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경제학레시피> 서평
몇 해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말 중에 '샤이보수', '샤이진보'라는 말이 있다. 투표장 외의 장소에서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술자리에서 종교 얘기와 정치 얘기는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공개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밝힌다는 것은 (특히 유명인의 경우) 방탄조끼 없이 수많은 총알 앞에 과녁처럼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20대 시절 sns에 정치적 의견을 밝히거나 <82년생 김지영> 책의 소감을 올린 일로 날이 선 메시지를 받은 기억들이 있어 그 이후 웬만하면 공개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밝히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2년 전 이 서면브리핑이 발표되었을 때다. 500명 정도의 멘산들이 모여 주식과 투자 관련 이야기들을 활발하게 토론하는 카톡채팅방이 있는데, 거기서 누군가가 저 사진을 공유했다. 그러자 득세 중인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 정부가 경제에 무지하다느니, 가히 충격적이니 하며 아주 난리가 났다. 빨리 빚을 내서 신용도를 낮춰 낮은 금리를 적용받아야겠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시대에 따라 보수가 득세하기도 진보가 득세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우리나라 정권은 항시 문제가 많은 편이기에 집권 정당과 반대되는 세력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경제 정책들이 번번이 실패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당시 보수세력들은 무척이나 의기양양했고, 할 말 없는 좌파들은 자연스레 샤이해졌다.
살짝 샤이한 진보성향을 가진 이들 중 두 명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해당 정책의 의도를 바로 잡고자 했지만, 이윽고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니 경제학을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조롱이 돌아왔다. '기본적인 경제원리를 무시한 멍청한 소리'라는 비판과 날 선 공격까지 서슴이 없었다. 샤이하게 살기로 했으나, 도저히 성격 상 그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나는 고민하다 결국 500명이 넘게 있는 그 방에서 공개적으로 나의 정치경제적 성향을 드러냈다. 나의 미천한 사회적 지위에 기대기 위해, 경제학을 이해 못 해서 그러하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는 원천 차단하기 위해, 내가 현재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음을 덧붙이며 '전체 보기'를 눌러야만 읽을 수 있는 긴 글을 쓰고야 말았다.
멍청하다는 표현을 써가며 목청을 높이던 인물이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글을 남길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쓴 후에는 공격을 당한 분께 따로 감사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사실 같은 정치경제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도 나는 같은 메시지를 썼을 것이다.
그때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대변이나 옹호도, 경제적 원리도 아니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바로 '편식'의 위험성이었다. 큰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본인의 의견이 무조건 맞고, 반대의 의견을 내는 사람은 무조건 틀렸고, 본인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답답하고 멍청한 일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게 오히려 멍청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작은 정부를 열렬히 지지했던 하이에크조차도 저신용 저소득자에 대한 구제책 자체를 감히 '멍청하다'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물론 경제학적 원리로만 보자면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는 것은 '1+1=2'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다. 저 브리핑 발표가 그걸 반대로 하자는 건 아니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원리이지만,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경감해주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법정 최고 이자율에 제한을 두는 것도, 분양가에 상한을 두는 것도, 임금의 최저하한선을 두는 것도 모두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어쨌거나 크든 작든 부작용이 생긴다. 그 부작용이 더 클 것인지 사회 전체적인 후생의 증가량이 더 클 것인지를 비교하고 예측하여 걸정을 내리는 것, 그리고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고안해 내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당연히 경제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은 부작용을 우려하고 정책을 비판할 수 있지만(그것이 더 건강한 일이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무턱대고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좋은 경제학자(학계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 사회 운동가, 깨어 있는 시민을 모두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이다)는 ‘상상력이 풍부한’ 요리의 원리를 경제학의 이해에도 적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중략)... 최고의 경제학자는 최고의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시장의 위력과 한계 둘 다를 이해하는 동시에 기업가들이 정부의 지원과 규제를 적절히 받을 때 가장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편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막상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가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당근을 비롯한 많은 야채들을 일절 먹지 않고, 스시오마카세에 가면 오크라를 빼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경제학에서 하나의 주장과 하나의 사상만 옳다고 믿고 추종하며 다른 의견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편식은 개인의 건강만 해치지만, 사회가 한 방향으로 편식을 하게 되면 사회 전체가 병들어 버린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나는 경제학을 꽤나 좋아하고, 그보다 100배쯤 맛집을 좋아한다. 회계사 공부를 하면서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강사가 된 후에는 누군가를 '시험에 합격시키기 위해' 얕은 수준의 경제학을 공부했기에 스스로를 전문가라 부르기엔 너무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경제학은 기회가 된다면 가장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이다. 또 나의 취미는 '맛집 탐방'이요, 특기는 '많이 먹기'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식재료에 아주 관심이 많다. (다만,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신뢰하고, 나의 손재주는 아주 미천하여 결코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이 달고 있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환장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니. 