 꺼낸다. 나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대답한다. 이번엔 조금 더 웃으며,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한다. 응, 다시 해보자. 이 루프가 오늘은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언젠가 끝나게 될 이 반복이, 지금은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