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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푼젤 Jul 04. 2023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다를까?

드디어 나온 회계사 드라마. <넘버스: 빌딩숲의 감시자들>


왜 회계사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는 없을까?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쓴 첫 글, '프롤로그'에 썼던 첫 문장이다. 그런데 드디어!! 회계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왔다. 게다가 그냥 단순히 주인공 직업만 회계인 것이 아니라 회계법인을 배경으로, 다양한 회계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남편은 이 드라마가 세상에 나온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나와 함께 반가워해주고, 종종 검색을 해가며 드라마의 시작을 기다려줬다. (남편 늘 고마워!♥)


그리고 드디어 시청한 첫 화.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오글거렸다^^;; 의사나 변호사 친구들이 메디컬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 보는 거 힘들어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달까. 별 것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극화시켜서 막상 스크린에 펼쳐놓으니 참 민망하더라. 지금 회계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or 회계법인에서 한 때 근무해 본 현직 회계사들이라면 다들 아마 실눈 뜨고 겨우 봤거나 중간에 시청을 포기했을 것 같다.


그래도 참고(?) 보다 보니, 작가님이 현실고증을 위해 사소한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쓰셨고, 회계사들의 삶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준비생이거나, 입사를 앞두고 있는 예비 회계사들이라면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과장된 부분들은 많지만, 회계법인의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미리보기창 역할 정도충분히 해줄 듯도 싶고. 공부하다 머리 식히고 싶을 때 넘버스를 보면 자극제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준비해 본 넘버스 리뷰! 남편이랑 보면서 계속 '아 저건 너무 오버야', '에이 절대 안 저러지!'를 외치다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원래 드라마도 잘 안 보고, 더더욱이 드라마 리뷰라는 건 해본 적이 없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한편 씩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내 리뷰는 당연히 드라마의 전체적 스토리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드라마 속 회계사의 삶과 현실 속 회계사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인물관계도]


이 드라마의 주 무대는 '태일회계법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계법인이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걸로 봐서는 '삼일회계법인'을 모델로 한 것 같다. 회계법인에는 감사파트, 세무파트, FAS(딜 파트) 이렇게 크게 3개의 파트가 존재하는데, 이 드라마의 주요 주인공들은 딜 파트 소속이다. 회계법인은 감사를 빼놓고 말할 수 없기에 감사파트 소속 회계사들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회계법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자 회계법인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인 '은행'과 '대기업'도 빠지지 않는다.


내게 이 드라마가 더욱 재밌는 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속해있는 딜 파트가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구조조정팀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다. 나는 감사파트에서 2번의 시즌을 마친 후 FAS(딜 파트)로 트랜스퍼를 했는데, 내가 선택한 부서는 FAS의 여러 부서 중 RS(Restructuring Service)라는 팀이었다. '구조조정본부'라고도 불리는 RS팀이 주로 하는 일은 '기업회생'과 '회생 M&A', '워크아웃', 'NPL(부실채권매각)'이었다. 드라마 첫 화 시작부터 바로 기업회생 청산보고서가 나오더니, 3화와 4화에서는 NPL(부실채권매각)과 워크아웃 이행점검 등이 주요 소재로 쓰여서 꽤나 반가웠다.

내가 회계법인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이 '회생'이고, 퇴사 시점에는 내가 부서 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가였다. 물론 상무님과 이사님은 제외ㅎㅎ


브런치에 주로 감사부서 시절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보니 아직 구조조정 팀에서의 이야기는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사실 RS는 일이 터프한 편이라 여자 구성원의 비율이 가장 낮은 부서이기도 하고, 회계사들에게 인기가 많은 부서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좀 마이너한 일이기도 해서 법정관리(기업회생)와 NPL, 워크아웃을 경험해보지 못한 회계사들이 대부분인데, 하필이면(?) 내가 많이 했던 업무들이 드라마의 소재로 쓰여서 더 반가웠달까ㅎㅎ



[주요 등장인물]

일단 모든 드라마들이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외모가 가장 현실과 다르다^.ㅜ

주인공인 장호우. 고졸이라며 무시당하지만, 알고 보니 막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결해 내는 그런 콘셉트의 회계사로 나오는 것 같다^^;; 사실 회계법인은 기본적으로 리크루팅 자체를 학교 별로 진행하기 때문에 입사 시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입사 후에는 서로의 학벌을 신경 쓰지도 않고, 학벌로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개차반 같은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고졸이어도 일 잘하면 어싸인이 끊이질 않을 것이고, 서울대 수석이어도 같이 일해봤는데 일머리 없으면 무시당하는 곳이 회계법인...