언뜻 보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음식과 경제학을 어떻게 엮어냈을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이었는지, 부푼 마음으로 펼쳐든 이 책은 아쉽게도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우선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 아닌 '정치경제학' 서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우려와 저자의 주장들에 대부분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사용한 일부 사례나 근거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예컨대 유교문화와 문맹률의 어색한 연결고리의 강조를 위해 (일제 강점기는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이 일어났던 특수한 시대였고, 현재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없이) 일제 강점기 직후 우리나라의 문해율이 낮았음을 근거로 든 부분이나, 사회 구조적 문제(일자리의 부재와 빠른 은퇴)나 노동의 질을 배제한 채 노동연령인구 중 일하는 사람의 비율만을 근거로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근면함과 게으름을 비교한 부분 등은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또 특허제도나 유한책임제도 등의 개선안으로 저자가 제시한 것들이 내게는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간접세와 관련된 부분은 단순한 숫자 놀이로 진실을 호도하는 듯하였고, 돌봄 노동에 관한 부분은 (접근방식과 시사하는 바는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저자에게도 뚜렷한 대안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음식, 그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들이 경제학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매끄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새우 이야기에서 맹그로브 파괴 이야기로, 곤충을 피하는 것에서 식충 이야기로, 다시 번데기로, 실크 폐기물로, 일본의 보호주의 무역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인데, 내게는 연관성이 낮은 문장 사이에 그럴듯한 접속사 하나만 끼워 넣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소재 하나 잡아놓고 아는 거 이것저것 신나게 다 뽐내다가 급하게 '사실 결론은 이겁니다!'로 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뺄 건 좀 빼고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강조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사실 내 탓도 크다. 미식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저자가 언급하는 음식들 중 처음 들어보는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무위키에 검색하고 사진들을 찾아보느라 한 페이지를 읽는 데 몇십 분이 걸리기도 했다. 가볍게 웃으며 넘겨야 할 부분들에서 너무 힘을 많이 빼다 보니 정작 경제학 부분을 읽을 땐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졌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저자의 성향과 비슷한 부분이 꽤 있는 것 같다. 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잡지식을 좋아한다는 점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덜어내지 못한다는 점도 그렇다. 깔끔한 글을 쓰고 싶은데,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워 나 역시 대충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글이 좋으면서 아쉬웠으려나.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루저’라고 조롱당하거나 (이기적인) 저의를 품고 있다고 의심받는다. ...(중략)... 다시 말해 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 서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그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을 나와는 관련 없는 분야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요즘 대세인 신자유주의만을 옳다고 믿고 편식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해보고 싶다. 내가 경제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학처럼 명백한 이론이 기반이 되면서도 그것을 실제에 적용하는 데 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순수학문임에도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은 그러한 경제학의 매력을 잘 살려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경제학이라는 이론과 경제 관련 정책이 우리의 사상과 생각을 조종하고,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까지 좌우할 수 있는,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학문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저자의 목표는 달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편견들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때때로 반성하기도 했다.
다만 나처럼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실제로 구매한 음식만 6개가 되고, 그중 2개는 어렵사리 직구를 했다. (ㅋㅋ)
크네게브뢰드와 콘비프 캔, 우스터소스, 클로티드 크림치즈를 구매했고, 바노피 캐러멜소스와 바운티 초콜릿바를 직구했다.
[발제문] by JSY
1. 여러분에게 '경제학'은 낯선 대상인가요? 각자가 생각하는 경제학은 어떤 학문인지, 그리고 혹시 이 책을 읽으며 바뀐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2. 저자는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훨씬 약하다(1장 도토리 中)」고 말합니다. 문화와 정책 중 사람들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3. <7장 당근>에서 저자는 현재의 특허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3가지 개선 방안(특허 보호 기간의 단축, 포상금 제도, 국제협정을 통합 기술가격 인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제안에 동의하시나요?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 백신 또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기술 등을 개발도상국에 무료로(혹은 저렴하게)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4. <5장 새우>, <8장 소고기> 등에서 저자는 유치산업 보호정책(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에서 미성숙한 제조업체들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정책)과 보호무역의 필요성과 명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관련 정책의 일환으로 농수산물 수입규제와 스크린 쿼터제 등을 오랫동안 시행해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정책들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5. 여러분이 정의하는 '평등'은 무엇인가요? <12장 닭고기>를 참고하여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 중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평등은 무엇일지 이야기해 봅시다.
6. GDP(국민총생산, 국민총)는 일정기간 동안 한 나라의 국경 내에서 이루어진 생산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국가 간의 생활 수준 비교와 경제성장률을 측정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이 GDP라는 지표에 무보수 돌봄 노동이 포함되는 게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