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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Jan 07. 2022

달리는 달랐다 - 살바도르 달리전 리뷰

DDP에서 살바도르 달리를 만났다. 좋은데 싫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미친놈이라니! 


괴상한 꿈을 꾼 뒤에 잠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찜찜한 여운에 젖어 몸서리친 적 있는가? 꿈속에서는 이상하다는 감정을 눈곱만큼도 느끼지 않았던 환상이, 잠에서 깬 뒤에는 말도 안 되는 허풍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꿈의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혼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허구 또한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 분석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환상이 완벽한 타당성을 갖는 곳, 그곳이 바로 꿈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꿈을 캔버스에 옮긴 화가다.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이상하게 그림이 된다. 비현실이 극사실을 만나는 것, 그것은 꿈이며 꿈은 경험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을 볼 때는 분석하지 말고 느껴야 한다. 그것이 달리의 심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감상법일 것이다. 괜히 가타부타 따지며 작가의 의중을 해석하려 들지 말고, 오롯이 자신의 정신적 능력만을 사용하여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못 느끼면 거기에서 땡이다. 



전시에서 달리의 인생을 분석한 글을 읽으며 코웃음이 쳐졌다. 나는 이 글을 써야 하는 처지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읽었는데, 관람객에게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려 애쓴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후술하겠지만, 복잡한 역사를 가진 달리의 사생활에서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낸 느낌이랄까. ‘자동기술법’이라든지, ‘편집광적 비판’ 등, 달리의 화풍을 설명하기 위해 어렵게 명명해놓은 단어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정보를 제공한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 “그건 당신들 생각이고!”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몸부림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내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보면서도 정상 범주에 속하려 노력해야겠는가! 그와 관람객 사이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심리적 장벽을 없애야 한다. 되지도 않는 해석으로 관람객의 눈에 가리개를 씌우지 말아 주시길. 달리의 작품처럼 무궁무진한 감상과 영감을 제공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우물거리며 씹어야 한다. 


욕도 내가 하고, 칭찬도 내가 해야 한다. “이 인간은 어떻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했을까?”에 대한 대답을 타인에게서 얻으면 안 된다. 그의 작품을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로 사용한다면, 이 미친 아저씨의 정신세계가 나에게로 옮겨오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논리 따위는 제쳐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환상이다. 


전시의 좋은 점도 있었다. 작품의 구성이 단조롭지 않고 동선에 맞추어 잘 짜여 있었으며, 달리가 작품에 자주 사용했던 여러 모티프에 대한 공통점을 적어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워낙 세밀한 오브제가 많이 그려진 작품이니만큼 관객이 넓은 시야를 갖고 감상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큐레이터의 배려가 돋보였다. 


달리는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에만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내어주었고, (연인 ‘갈라’라는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어느 사람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달리의 광기 어린 행동은 세상이 그를 비정상의 범주로 분류하게 했으나, 달리를 지배한 예술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물론 달리를 진정한 거장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개인의 몫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희열이 느껴지지만, 화도 난다. 어떤 의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뻔히 보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끔찍하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이타적인 면모가 있어 놀랍기도 하다. 



이번에 전시는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 7년여간의 공식 협업을 거쳐 열린, 상당히 대규모의 행사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양질의 정보(작품 설명, 배경 이해 등)를 담은 글은 계속 올라올 테니,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위주로 이번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달리의 작품 220여 점이 전시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100여 점 정도는 돈키호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책에 수록된 삽화들이다. 물론 삽화에서도 달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참여한 작품 대부분에 묘하게 ‘달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삽화를 제외한 원화는 100여 점 정도로, 그가 보여주고자 한 예술적 세계관을 확실히 드러낸다.  



전시된 원화 중에서는 달리가 괴상하기 짝이 없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만들기 이전의 초기작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평범한 아름다움, 내지는 익숙한 아름다움에 가까운 작품도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인상파의 부드러운 색채와 터치에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작품에서부터(달리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고흐가 생각났다), 달리가 존경했던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을 따라 그린 듯한 작품도 있었다. 


아마 그가 이런 그림만 그렸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이후 초현실주의의 기반이 되는 섬세한 회화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곳에서든 대중성에 역행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다수자에 맞서 소수자의 입장으로 존재하는 사람. 달리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달리는 돈과 독재자를 사랑하는 화가였다. 그러니 당대 주요 초현실주의 화가들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겠는가! 그래서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 모임으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곧 초현실주의라며 어디 가지 않는 미친놈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류를 역행하는 이에게 분노하는 대중이 있는가 하면, 환호하는 대중도 있다. 달리의 물타기 기술은 훌륭했고, 모두에게 관심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달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다들 감탄할 정도의 정교한 실력으로 그림을 그렸다. <슈가 스핑크스>를 보면 그가 연모했던 '갈라'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섬세하게 표현된 것을 감상할 수 있다.  



달리는 무척이나 멋대로 행동했고, 충만한 자기애를 내세우며 시절을 풍미했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 그저 범인(凡人)이었다면 대중의 무관심 속에 묻혔겠지만, 좋은 실력과 탄탄한 기술을 갖춘 화가였기에 그의 작품에 숨겨진 의미가 더욱 박수받을 수 있었다. 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마케팅하기까지 했다. 


달리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 디자인, 자서전 집필까지 해내며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내세웠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높은 금액의 금전으로 환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어느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적 소양을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발휘하며 여러 곳에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마지막으로 달리의 인생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왜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지 않았는지는 대강 알 것 같지만, 그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의 현실은 환상이었으나 동시에 망상이었다. 그는 나치의 히틀러를 찬양했고,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정권을 지지했다. 그는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처럼 히틀러를 사랑(상당히 왜곡된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한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지독한 독재자 사랑꾼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달리에게는 정치색을 뛰어넘은 변태적 성향이 있었다. 


그는 극도로 정치에 무관심했기에 위와 같은 말을 쉽게 내뱉었다. 이는 파시즘을 지지하는 정치적 발언이라기보다는, 독재자를 향한 에로스적 환상에 젖은 실언에 가깝다. 그러나 우습게도 히틀러를 사랑했던 달리는 막상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피신을 떠났고,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의 무책임한 면모를 강하게 비판했다. 


누군가의 예술은 사회에 반동적일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적극적인 사회 문제 참여를 강조하는 이들에게는 달리가 무척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미학적 평가를 떠나,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시대적 악인을 개인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판타지 따위로 취급했던 그의 태도는 명백히 비판받을 만하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달리의 작품은 그의 삶에 너무나도 많이 얽혀 있어 결코 홀로 자유롭지 못하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믿지만, 달리에 대한 죽음은 믿지 않는다. 나의 죽음은 아주,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살바도르 달리



삶을 등지면서도 위와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난 달리에게 말하고 싶다. 모두가 당신을 당신의 방식으로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고. 세상은 아직도 당신 때문에 이토록 시끌벅적하므로, 끔찍이도 특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하여튼, 달리 아저씨. 나중에 만나면 같이 츄파춥스 하나 까면서 수다나 떨어보자고요.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는 오는 3월 2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에서 열린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초대를 받아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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