그리고 그토록 어려운 시험에 정당하게 합격했는데, 고졸이라고 하면 오히려 다들 더 대단하게 볼 것 같다. 물론 실제로 고졸 출신 회계사는 단 한 번도 못 보긴 했고, 아마 회계법인에 한 명도 없을 수는 있음...


정말 드라마다운 설정.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인물까지 좋은 사기캐... 저런 사기캐는 일단 회계법인에 없고 ^^... 부대표의 아들이라고 해서 회계법인 내에서 크게 특혜를 받을만한 것도 없다. 내가 있었던 감사팀 본부장님의 사위 분도 옆 팀에서 근무하는 회계사셨고, 부대표도 아닌 '대표님'의 아들 분도 우리 회계법인 회계사셨지만, 딱히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사람들이 눈치를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연히 아버지가 같은 회계법인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파트너라면 여러 가지로 법인 생활이 편하고, 일할 때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은 많겠지만 뭐.


한제균 부대표의 설정이 현실과 가장 다르다. 일단 무슨 재벌 회장님처럼 무척이나 화려한 방을 쓰던데(엄청나게 넓고, 위스키들이 막 진열되어 있는ㅎㅎㅎ), 그런 부대표님의 방은 본 적이 없다... 한제균 부대표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본격 리뷰라면서 차차..

나는 사실 한제균 부대표와 심형우 이사가 나올 때마다 너무 오글거려서 미치겠더라ㅠ_ㅠ


주인공인 장호우 회계사와 썸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 지산은행(국민은행쯤은 되어 보였다.) 행장의 딸이라면 파트너 분들이 정말 잘해줄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예쁘기까지 해서 사심 어싸인 엄청 당할 듯! 이 정도 외모면 일 다 대신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 설 지도...


실제로 회계법인에서 여름/겨울 방학 때 인턴을 하는 유학생들 중에는 은행이나 증권사 임원 분들의 자제가 제일 많다. 그리고 간혹 정말 준재벌급이나 중견기업의 자제분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인턴을 하거나 일을 배우기 위해 입사를 하는 경우들도 있다. 나도 일하면서 몇 분 봤는데, 사람들이 정말 잘 챙겨준다ㅎㅎㅎ 좋은 관계를 쌓아두면 장차 좋은 클라이언트느님이 되어주실 수 있으니...

마침 며칠 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장남 정해찬 씨가 제대 후 삼정 KMPG의 딜 본부 인턴으로 입사했다는 기사가 났다. 오~


이 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차차 써봐야지. 소개글에 보면 아버지가 태일회계법인의 경비였고, 새파랗게 어린 회계사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걸 보며 자랐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사실 국내 대형 회계법인 중 사옥을 가지고 있는 회계법인은 없고, 다들 그냥 번듯한 큰 건물에 입주해 몇 개 층 쓰는 정도다. 안진은 IFC에, 삼정은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삼일은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한영은 태영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경비원분들은 새벽까지 야근 많이 하고 불도 잘 안 끄고 퇴근해버리거나 엎어져서 자는 회계사들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 회계사를 깍듯하게 대하실 이유도, 회계사가 경비원 분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전-혀 없음^.ㅠㅋㅋ





대략적인 리뷰는 여기까지! 시간 날 때마다 한 편씩 보면서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리뷰를 해볼게요.


드라마에 회계사들이 쓰는 전문용어도 많이 나오고, 의학드라마처럼 화면 한쪽에서 용어 설명도 해주고, 또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회계법인에서 하는 일들을 설명해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회계사이거나 준비생이 아닌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이 드라마가 매력적 일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와 남편은 객관성을 잃었기에...^^;;;;



오글거리고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흥해서 사람들이 '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라봅니다. 경쟁작이 하필 김은희 작가 × 김태리 주연의 <악귀>라 더욱이 흥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하는데... ㅠ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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