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7살과 4살 두 딸아이가 내 곁에서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다. 큰아이는 도서관에 빌려온 책을 읽고 있고, 작은아이는 자신의 가방에 장난감을 넣으며 내일 어린이집에 가져가겠다고 준비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사실 다른 블로그 플랫폼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매크로 된 댓글들과 광고를 이용한 수익 활동들로 좋은 글보단 유입이 되어 수익을 창출하는 글이 더 중요했다. 나는 내 글들이 읽혀지고 싶었다. 내 글들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게 하고 싶었다. 지식을 주고 교훈을 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을 쓰더라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내가 설정한 핵심 독자는 육아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아니다. 10년 뒤 사춘기를 겪으며 아빠와 대화가 적어지고 관계가 소홀해질 우리 딸들이다. 그 시절의 딸들이 이 글들을 통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남기고 있다. 혹시 그때의 딸들이 "아빠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생각할까 봐, "아빠는 우리를 정말 사랑했을까?"라고 의심할까 봐, 미리 준비해두는 답장 같은 것이다.
육아는 매일이 시험이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내가 좋은 아빠가 맞을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처음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킬 때의 일이 생생하다. 아이는 울면서 나를 붙잡았고 겨우 뒤돌아서서 출근길을 걸었지만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계속 아이 생각만 났다. 작은아이가 발음이 계속 어눌해서 걱정하기도 했다. 빠르게 말을 조리 있게 구사했던 첫째와 비교하며 괜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두 아이가 싸울 때마다 어떻게 중재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이런 고민과 걱정들을 브런치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첫 문장은 고민으로 시작했지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되었다. 누군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이렇게 너무나 부족함이 많은 아빠지만, 언젠가 내 딸들이 이 글들을 읽었을 때 아빠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또 글을 쓰는 나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를 기대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브런치에 기록된 건 걱정과 고민만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발견한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이 더 많이 담겨있었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는 두 딸들,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 때의 평화로운 순간, 두 아이가 함께 놀면서 깔깔거릴 때의 웃음소리들. 이런 별것 아닌 순간들이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큰아이가 두발 자전거를 타는데 성공했을 때의 뿌듯함, 작은아이가 혼자서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의 감동. 그런 작은 성취들이 내게는 거대한 의미였다.
물론 힘든 순간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열이 나는 아이를 밤새 돌보면서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이라고 간절히 바랐던 마음도 브런치에 고스란히 적었다. 글을 쓰면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느끼는 무력감과 동시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적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행복을 되살려주는 타임머신 같기도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기도 하다.
왜 브런치는 20주년 넘게 유지되어야 하는가? 나의 핵심 독자는 10년 후에 있기 때문이다. 10년 후 쯤이면 내 딸들은 17살, 14살이 될 것이다. 충분한 어휘력을 갖춰 이런 글들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해 브런치에 접속해서 아빠의 글들을 찾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기는 사춘기다. 지금은 아빠가 뭘 해도 좋아하고, 아빠 무릎에 앉아 응석을 부리는 내 딸들이지만, 그때가 되면 아마도 아빠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할 것이다. "아빠가 뭘알아?!" 라거나 "아빠가 해준게 뭐있어?!" 라고 소리치며 방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고, 잔소리라며 귀를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때가 이 글들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 때 이 글들을 읽는다면 어떨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아빠의 진심이, 서툰 육아 속에 담긴 깊은 사랑이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빠도 한때는 서툰 신입 부모였고, 매일 고민하고 성장해왔다는 것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지금 내가 써내려간 글들이 10년 후의 나와 우리 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브런치가 지금 10주년이지만 반드시 20주년 넘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브런치에 남긴 모든 글들은 내 딸들을 향한 사랑의 증거다. 완벽하지 않은 아빠였지만,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진실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빠의 사랑이다. 언젠가 내 딸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들이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랐는지, 그리고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주기를 바란다.
브런치에 남긴 아빠의 성장기가 딸들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다. 아빠가 딸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 그 마음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