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학교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넘는 마지막 언덕이 있다. 그 언덕만 넘으면 집이 저만큼 보인다. 낮은 회색 슬레이트 지붕, 담벼락, 마을 어귀에 놓인 징검다리까지. 별로 높지 않은 그 언덕을 그때는 왜 그리 숨차고 힘들게 넘었던가. 어려서 그랬을까. 허기진 배를 안고 넘어서 그랬을까. 한동네 사는 선이는 더욱 힘들어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앓고 있는 심장병 때문일지 모른다.
선이와 나는 학교가 파하면 같이 집으로 가곤 했다. 또래보다 유난히 작고 힘이 없었으며 늘 숨이 차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였다. 누가 청소 당번일 때는 서로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선이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었다. 내가 유일했다.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같은 활동적인 놀이를 하지 못했다. 널뛰기할 때도 널 가운데 앉아 있곤 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공기놀이였다. 손이 작아 잘하지 못했지만.
학교에 갈 때 같이 가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하굣길엔 거의 같이 다녔다. 사실 선이와 함께 다니려고 하는 아이가 없었다. 혼자 걷는 하굣길은 나른하고 배고프며 힘들었다. 같이 이야기하며 걸으면 잊곤 했다. 나는 가끔 선이 책보를 들어주었다. 특히 언덕 앞에서 숨차서 헐떡거리는 걸 보면 그러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허리에 묶은 책보를 내가 풀면서 빼앗다시피 했다. 선이가 싫다고 도리질하기 때문이다. 동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리라. 막상 내게 빼앗기곤 함박웃음을 짓는 선이.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학교에선 전혀 말이 없던 선이가 나와 있을 적엔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없다. 소설가가 되어도 되었을 아이였다. 이야기를 만들어하는지, 어디서 들은 건지, 집안에서 있었던 일인지, 신선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어디서 그렇게 물어오는지 모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한다. 그러다 내게도 해달란다. 내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들어준 사람이 또 있었던가.
“넌 성공해라, 꼭 성공해.” 선이는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성공이 뭔지 왜 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는데, 선이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던 해 봄 빨래터에서도 그랬다. “난 식모살이하러 인천에 갈 거야. 거기서 돈 많이 벌어 성공해야지. 넌 공부 많이 해서 성공해.” 푸르뎅뎅하고 퉁퉁 부은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선이가 말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남의집살이 하러 갈 선이에게 그렇게 당찬 꿈이 있었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할 꿈이. 그때 난 내가 빨던 교복을 얼른 대야 안으로 숨겼다.
그랬던 선이를 다시 만난 건 삼 년이 지나서였다. 아픈 몸으로 더 이상 남의집살이를 하지 못해 집으로 왔다. 퉁퉁 부어 눈도 잘 떠지지 않는 선이를 보며 울었다. 선이는 화롯불에 손을 쬐며 울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달랬다. 자기 설움에 운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때 나는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가정형편으로 진학을 하지 못했고, 장녀의 부담감만 내 어깨를 짓눌렀다. 게다가 더 이상 생명이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동무 모습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계속 우는 내게 선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깔깔 웃는데 숨이 차서 꼴깍 넘어갈 것만 같았다. 한마을에 사는 아무개가 자기에게 연애편지를 줬다는 거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나한테 글쎄, 우습지 않아?” 선이는 인생을 달관한 사람 같았다. 그때 우리 나이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철학자라고 해서 죽음 앞에 저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선이는 간신히 일어나 그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우리는 소녀들일뿐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둘이 숨넘어가도록 웃어댔다.
그 후 한 번 더 내가 선이를 찾아가 만났다. 동네사람들이 이제 얼마 못 갈 거라고 했다. 막상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선이는 정신이 말짱했다. 내게 또 말했다. 넌 공부 잘하니까 꼭 공부로 성공하라고. 공부 잘한다고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고등학교에 진학 못하고 우울감에 빠져 있던 그때, 선이의 말이 허황하게 들렸다. 그래도 아픈 친구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하여, 알았으니 꼭 나으라고 했다. 선이가 내 손을 잡았다. 퉁퉁 부어서 잡히지 않아 그냥 손을 대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 장날 읍에 나가 선이가 먹고 싶다는 배를 하나 사 올 생각이었는데, 기다리지 않고 하늘로 가버렸다. 시골이었고 지금처럼 과일을 마음껏 먹는 시절이 아니어서 그 작은 소망도 이루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어머니도 가엾다며 울었다. 온 동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선이는 떠났다. 가난 때문에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꿈을 펼치기는커녕 펴보지도 못한 채.
친정에 가기 위해 그 언덕 넘을 때마다 선이 생각이 난다. 가쁜 숨 몰아쉬며 내 팔에 의지해 넘던 언덕이, 이젠 거의 평평해져 언덕 같지도 않게 되었다. 진즉에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이 성치 않았던 선이에게 그 언덕이 큰 장애물이었듯, 남들이 볼 때 별 것 아닌 어려움도, 사정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으리라. 저만큼 우리 집이 보일 때, 언제나 내 동무 선이 생각이 난다.